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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숀앤펀 Feb 15. 2024

학원대신 호주 놀이터에 간 이유

10살 쇼니의 호주 한 달 살기


 스마트폰 없이 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 아니. 절대 그럴 수 없다. 스마트폰 없이는 나도 엄마도 행복할 수 없다. 한국에 있을 때 나는 하루 3-4시간을 티비나 스마트폰을 보고 살았다. 그런데 호주여행에서 엄마는 내 스마트폰을 한국에 두고 오자고 하셨다. 나는 엄마가 아이패드는 챙기겠다고 하셨기 때문에 내심 그래도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즐길 수 있을 거라 기대했기 때문에 좋다고 했다. 그런데 엄마는 와이파이가 안 된다는 핑계로, 여기가 해외라 영어밖에 안 나온다는 핑계로 (다 아는데) 영어만 틀어주신다. 그러면 이내 나는 재미가 없어져 꺼버리고 게임을 할 수 없는지 묻는다. 마찬가지로 와이파이가 연결이 안 된다며 엄마가 안 된다고 하셨다. 엄마는 핸드폰으로 계속 카톡 하면서!


 오늘 같이 근교로 여행 가는 날에는 더 좀이 쑤셔 못 살겠다. 오늘은 2시간 거리에 위치한 (차를 타면 1시간인) 소버린힐에 기차를 타고 갔다. 기차 탄지 5분이 채 안돼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이패드를 요청했지만 엄마는 여기는 정말 아무것도 연결이 되지 않아 무용지물이라고 했다. 아 2시간 어떻게 버틴담. 엄마와의 대화와 게임도 1시간이면 차고 넘친다. 나머지 시간에 핸드폰이 아니면 나는 도대체 무얼 해야 하는가. 책 보기는 싫은데. 나는 짜증이 올라왔다. 1분 1초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는 못 버티겠다.


 엄마는 창밖을 구경하라고 하셨다. 창 밖 드넓은 초원 위에는 말도 보이고, 양도 보이고, 소도 보이고, 돼지도 보였다. 심심하다고 보채는 내게 엄마는 왕년 호주 노동자 시절 이야기를 해주셨다. 딸기농장에서 일하며 은하수를 봤던 이야기, 양털 깎다가 생긴 해프닝과 행운의 상징인 흰색 캥거루를 보게 된 이야기까지.. 이 모든 게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있는 저 컨테이너에서 사는 5개월 동안 있었던 일들이라고 하셨다. 엄마는 지금도 도시보다 이런 자연 속에 있는 삶이 훨씬 더 그립다고 했다. 


 딸기농장에서 엄마의 별명은 '딸신'이었다고 한다.  한 한국인분이 지어준 별명인데 그 뒤로 농장주부터 다른 근로자들까지 엄마를 그렇게 불렀다고 했다.

엄마는 광활한 노지밭에서 아침 7시부터 2시까지 딸기 따는 업무를 했는데 딸기를 딴 무게만큼 돈을 벌었다고 했다. 덩치 큰 서양 사람들은 쪼그리고 앉아 딸기를 따다가 너나 할 것 없이 3일이면 못 한다고 도망치곤 했다. 반면 동양인들은 비교적 오래 버티곤 했는데 그중에서도 엄마는 악착같이 오리걸음하며 딸기밭을 휩쓸었다고 한다. 트레이를 비우러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 아까워 엄마 배는 캥거루처럼 딸기로 가득했고, 주머니며 모자며 넣을 수 있는 곳엔 딸기를 가득 채워 늘 1등이었다고 해서 '딸기 따기의 신= 즉, 딸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했다. 지금도 엄마 등에는 그 당시 딸기 따면서 태워먹은(?) 등짝 한편이 훈장처럼 남아있다. 엄마는 단 돈 150만 원을 가지고 호주로 떠났지만 딸기농장에서 번 돈으로 8개월 호주도 여행하고, 어학원도 다니며 시중에 300만 원을 남겨서 귀국했다고 한다. 창 밖을 보며 엄마는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듯 상념에 젖어계셨다.


