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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숀앤펀 Feb 07. 2024

나를 찾고싶다면 미술관으로 떠나보세요

10살 쇼니의 호주 한 달 살기

그림 그리는 건 좋아하지만 구경하는 건 딱 질색이다. 헌데 엄마는 그림도 못 그리면서 맨날 미술관에 간다.

 "도대체 그림 보는 게 왜 재밌어?"

나의 질문에 엄마는 음악을 떠올려 보라고 했다. 오래된 노래를 듣다가 예전의 추억이 갑자기 떠오르는 것처럼, 맨날 듣던 노래지만 어느 날은 슬펐다 어느 날은 기뻤다 마음을 움직이는 것처럼, 문득 들은 가사나 멜로디가 꼭 내 마음을 그대로 읽고 노래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처럼 그림도 음악과 닮았다고 했다.

엄마는 같은 그림이어도 감정에 따라, 보는 시점에 따라 그리고 경험에 따라 느끼는 감정이 매번 다르다고 한다. 그래서 때론 잊고 싶었던 감정들과 마주하기도 하고 안 해봤던 생각도 하면서 스스로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응? 대체 무슨 소리인지..."

열심히 설명해 주셨지만 그림 볼 때처럼 재미도 없고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내가 물어봐놓고 딴청부리자 엄마는 '언젠가 너도 알게 되겠지'라며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으셨다.


 멜버른에 있는 National Gallery Victoria(NGV)는 중심지구(CBD) 인근에 위치하고 있으며 빅토리아파크, 로열보타닉가든과도 가까워 오며 가며 들리기 좋은 곳이다. 엄마는 지나가는 길 화장실만 들리자는 핑계로 나를 두 번이나 NGV에 데려가셨다. 하지만 화장실만 가려고 했던 우리는 매번 미술관 문 닫을 때까지 놀았다. 엄마의 화장실 작전은 성공이었다.

 NGV는 내가 알던 지루한 그림들만 전시되어 있는 곳들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입구에는 커다라고 아주 길쭉한 엄지손가락 동상이 있고 동상 너머에는 물이 벽을 따라 멋스럽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안에는 어린이를 위한 전시는 물론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부터 램브란트까지 엄마가 좋아하는 재미없는 그림들과 조각, 동상, 미디어아트, 로봇 등 다양한 현대미술과 고전 작품들이 종류별로 전시되어 있었다. 엄마가 가보셨던 영국박물관이나 루브르뮤지엄, 오르셰미술관 등과는 비교도 안 되게 작고 작품들도 많지는 않지만 조금씩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어 찬찬히 취향 찾기에는 제격인 곳이라고 했다. 나는 물론 엄마가 좋아하는 그림에는 그 어떤 관심도 없었지만 그곳에도 내 눈을 끄는 것이 있었다. 바로 영상 아트였다.

 영상 보는 거라면 그동안 유튜브나 TV 프로그램 다져진 나다. 하지만 기존에 미술관에서 봤던 것들은 내겐 도통 이해도 안 되고 재미없어  스쳐 지나가기만 했다. 그런데 이곳 어느 작품 앞에서 나는 몇 시간이나 빠져들어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어떤 여자가 우리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물품들과 같은 사소한 것들을 알록달록한 색깔과 행동으로 표현한 영상이었는데 같은 영상을 몇 번을 봐도 질리지가 않았다. 나는 그 영상을 보고 따라 하며 즐겼다. 어떤 의미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주 사소하고 별거 아닌 것들을 몇 가지 색깔 옷과 행동으로 흉내 내는 그 모습이 신기했다. 작품을 보고 나니 미술관에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옷과 표정으로 어떤 물건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였다. 난 그 뒤로 엄마와 산책을 하거나 대화하는 중에 무엇인가 떠오르면 그 여자처럼 온몸으로 표현하며 엄마에게 맞춰보라고 했다. 물론 엄마는 센스가 부족해 지금까지 하나도 못 맞추고 있긴 하지만 언젠가 엄마도 나의 작품에 눈을 뜨는 순간이 오겠지 생각하며 기다리기로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이후로도 우리는 여러 개의 움직이는 그림을 보았다. 그중에는 내가 좋아하는 놀이공원을 아주 끔찍한 지옥처럼 표현해 놓은 것도 있었다. 분명 디즈니랜드인데 거기에는 괴물, 동물, 악마부터 외계인들과 심지어 강남스타일을 추는 싸이까지 있었다. 거기에 있는 모든 이들의 표정은 하나도 즐거워 보이지가 않았고 꼭 벌 받는 것처럼 보였다. 놀이공원에서 즐겁지가 않다니. 저곳은 지옥이 분명하다.

