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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숀앤펀 Feb 06. 2024

오싹오싹 공포로부터 탈출하는 법

10살 쇼니의 호주 한 달 살기

오늘은 멜버른 도서관에서 일정을 시작했다. 여기까지 와서 도서관이라니 너무 싫었다. 가기 싫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안 따라가면 저녁에 내가 좋아하는 수영을 할 수 없을 거라고 하셨다. 하는 수 없었다.


 멜버른 도서관은 엘리자베스 여왕님이 사는 궁전 같았다. 황실처럼 조용했고, 많은 사람들이 근무하고 있었다. 우리는 도서관을 조금 둘러보고 곧장 어린이 전용관에 갔다. 엄마는 재미있는 책들이 너무 많다며 내게 읽을 책을 골라보라고 하셨다. 엄마가 고른 책은 수학책이었다.

"수학을 이렇게 재미나게 설명하다니! 이거 봐 ~ 너무 재밌겠지!"

 가뜩이나 책 읽기 싫은데 처음 엄마가 건넨 책이 수학책이라니 끔찍했다. 그 뒤로 모든 책들이 읽기가 싫어졌다.  나는 저녁에 수영을 못 하는 한이 있어도 영어책만은 안 읽겠다고 고집부렸다. 엄마는 도서관 왔는데 한 권이라도 앉아 읽으라며 복화술로 말씀하셨다. 엄마는 얼마 전에 베이글 먹다가 턱 빠진 후로 턱이 아프다고 하셨는데 사실은 저 어금니 꽉 깨물고하는 복화술 때문인걸 모르시는 듯하다.


 엄마가 호주에서는 아이 혼자 놔두거나 조금이라도 때리는 시늉만 해도 경찰서에 잡혀간다고 하신 게 생각났다. 게다가 여기는 도서관이라 엄마가 소리를 지를 수도 없으실 거다. 그래서 안전이 보장된 나는 더욱더 완강하게 고집 피웠고, 결국 나는 도서관에서 그 어떤 책도 읽지 않고 돌아왔다!

 대신 나는 그림 그리기와 도서관에서 하는 게임에 참여했다. 도서관에서는 '공포탈출' 게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여러 난이도 중에 엄마와 나는 가장 쉬운 단계를 선택했다. 무서운 거 견디는 건 자신 있지만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영어도 어려워질 것 같아서였다. 그러고 보니 영어공포부터 탈출했어야 했는데.


 프로그램은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게 무엇인지' 묻고 대답하는 거부터 시작되었다. 다른 아이들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거미, 귀신, 벌레, 지하실과 같은 대답을 하였다. 나는 즉각 "Mom"이라고 대답했다. 내 대답엔 어떤 망설임도 없었다. 같이 있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활짝 웃었다. 하지만 엄마는 웃지 않으셨다. 엄마는 내 귀에다가 예의 그 복화술을 속사포로  말씀하셨다.

"너 바퀴벌레 제일 싫어하잖아. 너도 벌레라고 해"   

"벌레보다 엄마가 더 무서운데?"

여기는 호주고 도서관이다. 나는 안전하다. 다시 한번 자신감이 솟구친 나는 대답했다. 그렇게 나의 공포탈출 대상은 '엄마'로 정해졌다.


다음 질문은 '공포 대상'을 왜 무서워하게 됐는지, 어떨 때 무서운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그림을 그리는 거였다. 영어로 이야기할 수 없는 나는 바로 그림을 그렸다.

나는 울고 있는 나와 혼내는 엄마를 그렸다. 엄마의 이마에 반짝이는 '빡침'도 잊지 않았다.

엄마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질 수 있도록 표현하고 싶은데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몰랐다. 나의 마음을 엄마에게 물었더니 엄마는 '확성기'라는 게 있다고 알려주시고 어떻게 그리는지는 안 가르쳐 주셨다.

나의 짧은 영어로 인해 나의 그림에 대해서는 엄마가 설명해 주셨다. 엄마는 차분히 설명을 하셨고 모두가 진지하게 엄마를 바라보았다. 다른 아이들의 설명은 힘찬 박수로 끝났는데, 내 차례는 작은 박수와 함께 모두 끄덕거리며 숙연해지는 분위기였다. 엄마가 영어를 잘 못해서 그런가? 나는 생각했다.

그 뒤로 나는 내가 무서울 때 드는 감정, 생각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내가 그린 그림을 도서관 내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겼다. 우리는 우리가 적었던 '공포'에서 탈출했다고 선언했다. 어떤 아이는 벌레를 찾아 갖고 노는 시늉까지 했더랬다. 그렇게 즐겁게 프로그램이 끝났다.

하지만 현실은 아니었다. 엄마 머리에선 엄마가 화났을 때 빛나는 '빡침'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나는 '공포'에 한 발짝 다가섬을 느꼈고 도서관을 나오기가 두려웠다.


 다행히 엄마는 도서관에서의 일들에 대해 한 마디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리곤 맛있는 점심을 사주셨다.

'공포탈출'프로그램은 진짜였다!!

나는 엄마에게 내일도 도서관에 가자고 졸랐다. 도서관은 공부하거나 책 읽는 곳으로만 알았는데 멜버른 도서관은 지루할 틈이 없는 곳이었다!!  

도서관 앞에는 내가 좋아하는 체스하는 곳도 있었고, 여러 가지 재료들로 만들기 하는 곳도 있었다. 직원들은 영어 못 하는 내게도 친절하게 계속 말을 걸어주고 짐을 맡길 땐 종이를 나갈 때까지 잘 들고 있으라며 나에게 미션도 주었다.

 탈출게임은 이제 beginner로 했으니 나에겐 도전해야 할 다른 코스들도 많이 남아있었다. 이걸로도 내가 멜버른 도서관을 다시 가야 하는 이유들은 충분했다. 물론 책 한 권 읽을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괜찮다.

나는 이제 내가 무서워하던 것들과 감정에 대해 어떻게 탈출할 수 있는지 그 비법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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