 반면 나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그저 머리엔 한국에 두고 온 핸드폰 생각이 간절했다. 내가 핸드폰 없이 살다니 그것도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니!!! 사실 호주 온 이후로 매일 만 보 이상 돌아다니고, 수영까지 하고 집에 오면 뻗느라 스마트폰이고 뭐고 아무 생각도 나진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2시간이나 기차를 타고 가야 한다.

 도저히 심심함을 달랠 길이 없어 난 엄마에게 다양한 놀이를 제안했다. 내게는 엄마가 지어준 부캐가 여러 개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놀이 Creator'이다. 스마트폰이 제일 좋긴 하지만 없어도 놀고는 싶으니까!

나는 가져간 연습장을 꺼내 뽑기 판을 만들고, 역할게임도 하며 엄마와 기차에서의 시간을 보냈다. 아, 그러다 내가 학교놀이 선생님 역할을 맡는 바람에 수학 시험문제를 직접 30개 출제하고 채점한다고 문제 푸느라 1시간을 날려버린 함정에 빠져버렸긴 하지만 말이다.


 소버린 힐은 꼭 옛날 그림에서 봤던 프랑스의 어느 마을 같았다. 미녀와 야수에서 봤었던 의상들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과 턱수염이 덥수룩한 할아버지들, 길거리에는 마차가 다녀 꼭  시간여행을 하고 과거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우리는 마차도 타고, 금을 캐는 체험도 하면서 재미있게 놀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놀이터였다. 놀이터는 활짝 핀 형형색색의 꽃들을 따라 걷다 보면 나오는 자그마한 호수 주변에 위치하고 있었다. 아마 모르는 사람은 지나칠 수도 있는 그런 다소 외진 곳이었다. 

엄마는 어딜 가든 나를 놀이터에 꼭 데리고 다니셨다. 엄마는 호주에 오기 전부터 사람들이 거기서 뭐 할 거냐고 물으면 놀이터에서 놀 거라고 대답하시곤 했다.


 나 역시 놀이터가 좋다. 어릴 때부터 엄마는 주변에 아는 사람 하나 없었고 외동인 나는 어딜 가든 혼자 놀아야 했는데 놀이터는 내게 친구를 만들어주는 만남의 장소였다. 또한 놀이터에서 놀다 보면 다양한 놀이 아이디어가 마구마구 떠오른다. 이렇게 만들어진 놀이를 친구들에게 설명하고 함께 하며 친구들과 더 재밌는 방법으로 게임을 고쳐가면서 놀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나는 놀이터에서 짜릿한 성공의 경험을 맛보았다. 그네 타는 것도, climbing을 하거나 매달리기를 하는 것도 처음엔 모두 다 실패했다. 하지만 갈 때마다 수십 번, 수백 번 도전하면서 할 수 있는 게 늘어나게 되었고 성공했던 기억들이 나한테 쌓여있다. 나의 이런 넘치는 자존감과 자신감은 어쩌면 놀이터에서 다 형성되었을지도 모른다.


 소버린힐 놀이터에는 마치 거위들이 주인인 것처럼 곳곳에 앉아서 편안하게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나도 거위 옆에 앉아 같이 일광욕을 즐기며 거위행렬에 껴서 잔디밭을 쫑쫑 돌아다녔다. 엄마와 나는 그곳에서 체스와 미션놀이도 하며 마을에서 체험했던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놀았다. 몸으로 뛰며 놀다 보니 더 이상 스마트폰은 생각나지 않았다. 물론 놀이터에서 노느라 정신 팔려 그곳에서 진짜 스마트폰을 잃어버리긴 했지만.. 끙. 다행히 누군가 기차 타려는 우리를 쫓아와서 스마트폰을 찾아주었다. 십년감수했다. 후.


 어느덧 기차를 타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기차를 탔지만 더 이상 스마트폰 생각이 나지 않았다. 너무 신나게 놀았던 탓에 타자마자 졸음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의 무릎에 기대 스르르 눈을 감았다. 소버린 힐에서 먹었던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떠올리며 달콤한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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