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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숀앤펀 Feb 28. 2024

일상은 Wonderful, 어려워도 That's OK

10살 쇼니의 호주 한 달 살기

시드니와 멜버른, 브리즈번까지 각 도시에서는 로열 보타닉 공원 같은 커다란 공원부터 5분 정도만 걸으면 닿을 수 있는 작은 공원들까지 언제든지 산책을 할 수 있다. 공원의 나무에는 저마다의 이름표로 소개되어 있는데 500년 600년 등 몇 백 년 된 나무 사이를 내가 걷고 있다고 생각하면 놀랍기 그지없다.

실제로 이 나무들은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갖고 있는데 사람이 열 명 정도 두 팔을 벌려야 닿을 만큼 굵기가 굵거나, 수 천 개의 나뭇가지가 서로 엉클어져 곧 흐트러질 것만 같은 모습인데도 오히려 단단하게 묶여서 그 자리에서 몇 백 년을 버티고 있다.


 나무 아래에는 대머리 아저씨를 닮은 따오기와 갈매기, 오리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희귀한 새들과 도마뱀, 게코까지 다양한 생물들이 도심에서 함께 살고 있어 심심할 틈이 없다. 특히 난 이곳에서 재주를 하나 발견했는데 그건 바로 새들을 훈련시킬 수 있다는 거다.

이 새들은 우리나라 비둘기 보다 조금 더 똑똑해 보이는데 먹을 거가 있어 보이는 타깃(사람)을 정해놓고 서서히 포위망을 좁히며 산책하듯 다가오거나 혹은 나무 위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한눈파는 순간 와서 확 먹을 거를 낙야채 간다. 

 처음에는 뭐든 자주 흘리는 나는 종종 이들의 표적이 되어 과자 몇 봉지를 날려먹었다. 과자 몇 봉지와 함께 난 늘 혼비백산이 되어 도망가거나 내 정신도 날려먹곤 했지만 이런 경험을 통해 난 이제 그들을 조련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새대가리보다는 나은 사람이니까 먹이로 이들을 멀리 보낼 수도 내 뒤로 펭귄처럼 일렬로 쫓아오게 할 수도 있다. 우선은 기선제압이 관건이기에 나도 너희들처럼 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나는 공원에서 무조건 뛰어다닌다. 절대 새들 따위가 무서워서 저 멀리 과자를 던져놓고 도망가는 게 아니다. 이기려고 뛰고, 뛰고 나면 기분이 좋다. 


 엄마 역시 공원 가는 걸 참 좋아하신다. 엄마는 공원에 가면 감탄할 수 있어서 즐겁다고 하셨다. 엄마는 한국에서 어느 순간 감탄을 잊고 살았다고 한다. 늘 일과 피곤에 찌들어 무미건조한 얼굴로 하루하루를 견디고 버텼다.  엄마는 기뻐도 슬퍼도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곤 했는데 나는 그게 슬펐다. 물론 엄마는 그 얼굴로 나뿐만 아니라 회사 사람들도, 아빠도, 거울 속 엄마에게도 그 무표정으로 바라보는 생활을 했다.


 그런데 공원에 오니 팽팽한 고무줄 같던 엄마의 입술이 탁하고 풀어졌다. 엄마는 이곳의 파란 하늘과 나무, 꽃들을 보며 여고생처럼 까르륵거리기도 하고, '오', '와'와 같은 소리로 놀라워하며 마음껏 감탄하고 있다. 감탄하는 엄마는 밝아 보였고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 한국에서 이 모습은 엄마가 와인을 두 잔쯤 마셨을 때나 보는 모습들인데. 엄마가 밤마다 와인을 찾은 이유가 이거였나 보다. 오늘도 감탄하고 싶어서. 


 그러고 보니 이런 넓은 공원들이 도처에 있어서 그런지 호주 사람들은 감탄이 일상에 배어있는 것 같다. 

내가 혼자 카드키로 엘리베이터를 누르면 “Wow, so clever”라고 말해주고, 캐리어를 끌고 지나갈 때면 ‘What a  brave girl!”이라며 엄지 척을 해준다.

커피를 주문해서 받을 때 엄마는 Thank you만 하는데 호주사람들은 앞에 Great , Amazing을 붙이고 엄마의 카드 결제가 완료될 때면 Perfect 나  Wonderful과 단어를 별로 놀랍지도 않은 일에  꼭 놀라운 단어들을 Thank you 앞에 붙이곤 한다. 

 영어로 하는 모든 질문에 Good으로만 대답하는 엄마덕에 나는 Good이 표현의 전부인 줄만 알았는데 호주 사람들 덕분에 다양한 감탄사들을 배우게 되었다. 호주분들에게 칭찬이라도 듣는 날엔 이젠 나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대답한다. 

