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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숀앤펀 Feb 16. 2024

돈 주고도 못 하지만 돈도 들지 않는 칭찬샤워

10살 쇼니의 호주 한 달 살기

 시드니는 도착하자 멜버른이 그리워지게 했다. 훨씬 더 복작거리는 거리와 빵빵 거리는 차들 게다가 우중충한 날씨라니.. 물론 엄마는 이런 날씨도 좋다고 하셨지만 난 벌써 멜버른의 시원한 공기가 그리웠다.


 오늘도 무료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일정을 시작했다. 나는 이제 박물관이 놀이터보다 재밌다. 왜냐면 호주 박물관은 놀이터보다 체험하고 놀거리가 더 많기 때문이다. 꼭 놀이기구 하나하나 다 타고 가야 할 것처럼 작품∙전시 그 어느 하나 허투루 넘어가는 게 없다.  다 직접 참여해서 즐기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게 되어있기 때문에 엄마 입장에서 시간 때우기도 그만이다. 멜버른에서 갔던 박물관, 과학관(Science works), ACMI 등 이곳의 체험기는 나중에 따로 보고서로 정리해도 모자랄 만큼 알차게 놀고 왔다. 


 오늘 간 시드니 박물관은 오페라하우스의 역사에 대해 알 수 있는 곳이었다. 시드니 박물관은 멜버른 박물관에 비하면 콩알만 하고 전시도 한정적인 곳이었기에 엄마는 잠깐 들렀다만 가자고 하셨다. 하지만 난 이곳에서도 한참을 놀다 나왔다.  

 사실 나는 오페라하우스 역사 따위엔 관심이 없었지만 입장할 때 어린이에겐 미션놀이를 줬기 때문이다. 직원분께서 10문제를 다 풀면 좋아하는 도장을 찍어준다고 하시며 나에게 꼭 '완료'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하셨다.

 문제 중에는 나의 생각을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해야 하는 문제도 있었고, 나의 생일에 일어난 일들을 찾아보는 문제도 있었다. 어쨌든 나는 영어는 몰라도 문제를 다 풀 때까지 박물관 여기저기를 쏘아 다녔다.

빨리 떠나고 싶은 엄마가 나에게 정답 치트키를 알려주었지만 (뒷장 하단에 정답이 모두 나와있었음) 난 내가 직접 정답이 진짜 맞는지 다 확인한 후에야 박물관을 나올 수 있었다. 물론 10문제 정답 맞힌 거의 보상이  '훌륭해요' 느낌의 도장을 골라 찍어주는 것에 불과해서 김새긴 했지만, 도장을 찍어주며 받은 직원분의 칭찬에 내 어깨는 으쓱해졌다. 

 

우리는 이어서 시드니 현대 미술관 옥상 카페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미술관을 둘러봤다.  미술관은 박물관과는 달리 체험할만한 게 없었다. 그래서 난 직접 체험활동을 만들기로 했다. 작품 중에 제일 괜찮은 작품 앞에 철퍼덕 앉아 연습장과 색연필을 꺼냈다.

 내가 30분 동안 그림을 따라 그리며 완성할 때쯤 큐레이션 투어가 내가 그리고 있는 작품 앞에서 진행됐다. 단체의 외국인 아줌마 아저씨들이 큐레이터 할아버지의 말씀을 들으시며 작품설명을 듣고 계셨다. 그런데 어떤 아주머니 한 분께서 내게 가까이 오더니 내 그림을 보시곤 

"Wow, You are really good!"

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투어 단체분들께 "Everybody look this kids drawing"이라고 말하자 다들 나의 작품을 쳐다보았다. 이윽고 칭찬세례가 쏟아졌다.   "Wow", "Awsume", "Great" "Excellet"와 같은 말들과 함께 쌍따봉들이 곱빼기로 내게 날아왔다. 늘 절도 있는(?) 엄마의 칭찬만 받다가 넘치도록 사랑스러운 리액션과 칭찬에 나는 기분이 몹시 좋아졌다. 무뚝뚝하게 작품을 지키고 있던 보디가드 아저씨 마저 터미네이터 같은 따봉과 함께 윙크를 했다. 난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다. 

 몇 개 더 그리고 싶었지만 시간 관계상 집에서 하기로 하고 작품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제 미술관은 엄마보다 내가 더 좋아하게 되었다.

 또한 저건 어떻게 그릴까, 이건 뭘로 표현하면 좋을까 생각하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그림들에 대한 취향도 알게 되었다.  바로 깔끔하고 독특해서 특징이 있으면서도 단색으로 이루어진 현대미술을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래야 따라 그리기가 쉽긴 하지만 말이다.  


 돌아오는 길에 퀸빅토리아 구경을 했다. 고풍스러운 기차역 같기도 하고 유럽에 온 것 같기도 한 곳이었다. 상점들을 둘러보다 보니 꼭대기층에 야마하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고 피아노 앞에 앉아 나의 18번인 '고양이 춤'을 연주했다. 

하지만 연주를 마쳤는데도 지나가는 사람 아무도 반응이 없었다. 엄마만이 웃고 있었다. 나는 아까보다 더 빠르게 '고양이 춤'을 연주했다. 그래도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고 사람도 없었다. 엄마만이 '이제 그만 나와'라며 정색하기 시작했다. 에잇. 피아노학원 그만두는 게 아니었는데.

 이번엔 엄마가 사진을 찍어달라며 피아노 앞에 앉았다. 나 칠 때는 연신 찰칵거리더니 엄마는 왜 촬영을 해달라는 건지 조금 심술이 났다. 

 엄마는 고민하더니 이루마의 'Kiss the rain'을 쳤다. 엄마의 18번은 쇼팽인데 그래도 우리나라 작곡가가 작곡한 음악을 치고 싶었다나. 아무튼 엄마는 조심조심 피아노 건반을 두드렸다. 그런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두 명씩 멈춰 서서 엄마의 피아노 연주를 감상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피아노를 치다가 고개를 들고는 깜짝 놀라 바로 자리를 피했다. 주변엔 빙긋 웃으며 인사를 하는 분, 박수를 쳐주는 분 따봉을 날려주시는 분들이 계셨다. 내가 봤을 땐 엄마는 영 꽝이고 내가 더 잘 치는데 엄마에게도 따봉을 날려주는 걸 보니 이곳 사람들은 따봉이 습관인 게 확실하다. 어쩐지 멜버른에 있는 National Gallery of Victoria 앞에 엄청 큰 따봉이 있더라니. 짜장면을 보통만 시켜도 곱빼기로 주는 칭찬 인심이 이곳에 있다. 그래서 길가에 노래하는 예술가들이 많은 걸까?  내가 봤을 땐 내가 더 잘할 것 같은데;;ㅋ 조금만 재능 있어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뽐내고 싶어 하는 용기가 부럽다. 엄마도 이곳에서 칭찬 습관을 좀 배웠으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엄지를 쭉 길게 피고 내게 웃으며 매일매일 따봉을 날려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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