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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소년이 온다-한강/창비

소년들을 위한 진혼곡

by 하니야 Mar 19. 2025


5.18을 떠올릴 때면 큰오빠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 일이 발발했을 때 오빠는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광주 전역이 아수라장이 되고 무차별 폭력과 피로 물들어갈 무렵 오빠는 가까스로 몸을 피해 광주를 벗어나 자전거를 타고 집이 있는 강진으로 정신없이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중간에 경운기도 얻어 타고 트럭도 얻어 타고 그것도 안 되면 걷기도 하면서 그 먼 거리를 쉬지 않고 달렸다. 새벽 5시에 출발했는데 밤 9시에 도착했다고 하니 그 여정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오빠는 전날인 5월 17일에 원래 수학여행을 갈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집회와 시위가 확산되고 그것을 막으려는 신군부의 공수부대 투입으로 광주시가 혼돈에 빠져서 그 일정이 급하게 취소되었다.



엄마는 엄마대로 오빠가 걱정이 돼서 옆 마을 아는 분의 트럭을 얻어 타고 광주로 향했다. 오빠 자취방을 찾아가던 도중 엄마가 직접 목도한 광주는 그야말로 아비규환 그 자체였고 자칫 엄마도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오빠 친구로부터 오빠 소식을 전해 들은 엄마도 광주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발 빠르게 움직여서 무사 귀환할 수 있었다. 오빠 학교는 무기한 방학에 돌입했고 다시 학교에 갔을 때는 6월 말 정도나 되었다고 한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1장부터 6장까지 화자가 모두 다르다.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났을 당시를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이거나 그 일을 겪고 10~20년이 지난 후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마지막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다. 



1장 - 어린 새


양복 입은 남자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사람의 팔이 어떤 것인지 너는 보았다.
사람의 손, 사람의 허리, 사람의 다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았다.
살려주시오.
헐떡이며 남자가 외쳤다.
경련하던 남자의 발이 잠잠해질 때까지
그들은 멈추지 않고 곤봉을 내리쳤다.
곁에서 쉬지 않고 비명을 지르다
머리채를 잡힌 여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너는 모른다.
덜덜 턱을 떨며 천변 언덕을 기어올라
거리로, 더 낯선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
거리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 소년이 온다, 1장 어린 새, 25p -



1장의 주인공 '동호'는 실제 인물인데 한강 작가 아버지 한승원 작가의 제자라고 한다.

그만큼 실제 역사를 고증한 작품으로 리얼리티가 살아있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뒤 <채식주의자>보다 <소년이 온다>가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고 밝히면서 더 각광을 받은 데다가, 노벨문학상 탄 시점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현 시국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더 주목을 받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첫 장부터 '합동추도식' '적십자병원에 안치된 시체' '상무간에서 분수대 앞까지 날라놓은 스물여 여덟 개의 관' 이런 단어들이 도배를 하니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쌓여있는 시체들을 묘사하는 대목에서는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로 너무나 적나라해서 아무렇지 않게 읽어내기가 버거웠다.



곤봉으로 맞아 두개골이 움푹 함몰돼 뇌수가 보이고...

자그마한 여자의 몸이 썩어가면서 성인 남자만큼 몸피가 커지고...

총검으로 목이 베여 붉은 목젖이 밖으로 드러난 젊은 남자의 얼굴...



이 책의 시작부터 한강 작가의 세밀하고도 정교한 문장은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  5.18민주화운동의 현장 속으로 나를 속수무책으로 끌고 갔다.



상상을 안 하려고 해도 저절로 그림이 그려졌다.

짐짝처럼 아무렇게나 겹쳐있고 짐승의 사체처럼 무참히 버려진 시체더미 한복판에 서서 그 광경을 보고 있는 듯 진저리를 치게 만들었다.



대학 때였던가. 5.18 당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할 정도로 처참한 광경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었다.

인간이 자행했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은 야만적인 행위에 치가 떨렸다.



실종된 친구 정대를 찾아 헤매다 상무관 앞에서 처참한 시신들을 목격하게 된 동호는 그때 겨우 중3이었다.

동호는 상무관의 합동분향소에서 시신들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초를 밝히고, 시신들의 수습을 돕는다.



수피아여고 3학년인 은숙과 양장점 미싱사 선주는 피가 부족해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가두방송을 듣고 헌혈을 하러 전대 부속병원에 갔다가 얼떨결에 시신들 수습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운명처럼 같은 장소에서 만난 그들은 그렇게 허망하고 비참하게 죽은 영혼들이 마지막 가는 길에 편히 가도록 시민으로서 도리를 다한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2장 - 검은 숨


내 몸은 아래에서 두 번째에 끼여

납작하게 짓눌렸어.

