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숀앤펀 Feb 20. 2024

멀리 와서도 함께 해야 웃는 거지요:)

10살 쇼니의 호주 한 달 살기

 "오늘이 최고의 날이야"

나는 들떠서 말했다. 오늘은 멜버른에서 알게 된 동생을 돌고 돌아 골드코스트에서 다시 만난 날이다. 

멜버른 도서관에서 체스하다가 우연히 만나 같이 놀았던 한 살 어린 동생과 일정이 맞으면 한번 더 보기로 했다. 그리고 신이시여! 드디어 그 일정이 맞아떨어졌다.

우리는 이번에도 정말 우연히 캥거루 먹이를 주다가 만났다. 이것은 운명이다. 나는 오늘 모든 일정을 뒤로하고 동생과 놀았다. 동생도 나처럼 엄마와 단 둘이 여행하고 있었다. 동생은 두 달째 호주 여행 중이라고 했다. 많은 것을 경험하고 즐기다 이제 곧 한국에 돌아간다고 했다. 정말 대단했다.


 우리는 커럼빈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 뻘뻘 땀 흘리며 아주 재미나게 놀았다. 특별히 오늘은 동생 말고도 캥거루와 도마뱀 코알라 펠리컨까지 모두가 우리의 친구였다. 난 늘 먹을 거를 흘리고 다녀 새들한테 유독 인기가 많았는데 이곳에서는 팔뚝만 한 도마뱀까지 나를 쫓아다녔다. 오늘 간식으로 사과를 싸갔기 때문이다. 

 냠냠 쩝쩝 사과를 먹는 내 주위로 도마뱀 네다섯 마리가 모이기 시작했다. 작은놈부터 큰 놈까지 놈들은 나와 사과를 번갈아 보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했다. 녀석들은 내가 볼 때는 멈췄다가 내가 잠깐 고개를 돌리는 사이에 쏜살같이 내게 돌진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리면 이내 얼음처럼 한참이나 멈춰있었다. 녀석들이 점점 포위망을 좁혀오자 무서워진 나는 사과를 슬며시 엄마 뒤꽁무니에다 놓고 도망갔다. 엄마는 도마뱀에게 포위당한지도 모른 채 이모와 이야기를 하다가 나중에서야 기겁을 했다.  본성은 이럴 때 나온다. 그동안 이모한테 이미지 관리(?)하느라 나긋나긋하게 나를 부르던 엄마는 그곳이 떠나갈 듯 사자후를 날렸다. 

"야!!!! 저쪽 가서 먹으랬지!! 이 자식들 여기 모이게 하지 말라니까!!!!"

 정신줄 놓은 엄마를 보며 나는 동생과 얼마나 낄낄거렸는지 모른다.  다행히 엄마와는 달리 동생은 도마뱀 등도 쓰다듬고 멀리 무찔러 줄 줄도 알았다. 나는 언니인척 했지만 키도 나보다 더 크고 용감한 동생의 뒤에 숨어 엄마와 같이 소리만 연신 질러댔다. 

"저리 가! 저리 가라니까! 내가 너 저리 가라고 했다아아아아아!!!" 

그런데 그럴수록 신기하게도 녀석들은 도망가지 않고 더 바짝 다가왔다. 


 커럼빈을 나와 우리는 함께 점심을 먹고 동생의 숙소에 초대받아 놀러 가기로 했다.  동생의 숙소는 펜트하우스 같은 호텔에 엄청 부자들만 사는 그런 곳 같았다. 엄마와 나는 연신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여기 너무 좋다'를 연발했다. 부자에 마음씨까지 착한 이모는 방도 많아 자고 가라고 하셨지만 엄마는 그건 안된다며 사양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하지만 꼭 그 펜트하우스 같은 집에서 하룻밤이라도 자보고 싶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전면 통창에 보이는 골드코스트 바다라니! 생각만 해도 흥분됐다.

물론 엄마가 더 흥분한 것 같아 보였다. 베란다 있는 숙소로 옮기고 틈만 나면 베란다에서 와인 마시는 엄마에게 동생네 숙소의 베란다는 24시간 술맛 도는 그런 훌륭한 와인바가 틀림없었다. 친절하신 이모는 입맛 다시는 엄마를 보며 "여기서 와인 한잔 하실래요?"라고 물으셨다. 엄마는 마음으로는 이미 와인 댓 병 깠으면서 혹시나 민폐가 될까 연신 멋진 바다만 바라보며 입맛만 쩝쩝 다셨다. 

"어휴 아니에요~ 괜찮아요.. 쩝쩝쩝쩝..."


 나는 대궐 같은 동생네 숙소에서 비밀 아지트 놀이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며 신나게 놀았다. 

이렇게 친구네 집에 초대되어 혹은 내가 초대해서 놀아보는 것이 나는 사실 소원이었다. 하지만 바쁘고 영 낯가림이 심한 엄마는 그럴 시간도 그럴 생각도 없었다. 이다음에 내가 좀 더 크면 자연스레 친구와 약속을 잡고 놀러 갈 수 있다고 그때까지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래도 친구네 집에서 놀다 온 이야기들을 들으면 영 부러운 건 사실이었다. 그런 날은 괜히 울적해졌지만 이내 아빠와 신나게 놀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 사라졌다. 다행히 나는 아직 아빠와 놀아 주는 게 배꼽 빠지도록 재밌긴 하지만, 이제 곧 안 놀아 줄 작정이다. 


 엄마는 내가 동생과 노는 동안 이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셨다. 엄마는 새로운 관계에서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해 보였다. 이곳이 호주여서 그런지 이모가 좋은 분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펜트하우스 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엄마도 연신 즐거워했고, 이모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사회생활에 찌들어 납작해진 엄마에게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이 꼭 두려운 것만이 아님을 알려준 동생과 이모에게 나도 참 감사하다. 우리 또 만나! :)


이전 14화 잃어버린 엄마까지 찾아줍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