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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숀앤펀 Feb 19. 2024

잃어버린 엄마까지 찾아줍니다.

10살 쇼니의 호주 한 달 살기-멜버른 트램/동물원

호주 사람들은 참 친절하다. 엄마가 예전에 외국인 노동자로 일 하던 시절에는 각종 인종차별을 겪었다고 했는데 나는 전혀 모르겠다. 어딜 가도 예의와 매너가 여기 이곳에는 넘쳐 난다. (갑자기 아빠가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횡단보도 없는 길에 멀리서 서있기만 해도 알아서 멈춰주고, 내가 트램을 타면 자리에 앉지 않아 괜찮다고 해도 꼭 비켜준다. 


특히 나와 같은 덜렁이에게는 더더군다나 고마운 것이 있다. 나는 매일 하루에 물건 하나씩 잃어버리고 있는데 두 번 잃어버린 거북이 인형을 제외하곤 모두 찾았다. (핸드폰, 카드키, 모자, 거북이 인형까지.. 모두 누군가가 다 찾아주었다.) 다른 이의 물건을 찾아주는 게 귀찮을 법도 한데 누군가는 나를 멀리까지 쫓아와서, 누군가는 하루를 기다렸다가 또 누군가는 그 자리에 올 때까지 그 물건을 같이 지켜주면서 나의 물건 찾기를 도와주었다. 친절한 사람을 만나는 행운이 나에게만 따랐던 건지는 모르겠으나 그 물건들을 지금 다 잃어버렸다면 엄마가 한국으로 쫓아냈을지도 모른다. 


 어쩌다 오늘은 엄마까지 잃어버렸다.  트램을 타고 동물원 역에 도착해 나는 엄마 손을 놓고 폴짝 내려버렸지만 엄마는 카드키가 읽히지 않아 헤매던 사이에 트램 문이 닫히고 출발해 버렸다. 

깜짝 놀란 나는 밖에서 엄마를 애타게 불렀지만 엄마는 떠났다. 난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하나 당황스러웠다. 내가 가지고 있는 핸드폰은 터지지도 않는데. 나는 일단은 이 자리에서 엄마를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길을 잃었을 때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고 했던 게 생각났다. 그래도 막상 엄마랑 헤어지니 겁이 났다. 눈물이 터지려던 그 순간 달리던 트램이 멈춰 서고 이윽고 엄마가 허겁지겁 뛰어내리셨다. 


 트램 맨 끝에 탔던 엄마는 안에서 "Excuse Me!!!!!!!!!!!!!!" 하며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그 소리에 기나긴 트램 안에 같이 탄 사람들이 일제히 같이 뭐라 뭐라 외쳐주었고 이내 맨 앞칸에 운전기사께 전달되어 달리던 트램을 멈춰 서게 했다.

엄마는 트램이 떠나도 내가 그 자리에서 엄마를 기다릴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했지만 동물원 있는 내내 엄마는 연신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다. 늘 어른스러운 엄마지만 오늘은 어쩐지 내가 보호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동물원 지도를 펴고 오늘은 내가 다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 엄마에게 나만 따라오라고 말씀드렸다.

엄마는 안 그래도 길 찾기는 영 꽝이라 내가 더 나은 것 같긴 했다. 하지만 그 엄마에 그 딸인 건지 분명 캥거루를 찾으러 갔는데 우리는 코알라만 세 번 봤다. 오늘은 내가 대장이었고, 엄마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편안하게 나만 따라다니셨다. 


 그렇게 한참을 헤매다가 결국 캥거루는 포기하고 아트페인팅을 하려고 줄을 섰다. 하지만 안내직원이 이미 폐장시간이 지나 끝났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돌아서려는데 나 한 명쯤은 더 해줄 수 있다며 터덜터덜 돌아서는 우리를 불러 세웠다. 그리곤 아트페인팅도 해주고, 원하는 그림도 그릴 수 있도록 도구를 주었다. 물론 무료로 말이다. 난 엄마에게 호주에 온 이후로  '호주사람들은 참 친절한 것 같다'라는 말을 열 번쯤은 한 것 같다.  어디에서든 친절을 경험할 수 있는 이곳에서는 항상 '배려받고 있음'을 체감한다. 물론, 엄마는 예외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나는 이런 배려에 다른 호주 사람들처럼 하루에 'Sorry와 Thank you'라는 말을 백 번 정도 말하며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호주에서는 이런 배려가 비단 어린이뿐만 아니라 몸이 불편한 사람한테도 기본적으로 제공되고 있다고 느꼈다. 브런치를 먹으러 가든 비치에 놀러 가든 트램을 타든 항상 장애인들이 많이 보이는 게 신기해서 엄마에게 여쭤보았다. 

"엄마 왜 호주에는 장애인이 이렇게 많아? 

 "장애인은 한국에도 많아. 다만 호주는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밖에서 불편하지 않도록 편리하게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그래서 그들이 밖에 나와 활동하는 게 어색하지도 않고 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도 일상의 한 부분이지. 반면 우리나라는 불편한 것 투성이야. 그래서 나오기 힘들 거고 집에만 머물고 싶겠지. 또한 사람들이 밖에 자주 안 나오다 보니 몸 불편한 사람을 우리 주변에서 찾아보기가 어려운 거고. 우리나라도 똑같이 몸 불편한 사람들은 있지만 단지 그들이 숨어 지낼 뿐이야" 

엄마는 말씀하셨다. 


  나는 배려란 어쨌든 '나'의 입장에서 친구에게 양보하고 위로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호주에서 느낀 배려란 '친구'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나는 느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트램 안을 둘러보니 다양한 사람들이 참 많았다. 피부색깔부터 머리 긴 남자, 여장한 남자, 코에 피어싱을 열 개쯤 한 사람, 이마에 보석을 아프게 박고 다니는 인도사람까지 정말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손가락질하며 엄마에게 '저 사람 좀 봐'라고 외쳤지만, 엄마는 나를 조용히 시키며 서로 다름도 인정하고 바라봐 주는 것도 배려의 하나라고 말씀하셨다. 오 마이갓. 사실 동물원보다 나는 트램 안이 더 신기했다. 동물들은 책이나 영상으로 많이 보고 익혔던 얼굴들이다. 하지만 지금 트램 안에는 아직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모두 다 다르지만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문화 속에서 어우러져 지금의 호주라는 나라가  된 것이라고 엄마는 말씀하셨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나는 조용히 눈알만 되록거렸다.



* 오늘 내가 만난 사람들


- 머리를 허리까지 풀어헤친 긴 생머리 할아버지 

- 턱수염을 나와 똑같은 머리끈으로 묶고 계신 아저씨

- 분명 남자인데 여자처럼 꾸민 오빠. 짧은 브라탑을 입고 있었는데 배와 등에는 털이 수북했다. 나는 풍자언니가 떠올랐다

- 이마에 보석이 박혀있고 새빨간 원피스를 입은 인도 여자

- 엄청나게 뚱뚱하지만 딱 붙는 짧은 옷을 입고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즐기던 멋진 언니

- 아랫입술 아래에 흰색 꽃 타투를 한 언니. 귀 전체에 타투를 한 언니. 머리 전체에 알록달록 꽃밭으로 타투한 빡빡머리 아저씨

- 코에 귀걸이를 10개쯤 걸고 머리에는 두건을 쓴 할아버지. 찢어진 청바지에 해골 목걸이를 하고 계셔서 나는 (한국에서 배운 대로) 롹스피릿 손 모양으로 조심스레 인사를 건네어봄.

- 그리고 직장탈출 한다고 호주와 놓고 영혼이 탈출해 버린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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