- 그렇게 살아가는
: 연재 마지막회
살다 보면, 혹은 걷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걸음마를 떼고 걷기 시작한 후부터 우리는 나름의 삶이란 것을 살아가고 있음을….
지쳐서 쓰러지더라도 쉼 없이 살다 보면, 걷다 보면
가끔씩 뒤를 돌아보자.
내가 걸어온 이 길이 오르막 길이면 그 고난함 만큼의 멋진 광야가 보일 것이고,
그 길이 내리막 비탈길이었으면, 뒤 돌아보는 순간에
내 눈에는 웅장한 산과 포근한 숲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가끔은 되내어 본다.
“슬픔도 깊으면 위로가 되고, 고독도 깊으면 힘이 될 것이다.”
뒤돌아 보며 나의 흔적을 몇 가지 정리해 본다.
낯선 여행자
평일 오후에 고속버스 터미널에 앉아
사람들을 본다. 갈 곳과 가야 할 곳이 많은 분주함 속에 굉장히 여유로운(?), 계획적이지 않은 나는 내가 낯설다.
배낭 여행자처럼 터미널에서 시간의 무료함을 한낮의 고양이처럼 보내고 있다.
‘우리는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루 살로메) 문득, 젊은 날 읽었던 잊혀진 책 제목이 떠오른다.
나도 모르고,
내 앞에, 내 뒤에 있는, 저리 바쁘게 지나가는 모든 이들도 어디로 가는지 모를까?
그럼 살아가는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서울 터미널에서 23.4.
비 오는 길
올레길 걷기 일주일 째에
비가 온다.
그냥 부슬부슬 비가 온다
바람 불고 비 오는 4월의 바닷가 월요일은
할 일 없는 낚시꾼과 산책하는 아재들과
불쑥 길가에서 쑥 캐는 아낙네뿐이다.
여유로운 관광객은 아니나
할 일 없어 보이는 외지인일 뿐인 나는
스산한 날씨만큼 따뜻함이 더욱 그립다.
집에서 뒹굴다가 마눌님을 졸라서 부침개에 막걸리 한잔하고 싶다.
길을 걸으면 가족이 그립다.
더욱 사랑하는 이들이 보고 싶다.
- 23. 4월. 제주에서
얼굴
문득 혼자 만의 시간으로 방에 앉아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니
내가 생각하는 내 얼굴이 아닌
다른 이의 얼굴이 있다.
밝음을, 웃음을, 미소를
그렇게 원하고 소망하여도
내 삶이, 내 생각이, 내 생활이
그렇지 못하였나 보다.
거울 속에는 낯선 아저씨가
낯선 미소를 짓고 있다.
내 자아도 그에게 썩소를 날려 준다.
거울을 없애 버려야겠다.
늦여름 새벽
늦여름의 새벽은 가을을 닮아
찬 바람에 일찍 깬 날에는
그리움과 회한을 남긴다.
내 청춘의 나날에
스쳐 지나간 인연과 그들의 이야기는
먼지처럼 쌓였다 사라지고
내 잘못된 말과 후회도
메아리치는 공명이듯
바람처럼 머물다 간다.
가을이 오면
감기처럼 찾아오는
우울과 후회와 서글픔과
약간의 자족과 미소…
그게 다.
늦여름, 가을 닮은 감기가
새벽녘에 잠시 왔다 간다.
- 2023. 8. 23.
-24. 10월 초. 로캉.
# 연재를 하면서 1주일 동안 글과 그림의 압박이 스트레스가 될 수 있음으로, 내가 원하는 글과 그림을 쓰고 그리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생겼습니다.
글은 생각의 깊이를 바탕으로, 그림은 마음의 시각으로 보아야 함에도 그렇지 못함이 자책이 되는 것 같습니다. 당분간 자숙(스스로 성숙해지기)의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지금까지 <걷다 보니 어느새> 연재에 공감해 주신 분들께 다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