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 쇼니의 호주 한 달 살기-멜번 소방관
'삐- 삐- 삐- 삐-'
아침을 먹는데 갑자기 큰 경보음이 울렸다. 어찌나 크게 울리는지 먹다가 화들짝 놀라 들고 있던 빵을 놓칠 지경이었다.
엄마는 잠깐 기다려 보자고 했다. 한국에서는 안전점검이나 오작동으로 이런 일들이 가끔씩 있곤 했다고 하셨다. 그런데 멈추기를 바라던 경보음은 이내 더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대피하라는 안내방송도 흘러나왔다. 엄마는 즉시 이게 무슨 상황인지 확인하기 위해 리셉션에 전화를 걸었다. 잠옷 차림에 엄마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리셉션이 연결되는 동안 옷을 챙겨 입고 여권과 주요 물품들을 주섬 주섬 챙겼다.
연결된 수화기에서는 방송에서 나오고 있는 '지금 당장 대피하라'라는 말만 나왔다. 그리곤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한 대, 두 대, 세 대 여러 대의 사이렌 소리가 우리와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허겁지겁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내 심장도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문을 열으니 매캐한 냄새와 연기가 복도에 자욱했다. 나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서둘러 계단을 찾았다. 우리가 묶던 곳은 34층이었다. 엄마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엘리베이터가 운행되는지만 확인해 보자고 하셨다. 나는 안된다고 무조건 계단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엄마는 정말 혹시나 문제가 있으면 엘리베이터가 멈췄을 테니 계단으로 대피해야 하고 냄새가 매우 가까운 것 같으니 불 난 곳이 어느 쪽인지(아래 혹은 위층인지) 파악해야 대피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렇게 실랑이를 하는 와중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런데 우리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얼음이 되었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완전 무장한 소방관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우리 층에서 내리셨다.
연기의 주범이 우리 층에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다리도 후들거려 진정이 되지 않았다.
엄마는 소방관 아저씨께 엘리베이터를 타도 되는지 물었고 우선은 타고 내려가서 대피하라고 하셔서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첫 번째 경보음이 울리고 우리가 1층으로 대피하기까지 채 1분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대피하고 보니 우리가 꼴찌였다. 대부분 속옷 바람으로 나와 1층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4대의 소방차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로비에 모여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수영장에서 그렇게 많이 보이던 한국인들이 보이지 않았다. 호텔에서 마주쳤던 수많은 한국분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엄마, 한국 사람들은 아무도 없어. 어떻게 해?"
나는 발을 동동거렸다.
상황 파악하느라 정신줄 놓고 있던 엄마도 살펴보곤 같이 걱정하셨다.
"진짜 큰일이다. 안전점검이나 오작동이라고 생각하는 거 아냐? 빨리 나와야 할 텐데"
사실 엄마도 그랬다. 엄마도 처음 네 번 정도 울렸을 때는 안전점검이나 누가 실수로 눌러서 오작동된 거라고 괜찮다며 나를 진정시켰다. 곧 잘못 작동되었다고 사과방송이 나오거나 멈출 거라고 했다.
그런데 '대피하세요' '대피하세요'라는 멘트가 같이 나오기 시작하자 엄마의 동공도 같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설마 진짜야?"
옹기종기 모여있는 우리에게 호텔직원은 이제 방으로 돌아가도 괜찮다고 말했다. 누군가가 냄비를 태우는 바람에 연기가 났고, 연기가 심해져 센서를 자극해 탈출 신호가 감지됐다는 것이다. 여기저기서 "Thanks God!!!"이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빠르게 대피했던 사람들은 순서를 지켜 엘리베이터를 타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우리는 숙소로 바로 들어가기가 꺼려졌다. (더군다나 우리 층이었기에) 나는 잠옷 바람이었지만 나온 김에 옆에 커피숍에서 간단하게 뭐라도 마저 먹고 진정이 되면 돌아가자고 했다. 엄마도 좋다고 하셨다.
우리는 호주의 안전관리시스템에 이야기하며 아침을 먹었다. 하루만 보 이상씩 수 없이 돌아다닌 동네지만 소방차가 어딨는지는 구경도 못했더랬다. 그런데 어디 붙어있었는지 모르던 소방차가 연기감지 센서 작동 후 1분 만에 4대나 출동하고 여덟 명의 소방관이 팀을 이뤄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호텔 직원들도 당황하긴 했지만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하려 소방관과 움직였으며, 투숙인들은 대부분 1분 내로 대피를 완료하고 상황이 해결되기를 기다렸다.
아침을 먹고 숙소로 복귀하려고 보니 4대였던 소방차는 이제 한 대만 남아있었다. 몇 명의 소방관만이 남아서 뒷정리를 수습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소방관들을 마주쳤을 때 두 가지 감정이 들었다. 하나는 '왜 우리 층에 내리세요?
또 하나는 이제 저분들이 왔으니 나는 안심해도 된 다는 것이다. 스쳐지나기만 했을 뿐인데도 소방관들이 다 해결해 줄 거라는 굳건한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안도했고 차분히 기다릴 수 있었다.
그중에는 아주 키 크고 근육질에 멋진 오빠도 있었지만, 아담한 외국인 언니도 있었다. 언니는 비록 체구는 작지만 무거운 보호장구들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어깨에 메고 로보캅처럼 내 앞을 철컥철컥 지나다녔다. 그리곤 사실 제일 심장 떨렸을 호텔 직원들에게 이제 마무리 됐으니까 괜찮다고 위로해 주고 있었다.
나는 그 언니에게 홀랑 반해버렸고 이제 나의 꿈은 소방관이 되었다. 엄마는 그동안 나의 꿈이었던 디자이너, 아이돌, 초밥집 사장님(접시가 많아 만드는 재미가 있고 제일 돈 많이 버는 것처럼 보이므로)은 반대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소방관만큼은 위험하다고 절대 안 된다고 하셨다. 그래도 나는 소방관 언니와 같은 슈퍼히어로의 삶을 조심스레 꿈꿔 본다. 원래 슈퍼히어로란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해내는 사람이니까.
엄마는 다시 한번 안전에 대해 몸소 체험하는 계기가 됐다며 더더욱 이 나라에 대한 신뢰가 간다고 했다. 매일 회사나 아파트에서 하던 안전점검과 대피훈련과는 차원이 다른 실전 훈련이라며 다음에는 더 빠르게 대응하겠다고 다짐했다.
마켓에 장을 보러 나갔는데 길거리가 시끌시끌하다. 소방관 아저씨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안전 스티커를 나눠주며 위급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직접 수화기도 사용할 수 있게 무료체험을 하고 있었다. 나도 스티커가 받고 싶어 줄을 섰다. 아까의 그 멋진 소방관 언니는 아니었지만 소화기 쓰는 법과 비상시 대응 수칙 같은 내용이 담긴 스티커를 주시며 같이 사진도 찍었다.
소방관 아저씨가 내게 잘 했다고 엄지척을 해주셨다. 엄마는 내게 진정 멋진 분은 소방관 아저씨라며 같이 쌍따봉으로 화답하자고 하셨다.
'소방관아저씨 정말 최고에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