"Amazing! Thank you"


 그런데 놀라운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호주에서는 정작 놀라워할 일들에 대해서는 놀라워하지 않고 ‘That’s OK’ 하나로만 대답한다는 것이다. 

 마트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6병짜리 병음료를 실수로 깨 드렸다. 6병이 와장창 깨지고 바닥이 끈적한 음료수 천지가 되었다. 아주머니는 깜짝 놀랐지만 다행히 다치지는 않으셨다. 그런데 직원들은 “That’s Ok” 라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바닥을 정리했다. 아주머닌 병 값을 물어준다거나 바닥을 같이 치우는 일 없이 본인이 산 물건만 계산하고 유유히 떠났다.

직원들은 그 자리에서 한참이나 음료를 치우고 있었지만 마치 그것이 그들의 당연한 일이라는 듯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곳에 와서 밥은 굶어도 요거트 뷔페만큼은 포기할 수 없어 매일 엄마에게 졸라 요거트 뷔페에 가고 있다. 한 번은 엄마와 누가 더 예쁘게 담나 내기를 하다가 내가 마음이 앞서 그만 손이 미끄러져 그릇을 통째로 놓쳐버렸다. 

 새로 산 교통카드까지 잃어버려 가뜩이나 엄마 눈치가 보이는데 요거트까지 땅으로 패대기쳐버린 나는 죽을죄를 지은 얼굴로 엄마를 쳐다보았다. 저녁 수영을 마치고 샤워하고 새로 산 원피스를 입겠다고 고집부려 입고 나왔는데 옷은 요거트 범벅이 되었다. 엄마 말대로 새로 산 원피스는 내일 입고 오늘 입던 옷을 입었으면 좀 상황이 달라졌을까. 신이시여. 왜 나쁜 일은 한꺼번에 생기나요. 


 엄마는 바로 어금니를 꽉 깨물곤 "으휴~ 욕심부리지 말랬지!" 라며 사자후를 날리며 집에 가서 보자고 하셨다. 부디 그 집이 한국집이어야 할 텐데 떨리는 숨을 참으며 나는 마음속으로 빌었다. 

 엄마는 직원들에게 이야기하고 직접 치우기 위해 티슈를 가져왔다. 그런데 직원들은 That’s OK라며 놔두고 다시 그냥 새로 푸라고 했다. 민망한 엄마가 같이 치우겠다고 해도 직원들은 ‘That’s OK’라며 본인들이 정리할 테니 하던 일 보라고 했다.  

 엄마는 머쓱하게 내 옷을 닦아주고 우리는 다시 요거트를 담았다. 나도 아무렇지 않게 엄마에게 다시 내기를 하자고 해맑게 말했다. 하지만 대답 대신 돌아온 건 살벌한 엄마의 눈빛이었다. 난 그 눈빛에 또 요거트를 쏟을 뻔했지만 어쨌든 That’s OK 덕분에 우리는 어떤 돈도 물지 않고, 나도 겨우 살았다.  


 그리고 다음 날 That's ok 사건은 또 있었는데 그건 바로 내가 처음 롤러코스터를 탈 때였다. 앞서 가던 차가 도착하고 드디어 내가 탈 차례가 되었다. 두근두근 인생 첫 롤러코스터를 타려고 하는데 어떤 언니가 내리면서 직원들에게 뭐라 뭐라 이야기했다. 자세히 보니 이 언니가 롤러코스터에 토를 해놨다. 하필 맨 뒤에 앉은 언니, 하필 우리가 탈 그 자리에다가 먹은 것도 많은 언니는 1번부터 차례차례 여기저기 토를 묻혀놨다.

사람들은 머리카락에 묻은 토를 쓸어내리고 있었다. 언니는 약 20초간 상황 설명을 하고 자리를 떴다. 그렇게나 많이 토해놓고 언니는 아직도 더 토를 해야 할 것 같은 표정이었다. 

 이때도 직원들은 That's ok라며 탑승칸에 있던 우리에게 갑자기 다시 대기줄로 물러서라고 했다. 그리고 약 20분간 청소와 안전점검이 이루어졌다.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에겐 간단하게 상황 설명을 하고 끝이었다.

모두들 아무렇지 않다는 듯 기다렸다. 엄마와 나만이 치워지는 토를 보며 지금이라도 나갈 것인가 탈 것인가를 수 백번 고민했다. 125cm인 내 키가 탈 수 있는 게 많지 않았기에 나는 타기로 했다. 사실 무서워 보이긴 했지만 한 번도 타본 경험은 없기에 얼마나 무서운지 감도 없었다. 그런데 처음 탄 놀이기구는 전혀 That's OK가 아니었다. 나는 내려서 꺼이꺼이 울었다. 말리지 않은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엄마, 이건 That's 노케이야 노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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