그렇게 짓눌려도 더 이상

흘러나올 피는 없었어.

고개가 뒤로 꺾인 채

눈을 감고 반쯤 입을 벌린 내 얼굴은

숲 그늘에 가려 더 창백해 보였어.

맨 위에 놓인 남자의 몸에다

그들이 가마니를 덮자,

이제 몸들의 탑은

수십 개의 다리를 지닌

거대한 짐승의 사체 같은 것이 되었어.

- 소년이 온다, 2장 검은 숨, 48p -



2장 <검은 숨>은 정대의 혼령이 시체가 된 자신의 육신과 다른 시체들을 바라보며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고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정대가 너무 슬프고 애처롭게 느껴졌다.



'얼룩덜룩한 군복에 철모를 쓰고, 팔엔 적십자 완장을 차고 빠르게 2인 1조로 우리들의 몸을 들어 올려 군용 트럭에 던져 넣기 시작했어.'


'내 몸은 다른 몸들과 함께 묵묵히 흔들리며 트럭에 실려갔어. 피를 너무 쏟아내 심장이 멈췄고, 심장이 멈춘 뒤로도 계속 피를 쏟아낸 내 얼굴은 습자지같이 얇고 투명했어.'



자신보다 먼저 죽은 누나를 생각하며 정대가 우는 장면에서는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누나는 죽었어. 나보다 먼저 죽었어. 혀도 목소리도 없이 신음하려고 하자, 눈물 대신 피와 진물이 새어 나오는 통증이 느껴졌어.

눈이 없는데 어디서 피가 흐르는 걸까. 어디서 통증이 느껴지는 걸까...... 핏물이 산화돼 진한 벽돌색이 된 손톱들 위로 소리 없이 불개미들이 기어다니고 있었어.'



그들을 향해 날아가서 왜 나를 죽였는지, 왜 누나를 죽였는지, 어떻게 죽였는지 묻고 싶다는 정대 혼의 독백을 들으니 어떻게 죽었는지조차 모르고 죽은 정대가 너무 가여웠다. 가서 다독다독하며 가만가만 위로해주고 싶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3장 - 일곱개의 뺨


당신들을 잃은 뒤,

우리들의 시간은 저녁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집과 거리가

저녁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어두워지지도,

다시 밝아지지도 않는

저녁 속에서

우리들은 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잠을 잡니다.

- 소년이 온다, 3장 일곱개의 뺨, 79p -



번역 서적을 찍어내는 출판사에서 일하다가 경찰에 잡힌 뒤 일곱개의 뺨을 맞으면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은 은숙.

소위 불온서적이라 낙인찍힌 책을 번역한 번역자를 찾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그들은 은숙에게 번역자의 행방을 말하라며 무차별 폭력을 가한다.



그녀는 4년 전 대학 신입생 시절에도 학생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떨어진 숟가락을 주우려다 '학살자 전두환을 타도하라'가 적힌 유인물을 무심코 주웠다가 사복경찰에게 머리채를 뜯긴 적이 있었다.

그녀는 검열 때문에 온전히 실리지 못했던 먹선으로 지워진 넉 줄의 문장을 기억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녀는 인간을 믿지 않았다.

어떤 표정, 어떤 진실, 어떤 유려한 문장도 완전하게 신뢰하지 않았다.

오로지 끈질긴 의심과 차가운 질문들 속에서 살아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언론의 자유조차 허용되지 않고 공권력으로 통제하려는 나라에서 그녀에게 남은 건 오직 불신뿐이었다.




4장 - 쇠와 피


모나미 검정 볼펜은,

조사실에 들어가면

변함없이 준비되어 있는

첫 순서였습니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는 걸

일단분명히 해두려는 것

같았습니다.

내 삶이 어떤 것도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허용되는 건 오직 미칠 듯한 통증,

오줌똥을 지리도록

끔찍한 통증뿐이라는 것을.

- 소년이 온다, 4장 쇠와 피, 105p -



4장에서는 시민군 김진수의 죽음에 증언해 줄 것을 부탁받은 ''가 5.18에 겪었던 당시의 상황들을 고백한다.



당시 '나'는 스물세 살의 교대 복학생이었는데 스무 살이던 대학생 김진수와 중학생이던 영재와 시민군으로 활동하다 잡혀 모진 고문을 당했다.

