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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숀앤펀 Feb 26. 2024

오지(Aussie)에서 만난 백 개의 꿈

10살 쇼니의 호주 한 달 살기-골드코스트 카빌애비뉴(Cavill Ave

 나는 커서 아이돌이나 유튜버가 하고 싶었다. 유명해져서 내가 좋아하는 블랙핑크, 아이브부터 흔한 남매, 헤이지니까지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들과 유튜버  만나는 게 내 소원이자 꿈이었다.

물론 부자의 꿈도 있었다. 아직까지 내가 봤을 때 최고 부자는 회전초밥집 사장님이었기에 초밥집 사장님도 꿈꾸고 있다. 물론 나는 회와 같은 날 생선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먹지만 수 십 개의 그릇에 음식을 올리고 돌리고 그걸로 돈을 벌 수 있다니! 이 보다 더 부자는 없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유치원 때부터 내 꿈에 초밥집 사장님은 늘 1순위였다. 


 그런데 호주에 오니 되고 싶은 게 많아졌다. 비행기를 탔더니 전 세계를 여행하는 스튜어디스가 되고 싶었고, 긴급상황에 출동한 소방관 언니 또한 너무 멋있었다.  동물원에 가서는 동물 친구들을 세밀히 살피는 사육사가 꼭 되리라고 다짐했다. 정말 확고했다. 그런데 숙소로 돌아와 TV를 틀고 만화를 보니 만화에서 수화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이 있었다.  엄마께 저분은 뭐하시는 거냐고 물으니 엄마가 수화에 대해 알려주며 수화란 언어의 장벽 없이 손으로 통할 수 있는 언어라고 했다. 영어, 중국어 상관없이 손가락으로 전 세계 사람들과 대부분 소통할 수 있다니 이 또한 너무 멋있어서 나는 당장 사육사의 꿈을 버리고 수화를 배워 사용하는 직업을 갖겠다고 다짐했다. 그 후로 영어로 자꾸 말 시키는 녀석들에게 나는 내가 만든 수화로 대답하며 열심히 능력을 키워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오늘 또 새로운 꿈이 생겼다. 엄마랑 저녁 장 보러 서퍼스 파라다이스의 카빌 애비뉴를 지나가다 본 거리공연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호주에서는 쉽게 거리 공연을 하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대부분 감미로운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었었는데 오늘은 훌라후프를 타는 사람, 동상처럼 몇 시간이고 그 자리에 같은 자세로 앉아있는 사람과 춤추는 사람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본인의 재능을 뽐내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이들 앞에서 같이 춤을 추거나 호응을 하며 그들 앞에 놓인 빈 통에 돈도 주는 모습을 보고 완전히 매료되었다. 나는 호주에 와서 하고픈게 너무 많아 머리가 지끈지끈 아플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본 공연은 훌라후프를 타는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누구든지 열심히 노력하면 못 할 게 없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아저씨는 어릴 때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라 갖고 놀 장난감이 훌라후프뿐이라 갖고 놀기 시작했는데 오늘에 이르렀다고 하셨다. 그리고 너무 힘들어서 시작한 훌라후프가 지금 아저씨의 삶을 이끌어 주고 있다며 혹시라도 지금 힘든 사람들이 있다면 아저씨를 보고 위로를 받고 힘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아저씨는 훌라후프 꼭대기 위에 거꾸로 매달려서 땀을 뻘뻘 흘리셨지만 진지했고 간절했다. 

 나는 연신 물개 박수를 치고 있는데 옆에 앉은 금발머리 언니들은 코끝이 찡한 듯 훌쩍 거리며 눈물을 훔쳤다.


 아저씨는 연기도 잘하고 장난기도 많았다. 그리고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며 말씀하셨다. 지금부터 노력하면 하고 싶은 건 뭐든 할 수 있다고. 본인같이 어렵고 힘든 가정사에서 태어난 사람도 어찌 보면 사소한 훌라후프로 이렇게 성공해서 잘 살 고 있다고 하시며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지금 당장 시작해 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훌라후프 제자를 찾는다는 아저씨는 우리들에게 '하고 싶은 사람 손' 들라고 하셨다.

물론 나는 무조건 반사적으로 번쩍 손을 추켜올렸다. 뭔지 몰라도 'riase your hand'라고 말할 때는 손부터 지켜 올려야 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엄마는 용수철처럼 내 팔을 아래로 내쳐버렸다. 아저씨가 엄마를 보며 'Please enjoy'라고 하셨고 엄마는 머쓱한지 숨겨지지도 않는 조그마한 내 얼굴 뒤로 숨어버렸다. 


