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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숀앤펀 Feb 06. 2024

아빠 빼고 삼만리

10살 쇼니의 호주 한 달 살기

오늘은 드디어 엄마와 호주 여행 가는 날이다.

잠이 안 올 때면 엄마와 나는 세계여행을 떠나곤 했다.

내가 나라를 말하면 엄마가 그 나라에 관련된 재미난 일들을 말씀해 주셨다.

그중에서도 호주는 매번 새로운 이야기와 모험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호주는 엄마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간 해외였고, 혼자 떠났다고 하셨다.

엄마는 호주가 처음 해외여행이면서도 숙소도 예약하지 않고 가서 첫날 어디 가야 할지 몰라 네 시간이나 우두커니 공항에 앉아있었다고 하셨다. 엄마는 계획이란 건 질색하는 막무가내 탐험가였다고 한다.

그런 엄마가 회사를 그만두고 나를 데리고 호주로 떠난다고 선언했다.

아빠는 좋다고 하는 건지 안된다고 하는 건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알듯 모를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싫었다. 엄마의 호주 이야기는 흥미롭긴 했지만 늘 고생한 이야기뿐이었기 때문이다.

비행기는 타고 싶지만 어린 나이에 노숙하는 거 아닌가 덜컥 겁이 났다.

난 이불속에서 유튜브 볼 때가 제일 행복한데..

엄마는 날 설득하기 위해 왜 호주를 가야 하는지 말씀해 주셨다.

지금 그곳은 여름이라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물놀이도 실컷 할 수 있고 코알라, 캥거루도 볼 수 있다고 하셨다.  또한 시차도 얼마 안나 하와이처럼 시차적응에 힘들지도 않고 영어 배운 것들을 '미션놀이' 할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한 달 동안 학원 대신에 호주에 재미있는 놀이터에서 실컷 놀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내 마음은 이미 호주에 가있었다. 빨리 그곳에 가고 싶었다.


그리고 드디어 인천공항에 왔다.

아빠는 어렵게 휴가를 냈다고 하셨지만 바쁘신지 우리를 공항에 내려놓고 사라지더니 출국장 들어갈 때까지 안 나타나셨다.

난 공항에서 아빠와 술래잡기하는 듯 한참을 ‘아빠 찾아 삼만리’를 찍었다. 끝끝내 아빠를 못 찾을 줄 알았는데 출국하려던 찰나 갑자기 아빠가 나타났다. 아빠에게선 익숙한 담배냄새가 났다.

엄마는 그새를 못 참고 벌써 토낀 거냐며 아빠를 나무랐지만  아빠는 연신 ‘회사전화’를 받아야 한다며 자리를 피했다.


 아침부터 아빠 잔소리에 빨리 떠나고 싶었는데 막상 아빠와 헤어지려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엄마는 출장이 잦아 종종 떨어져 있어 봤어도 아빠와 며칠 동안 떨어져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건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아빠는 아마 내가 보고 싶어 호주로 쫓아올지도 모른다. 그만큼 아빠는 나 없이는 못 사는 딸바보이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엉엉 우는 아빠의 목소리를 분명 들었는데 아빠의 입은 찢어지게 아니 활짝 피어 있었다.

아빠는 보고 싶을 거라고 아빠 혼자 놔두고 떠나면 어떻게 하냐고 말씀하시면서도 계속 활짝 웃고 계셨다.

역시 어른이 되면 마음과 다르게 표정관리를 할 수 있는 거구나 생각하며 아빠를 꼭 안아 드렸다.


나는 울고 싶지 않은데 계속 눈물이 났다.  엄마는 활짝 웃는 아빠의 표정을 보고는 꼴 보기가 싫은지 빨리 들어가자고 재촉하셨다.

엄마는 무겁게 가방 두 개를 메고 계셨지만 잽싸게 돌아섰다. 엄마의 뒷모습은 나와 달리 단호해 보였다.

아마 엄마도 나처럼 아빠랑 헤어지는 게 아쉬워서 눈물을 감추려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도 웃고 계셨다. 역시 엄마도 멋진 어른이셨다.

“빨리 와”

낯선 호주 땅에서 내가 의지할 사람은 엄마뿐이라고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났다.

나는 서둘러 아빠 손을 뿌리치고 엄마에게 달려갔다.

아쉬운 마음에 눈물이 뺨 위로 흘러내렸다.

언젠가 나도 엄마 아빠처럼 슬픔을 참을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엄마 손을 붙잡고 출국장을 떠났다.  


구름을 뚫고 비행기가 높이 높이 날아가니 언제 그랬냐는 듯 내 마음도 같이 들떴다.

신이 난 나는 엄마한테 나중에 꼭 훌륭하고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고 고백했다.

“훌륭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데?”

엄마가 물었다.

“음~ 친구들이 어려워할 때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소외당하는 사람들이 없도록 지켜주는 사람,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잘 듣는 사람“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래, 우리 딸 그렇게 훌륭한 사람으로 크자”

그리고는 물으셨다.

“지금은? 지금 너는 훌륭한 사람인 것 같아?”

나는 같은 반 친구들을 떠올리며 생각해 보았다.

소외당한다고 느끼는 친구가 있었을까? 도움이 필요한 친구가 있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나의 대답에 엄마도 골똘히 생각에 빠지신 것 같았다.

“그럼 엄마는 훌륭한 사람일까?”

엄마가 물으셨다.

미안하지만 아닌 것 같았다.  

엄마는 이번 여행에서 아빠를 소외시켰으니 말이다.

뭐라 대답할지 곤란한 나의 마음을 엄마는 이미 아시는지 멋쩍게 웃으셨다.

엄마는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밖에 보이는 하늘처럼 넓고 높은 마음씨가 필요하다고 하셨다. 그래서 어려운 일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하늘은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거 아니야?”

하늘은 높고 넓지만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도 언제든지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창 밖을 바라보니 노을이 예쁘게 물들고 있었다. 하늘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응원해 주는 것 같았다.


엄마는 나와 호주 여행한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내게 선물해 주겠다고 하셨다.

선물이라니! 벌써부터 마음이 쿵쾅 거린다.  빨리 엄마가 쓴 책을 보고 싶다.

나는 계속해서 언제 도착하냐고 엄마를 재촉했다.

내가 책 주인공이라니 너무너무 신이 나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나의 '10살 모험'이자 '아빠 빼고 삼만리'인 우리의 여행이 이제 시작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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