모나미 볼펜을 손가락 사이에 교차시켜 끼우게 하고 비틀어 하얀 뼈가 들여다보일 정도로 고문을 하는 건 아주 약과였다. (앞으로 모나미 볼펜을 사용 못 할 것 같다. 볼펜을 볼 때마다 끔찍한 고문을 당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상이 될 것 같아서...ㅠㅠ)



특히 일행 중에 곱상하게 생긴 김진수는 변칙적인 고문을 더 많이 당했다.

성기를 꺼내 탁자에 올려놓게 하고 나무 자로 내려치겠다고 위협하고, 하체를 발가벗겨 영창 앞 잔디밭으로 데려가 팔을 뒤로 묶고 엎드려 있게 했는데 굵은 개미들이 세 시간 동안 김진수의 사타구니를 물었다고 한다.



이 대목을 읽으며 인간 말종, 상식 이하의 고문 행태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 말도 안 되는 '성고문'을, 같은 사람이 했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고문을 자행했던 군인들은 소위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 아니었을까.



'나'는 9년형을, 김진수는 7년형을 언도받았지만 죄목들이 부조리했기에 특사로 석방됐다.

하지만 고문의 후유증은 그들의 삶을 갉아먹었다.

불면과 악몽, 진통제와 수면유도제 속에서 하루하루를 겨우 버티며 살았다.



결국 김영재는 정신병원에 들어갔고 김진수는 목숨을 끊었다.

살아있어도 사는 게 아닌 그들은 고통과 치욕 속에서 싸우다 어떤 이는 죽음을 선택하고 어떤 이는 마지못해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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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 밤의 눈동자



나는 밤마다 기도했습니다.

절에도 교회에도 다닌 적 없었지만,

이 지옥에서 나가게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 소년이 간다, 5장 밤의 눈동자, 154p -



5.18 당시 20대였던 선주는 그 사이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40대 되었다.

살아남은 선주도 마찬가지로 5.18을 논문 주제로 쓰고 있는 '윤'으로부터 당시 상황을 증언해 줄 것을 요청받는다.



'윤' 이 보내준 논문과 생존자들의 녹취록을 받아든 선주는 그것을 들으며 당시 상황을 떠올린다.

선주는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하루에 열다섯 시간 일했고 한 달에 이틀 쉬었다.

그런데도 봉급은 남자 공원의 절반이었고 잔업수당도 없었다.



오후부터 묵직하게 붓던 종아리와 발등. 물품을 빼돌릴지 모른다는 이유로 퇴근하는 여공들을 몸수색하던 경비들.

브래지어 언저리를 더듬을 때 느려지던 그들의 손.

치욕. 기침. 잦은 코피. 두통. 가래를 뱉으면 거무스레한 실밥 덩어리들이 나왔다.



우리는 고귀해.

우리에겐 정당한 권리가 있어.



성희 언니는 자주 그렇게 말했다.

쉬는 일요일마다 청계피복노조 사무실에서 노동법 강의를 듣던 그녀는, 자신이 배운 것을 빼곡히 노트에 정리해와 소모임에서 강의했다.



노조 간부들을 구사대와 경찰들이 끌고 가던 날, 2교대를 하려고 기숙사를 나와 출근하던 여공들 수백 명이 사람 벽을 만들었다.

소리치는 그녀들을 향해 각목을 든 구사대가 달려들었다.



그때 성희 언니가 큰 소리로 외쳤다.


"옷을 벗어. 우리 다 같이 옷을 벗자."


잡아가지 말라고 소리치며 블라우스와 치마를 벗어 흔들었다.

처녀들의 벗은 몸을 그들이 만질 수 없을 거라고 믿었지만 그들은 브래지어 차림의 여자애들을 흙바닥에 끌고 갔다.

그들은 수십 명의 노조원들을 곤봉과 각목으로 때려 닭장차에 집어넣었다.



열여덟 살이던 선주는 장파열 진단을 받고 입원해 있는 동안 해고 통보를 받았다.

몸을 추스른 뒤 다른 방직공장에 취직했지만 블랙리스트에 올라 또 해고됐다.



친척의 주선으로 광주 충장로의 양잠점에 미싱사 시다로 취직해있을 때 5.18을 겪게 되었고 그녀는 여공이었던 시절 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빨갱이년으로 불리며 모진 고문을 당해야 했다.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다가 선주는 기억을 더듬어 증언을 보태달라는 '윤'의 독촉 메일을 받고서는 혼자 이렇게 독백한다.