 어쨌거나 아저씨의 용기 어린 말에 힘입어 나도 시작하기로 했다. 우선 나는 내가 어떤 거리공연으로 돈을 벌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일단 동상처럼 앉아있는 은색 아저씨부터 따라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옆에 같은 포즈로 앉아 있는 시늉을 했다. 그런데 5초가 되지 않아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더니 이내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나 말고도 아저씨를 따라 해 보려는 어린이와 어른들 여럿이 휘청거리며 이내 넘어졌다.


 아저씨에겐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투명의자가 있는 듯 편안해 보였다. 아저씨는 몇 시간을 그 자세로 같은 표정으로 우두커니 앉아계셨다.

갈 때도 올때도 돌처럼 앉아 계신 아저씨를 보고 엄마는 정말 대단하다고 하셨다.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면 저렇게 할 수 있을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라며 대단하다고 손뼉 치셨다.

비록 몇 번 밖에 시도 안 해보긴 했지만 나는 나름 노력파라고 생각했는데 거리에 나와있는 이모, 삼촌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정말 숱한 피땀 노력이 깃든 공연들이 거리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도저히 이 분들 앞을 지나갈 수 없었다. 현금이 없다는 엄마에게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서라도 현금을 가져와 그들에게 공연비를 지불해야 한다고 나는 주장했다. 

엄마는 요새는 큐알코드로 팁도 지불한다고 했다. 그리고 각각에 놓여있는 큐알코드를 찍고는 이내 와이파이가 안 터진다며 숙소 돌아가서 꼭 공연비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제야 나는 자리를 떠났다. 


 나는 거리공연으로 무얼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았다. 우선 줄넘기, 품새 정도가 생각이 났지만 오늘 본 이모 삼촌들에 비하면 흠.. 더욱 노력요함이다.  

숙소로 가는 길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노래를 부르는 금발머리 언니를 지나갈 때였다.

 "저렇게 작은 목소리로 노래도 못할 거면서 왜 나왔다니"

 엄마가 말씀하셨다. 

"엄마, 못 하든 잘 하든 저렇게 나와있는 게 대단한 거야. 저게 자신감이 있는 거라고. 목소리는 일부러 분위기상 작게 하거나 뒤에 강조하려고 조절하는 걸 수도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어? 아무리 한국말이라도 언니가 들으면 얼마나 서운하겠어? "

라며 나는 엄마에게 쏘아댔다. 하지만 사실 나도 언니의 목소리가 잘 들리진 않았다. 그래도 언니가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이내 엄마의 생각이 짧았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거리에 나와있는 사람들은 모두 많은 노력과 고민 끝에 나온 사람들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받을만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숙소로 돌아와서도 훌라후프 아저씨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내가 되고 싶은 게 뭔지, 나의 꿈에 대해 한참을 고민했지고 드디어 답을 내렸다. 

 엄마에게 내 18번 곡들을 틀어달라고 부탁했다. 마침 오늘은 금요일 엄마와 댄스파티 하는 날이기도 하니까 나는 댄스로 세계를 정복하리라 다짐했다.

엄마도 한 때 아람단 활동과 수학여행 다니던 시절 학교 대표로 학예회, 학교대전 등을 나가 춤을 췄다고 했다. 물론 엄마는 늘 센터를 맡았다고 하는데 주로 춤은 안 추고 앞에서 립싱크로 뻥긋 뻥긋한 역할들만 맡았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셨다. 엄마는 춤보단 연기자로서 훌륭한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다.

 

마침 숙소에는 방마다 커다란 거울이 있었다. 엄마와 나는 오랜만에 K-Pop에 푹 빠져 아이브, 블랙핑크, (여자) 아이들 노래들을 틀고 연습 삼매경에 빠졌다.

그런데 엄마는 아무리 주요 동작을 가르쳐줘도 자기 멋대로였다. 난 이럴 거면 서로 팔짱이나 끼고 한 바퀴 돌자고 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해서 돌고 돌고 또 돌았다. 훌라후프 아저씨가 Dizzy Dizzy 외치며 공연하던 게 불현듯 떠올랐다.


 나의 K-Pop으로 지구를 점령하겠다는 목표가 팔짱으로 빙글빙글 도는 것으로 마무리되긴 했지만 오페라 하우스에서도, 뉴욕 타임스퀘어서도 전 세계인들과 팔짱 끼고도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제법 만족스러웠다.

 

내일은 토요일이기도 한니 늦도록 잠을 자야겠다. 꿈속에서 전 세계 투어공연을 마치려면 바쁠 테니 오랜만에게으름 좀 피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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