 나는 그 작품 앞에서 엄마와 상상력 게임을 했다. 왜 저들 표정이 저런 지, 저들은 어떤 벌을 받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엄마와 나는 각자의 생각과 감정에 대해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번째 관람인데도 처음 방문 때 못 봤던 것들이 참 많았다. 엄마가 말씀하신 발견하는 재미라는 게 이런 건가 나는 생각했다.  


 전시관 끝에는 하얀색 벽에 종이가 가득 칠해진 방이 나왔다. 그 방에는 수 천 개의 편지와 그림들로 가득했다. 역시 지난번 방문 때는 미처 가보지 못한 방이었다. 방 안에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나도 빈 종이와 연필을 집었다. 나는 어린이 전시관에서 본 문어가 떠올라 문어를 그리고 있었다. 엄마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그 방이 'Mom is beautiful'이라는 주제로 엄마에 대한 사랑을 글이나 그림을 표현해 벽에 붙이는 곳이라고 하셨다. 앉아 있는 사람들을 살펴보니 정말 다들 Mom에 대해 쓰고 그리고 있었다. 엄마는 나도 어서 주제에 맞는 무언가를 하라며 씩 웃으셨다. 헐. 난 문어나 그리려고 했는데.

 엄마란 주제로 도대체 무얼 채워 넣어야 하나 고민이 됐던 나는 수 천 개의 종이들을 살펴보았다. 다들 엄마를 가장 사랑하고 엄마가 가장 아름답고 멋지다는 애정의 말들과 그림들로 가득했다.

나는 간단하게 ' I love very Mom'이라고 적어 엄마에게 보여드렸다. 엄마는 빙긋 웃으시더니 한 장만 더 해보라며 기다려 주겠다고 하셨다. 말씀은 기다리시는 거지만 사실 첫 번째가 마음에 안 들어 강제로 하나 더 시키는 거면서 ㅠㅠ

 한 장 더 쓰지 않으면 절대 집에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았던 나는 하는 수 없이 자리에 앉아 뒤에서 (감시하고 있는) 엄마를 떠올리며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

'사랑하는 우리 엄마께. 저랑 호주 여행을 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언제나 제가 응원할게요. 항상 사랑해요.

전 엄마가 참 좋아요. 그리고 알겠지만 전 엄마가 예뻐서 좋은 게 아니고 우리 엄마여서 좋아요.

언제나 건강한 엄마였으면 좋겠어요. 그래야지 나랑 오래 살 수 있으니까요' - 엄마의 딸 쇼니 올림 -

뒷장에는  우리 가족도 그렸다.  나이키를 좋아하는 아빠도 잊지 않았다. 이 정도면 엄마가 감동받으시겠지 하고 엄마께 보여드렸다. 엄마는 편지를 읽어보시곤 '예뻐서 좋은 게 아니고'가 무슨 뜻으로 적었는지 캐물으셨다. 말 그대로 예뻐서 좋은 게 아니라는 건데 왜 자꾸 묻는담. 귀찮았지만 거짓말은 할 수 없기에 나도 열 번 대답했다.

"엄마가 좋다고!  근데 예뻐서 좋은 건 아니라고"

엄마는 어이없어하셨지만 어쨌든 내게 열 번이나 (억지로) 고백받아서 그러신 지 즐거워 보였다.

이제 미술관 종료시간이 다 됐다는 안내가 흘러나왔다. 아직 더 있고 싶었던 나는 '1분만 더 1분만 더'를 외치며 문이 철커덕 닫힐 때까지 그곳에 있었다.  이제 나도 미술관이 재미있다. 미술관은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올 때마다 새로운 곳이다. 나는 다음에 또 오기로 약속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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