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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숀앤펀 Feb 23. 2024

호주 친구들에게 남긴 미션

10살 쇼니의 호주 한 달 살기

"Can you speak English?"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데 내 또래쯤 돼 보이는 호주 남매가 내게 뛰어왔다. 남매는 광고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한 예쁜 금발머리에 눈은 호수처럼 파랬다. 

동생으로 보이는 금발머리 여자 아이가 내게 영어를 할 줄 아냐고 물었다. 

당연하지. 호주 입국했을 때부터 알아듣지는 못 해도 무조건 아무 말이라도 하는 나다. 누군가가 내게 먼저 말을 걸면 'Yes'를, 그게 아니면 'Thank you'라고 하면 된다. 그러다 입국 때 위험물품 가져왔는지 묻는 질문에 내가 예스를 외쳐버리는 바람에 엄마가 곤욕을 치를 뻔 하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입국했으니 땡큐다.

 나는 이번에도 자동응답기처럼 단번에 'Yes'를 외쳤다.  나의 씩씩한 대답에 금발머리 아이는 몸을 베베 꼬더니 이렇게 물었다.

"Do you want to play with us? I want to play with you"

 물론 이번에도 못 알아 들었지만 "Yes!!!!!!"를 외쳤다.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저렇게 예쁘고 귀엽게 물어보면 누구라도 Yes 하겠고 나는 생각했다.

나의 대답에 금발머리 여자 아이와 남자아이는 "Yeh!!!!!!!"를 외치며 갑자기 뛰어가기 시작했다.

사실 상황 파악이 안 된 나는 엄마한테 가서 애들이 뭐라고 하는지 들었냐고 물었다. 엄마의 대답은 심플했다.

"놀재"

나는 금발머리 친구들보다 더 높게 두 팔 벌려 그들에게 뛰어갔다.

"Yeh!!!!!!!!!!!!!!!!!!!!!!!"

 금발머리 친구들은 놀이터 빙빙이를 타고 있었다. 한 명은 타고 한 명은 밀고 번갈아가며 하고 있었기에 나는 뛰어가서 내가 밀 테니 너희들은 앉으라고 했다. 그리고 이내 나는 빙빙이를 돌리기 시작했다.

"원, 투 쓰리! 달린다!!" 한 발짝 한 발짝 밀며 나는 점점 가속도를 더해갔다. 한국에서 빨리 돌릴수록 아이들이 재밌어하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오늘 사귄 친구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었던 나는 이를 악물고 우다다다다 달리기 시작했다. 인크레더블의 대시처럼 내 발이 움직이길 상상하며 세차게 뛰었다.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그런데 이제 막 재미가 있어지려던 찰나에 금발머리 남매가 "Stop! Stop!"을 외쳐댔다. 장난인 줄 알고 봤던 남매의 얼굴이 심각해 보였다. 깜짝 놀란 나는 이번에는 빙빙이를 멈추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갑작스럽게 멈추느라 빙빙이에 무릎도 쓸려서 아팠지만 아프다고 할 겨를도 없이 정신없이 난 빙빙이를 멈춰 세웠다. 

 금발머리 여동생은 울려고 하고 있었고 오빠는 아주 험상궂은 인상을 쓰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상하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하면 너무 좋아했었는데. 한국 오빠들이 돌리는 거에 비하면 나는 돌린 것도 아닌데...'

어쨌든 친구들이 놀란 것 같아 걱정이 돼 "Are you ok?"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금발머리 오빠가 나를 향해 외쳤다. 

"Monster!!!!!!!"

그리곤 동생을 데리고 다른 쪽으로 가버렸다. 


 나도 심각해졌다. 몬스터라니 내가 즐겨보던 몬스터대학교에 나오는 그 몬스터? 눈이 하나 거나 다리가 없다거나 하는 그 몬스터? 내가 그 몬스터라니! 정말 너무했다. 

속이 상한 나는 그 친구들을 쫓아갔다. 한국말이라도 따지거나 아니면 그러려고 했던 게 아닌데 말이 너무 과했다거나 어쨌거나 더 이야기를 하고 싶어 따라갔다. 그랬더니 따라오는 나를 발견하고 이번에는 금발머리 여동생이 "꺅! 몬스터다" 소리치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도망가면 잡기 본능이 있는 나는 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금발머리 오빠와 여동생은 몬스터가 뛰어온다며 혼비백산이 되어 도망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놀이터에서 뛰는 놀이에 매우 단련돼 있는 나는 더욱 스퍼트를 내어 뛰기 시작해 그 둘을 잡았다. 그리곤 "야! 너네"라고 한국말로 따지려고 하는데 남매가 갑자기 주저앉아 웃기 시작했다. 어이가 없었는지 아니면 힘들어서 실성한 건지 모르겠지만 계속 깔깔 웃었다. 애들이 말은 못 하고 웃는 상황이 나도 어이가 없어 같이 웃기 시작했다. 

'도망가서 10초 만에 붙잡혀 놓고 뭐가 웃기데?'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서로를 가리키며 한바탕 웃었다. 웃고 나니 화났던 마음도 10초 만에 사라져 버렸다.

 금발머리 남매는 이번에는 요리조리 숨기 시작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는 몬스터대학교에 나오는 웃기기 선수가 된 것처럼 까꿍 하며 남매들을 찾아다녔다. 어려 보이는 동생은 그렇다 치더라도 키도 나보다 큰 금발머리 오빠는 아무래도 키만 컸지 나보다 오빠는 아닌 듯했다. 숨는 곳마다 영 엉터리였다. 그래도 대번 잡히자 이번에는 본인이 술래를 하겠다고 했다. 짜식, 그래도 페어플레이는 할 줄 아는구나.

처음 온 놀이터였지만 나는 잽싸게 어디 숨을지 확인하고 숨었다. 녀석은 나를 찾는다고 혈안이 돼있었다. 계속 'Where are you'를 외쳐댔다. 묻는다고 대답할 줄 알다니 역시 나보다 어린 게 분명했다. 물론 그의 어린 여동생은 킥킥대다 줄곧 들키곤 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나는 집에서도 매일 숨바꼭질하는 프로다.


 한참을 찾다가 못 찾으니 녀석은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듯했다. 몇 번이고 숨어도 찾지 못했고 계속 술래를 해야 했다. 속으로 쌤통을 외치고 있는데 엄마가 이제 그만 집에 가자고 나오라는 목소리가 들려 하는 수 없이 나왔다. 

 녀석은 내가 나오자 따봉과 함께 "Cool"을 외쳐대며 내 뒤를 졸졸 쫓아다녔다. 그리곤 뭐라 뭐라고 이야기하는데 아마도 숨바꼭질을 어떻게 그렇게 잘할 수 있는지 묻는 듯했다. 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 내가 숨었던 비밀장소 몇 군데를 찍어서 알려줬고 녀석의 말대로 쿨하게 돌아섰다.

그런데 녀석은 내가 숨어있던 장소 앞에서 생각에 빠진 듯 망설이고 있었다. 금발머리 여동생이 손톱을 잘근잘근 씹으며 오빠에게 물었다.

“Can you do that?”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흥, 너는 어림없을걸? 매달리기도 잘해야 하고 버틸 줄도 알아야 하거든!' 그래도 한 번 해봐. 열심히 연습해서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땐 더 재밌게 놀자’

나는 아빠가 매일 가슴에 새기고 다니는 말이 떠올라 녀석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Hey, Just D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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