삼십 센티 나무 자가 자궁 끝까지

수십 번 후벼들어왔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소총 개머리판이 자궁 입구를 찢고 짓이겼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하혈이 멈추지 않아 쇼크를 일으킨 당신을 그들이 통합병원에 데려가 수혈받게 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이년 동안 그 하혈이 계속되었다고,

혈전이 나팔관을 막아 영구히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타인과, 특히 남자와 접촉하는 일을

견딜 수 없게 됐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짧은 입맞춤, 뺨을 어루만지는 손길,

여름에 팔과 종아리를 내놓아

누군가의 시선이 머무는 일조차 고통스러웠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몸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모든 따뜻함과 지극한 사랑을 스스로 부숴뜨리며 도망쳤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더 추운 곳, 더 안전한 곳으로.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이 부분은 눈물이 나오는 걸 억지로 참으며 겨우 읽었다.

이 치욕을 품고 어찌 살아왔을까 싶을 정도로 분통이 터졌다.

이런 내막까지 모르니 '윤'이라는 사람은 자꾸만 증언을 해달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증언을 하는 것 자체가 살아남은 그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리라.


브런치 글 이미지 5




6장 - 꽃 핀 쪽으로


내 손으로 너를 묻었은 게.

하늘색 체육복에다

교련복 윗도리를 입고 있던 너를,

하얀 하복 샤쓰에다

아래위 까만 동복으로 갈아입혔은게.


혁대도 단정하게 매주고

깨끗한 회색 양말을 신겼은게.

베니어판으로 짠 관에다

너를 넣고 청소차에 싣고 갈 적에,

너를 지킬라고 내가 앞자리에 탔은게.


청소차가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네가 있는 뒤쪽만 뚫어져라고

지켜보고 있었은게.


환한 모래 언덕에 까만 옷 입은 사람

수백 명이 개미같이 관을 들고

걸어가던 것이 생각난다이.


느이 형들이 입술을 꽉 물고서

울고 섰던 것도 아슴아슴 떠오른다이.

- 소년이 온다, 6장 꽃 핀 쪽으로, 181p -



6장은 아들 동호를 잃은 엄마의 시점으로 시선이 옮겨간다. 6장 전체는 아들에게 보내는 엄마의 사무친 편지이자 울음섞인 고백이다.



통금 7시가 다 되어도 안 들어오던 막내아들 동호를 찾아 둘째 아들과 캄캄한 거리를 헤매는 모습, 전두환이 광주에 왔을 때 유족회 엄마들과 시위를 하다 부상을 당했음에도 병원 옥상에 올라가서 현수막을 펼치고 "살인마 전두환을 찢어죽이자아" 하고 외친 이야기, 동호의 아기 때를 회상한 이야기, 문간방에 세 들어 살았던 정대와 정미 남매 이야기 등 구구절절한 엄마의 넋두리에 가슴이 미어졌다.



동호 엄마에 빙의되어 글을 읽다 보니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었다.

내가 과연 동호 엄마였다면 이렇게 버틸 수 있었을까.

과연 살아낼 수 있었을까.

하루하루 견딜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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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 눈 덮인 램프


그 경험은 방사능 피폭과 비슷해요,라고

고문 생존자가 말하는 인터뷰를 읽었다.

뼈와 근육에 침착된 방사성 물질이

수십 년간 몸속에 머무르며

염색체를 변형시킨다.

세포를 암으로 만들어

생명을 공격한다.

피폭된 자가 죽는다 해도,

몸을 태워 뼈만 남긴다 해도

그 물질이 사라지지 않는다.

- 소년이 온다,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 207p -



2009년 1월 한강 작가는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용산 참사의 모습이 마치 5.18 광주의 모습과 흡사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아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작년 12월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 후 탄핵을 주장하며 다시 광장에 모인 광주 시민들을 봤다.

한 맺힌 역사의 현장에서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역사가 또다시 되풀이되고 있으니 그 심정은 오죽했을까.



책을 읽기 전에 각오하고 읽었는데도 읽는 내내 너무 힘들었다.

책을 읽다가 죽은 영혼들이 내 주위를 돌아다니는 것 같았는데, 잠자리에 누워서도 그 환형들이 떠올라 쉬이 잠들기 어려웠고 겨우 잠들었을 때는 꿈속에서 책의 장면들이 그대로 재현이 되어 밤새 뒤척였다.

한강 작가 역시 이 책을 연재했을 당시 건강이 염려될 정도로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그 심정이 충분히 이해된다.



2017년 10월 한강 작가는 이 책으로 이탈리아 문학상 '말라파르테상'을 수상했을 때 이런 수상소감을 남겼다.


"존엄과 폭력이 공존하는 모든 장소, 모든 시대가 광주가 될 수 있다."


현시점에서 참 의미심장한 말이다.

실제로 지구촌 곳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고, 우리나라도 자칫 잘못했으면 광주의 사건을 재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상처를 반면교사로 삼아 앞으로는 이런 일이 절대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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