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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숀앤펀 Sep 17. 2024

그대의 경험, 이 세상 어떤 권력자도 빼앗지 못하리!

10살 쇼니의 호주 한 달 살기 - 에필로그

"어릴 적 여행이 과연 기억에 남을까?" 

어른인 나조차 당장 몇 달 전 혼자 다녀온 파리 여행도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말이다. 

딸아이의 10살 생일 선물로 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 하지만 솔직한 목적으로 엄마로서 그리 훌륭한 뜻을 품고 떠난 여행은 아니었다. 

 사실은 혼자 도피하고 싶었다. 회사도 지쳤고, 맨날 티격태격하는 집구석도 지겨웠다. 철저하게 혼자 있었던 나의 첫 해외, 무척이나 외로웠던 호주 생활이 그리울 만큼, 나는 아무 말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도망치기로 했다. 어쩌면 나는 '엄마', '아내', '팀장'이라는 틀에 맞춰 하루하루를 보내다 지쳤는지도 모르겠다. 쇼니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다. 살다가 힘들거나 지치면 때로는 훌훌 털고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의 행복과 감사함을 말이다. 아니 사실 내가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호주 여행에서 가장 소중했던 순간이자 발견은 매일 저녁 딸을 인터뷰하던 시간이었다. 이 시간을 통해 같은 하루를 보낸 나와 딸의 생각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실감하며, 딸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쇼니의 눈에 비친 세상은 나와 전혀 다른 색채로 그러져 있었다. 무엇보다 쇼니에 입장에서 글을 쓴 덕분에 이야깃거리도 더 풍요로웠고 나도 어릴 적 내 모습을 떠올리며 즐겁게 쓸 수 있었다. 

짧은 한 달이지만, 매일 진행했던 작은 인터뷰들이 모여, 이 책이 완성되었다. 쇼니와 함께 했기에 해낼 수 있었다. 


 호주에서의 한 달은 말 그대로 "모험"이었다. 계획과 다르게 흘러간 순간도 많았고, 예상치 못한 일이 끊임없이 생겼다. 길을 잘못 들어서 두 시간 넘게 헤매기도 했고, 트램에서 못 내려 서로를 잃어버릴 뻔한 일부터 '움직이는 범퍼카'인 줄 알았는데 하늘로 로켓발사되는 롤러코스터임을 깨닫고 서로 부둥켜안고 기도했던 일들까지,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우리는 둘이서 많은 것들을 나눴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놀았고, 또 열심히 싸웠다. 그 사이사이에 우리는 서로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딸은 점점 자신만의 속도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속에서 나는 또 다른 나를 발견했다. 어쩌면 나는 여전히 딸을 내 어린아이라고만 생각했던 게 아닐까? 이번 여행을 통해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딸은 나보다 더 냉철하게 상황을 보기도 하고, 내게 없는 침착함으로 나를 다독여주기도 했다. 

'너는 이렇게 멋지게 잘 크고 있구나!' 

이젠 혼자 하는 여행보다 딸이랑 다니는 여행이 더 재밌고 즐겁다. 


  "엄마, 여기 또 오고 싶지 않아?" 쇼니가 묻길래 나는 말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야. 이제 시작이지." 우리 둘은 그렇게 앞으로 더 많은 여행을 떠날 계획을 세웠다. 중요한 건, 이 여행이 우리에게 앞으로도 어디든 떠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힘든 순간에도 함께 의지하며 헤쳐나가는 기쁨을 안겨주었다는 것이다. 


인천공항으로 마중 나온 남편의 얼굴도 기뻐 보였다. 다시 만난 기쁨인지, 그동안 행복에 겨워 얼굴이 웃상으로 변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 가족 모두에게 의미 있던 시간이었던 건 확실하다. 


마지막으로 <빅터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에 나온 글을 인용하여 마무리하고 싶다.


- 우리가 그동안 했던 모든 일, 우리가 했을지도 모르는 훌륭한 생각들, 우리가 겪었던 고통, 이 모든 것들은 비록 과거로 흘러갔지만 결코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 그대의 경험, 이 세상 어떤 누구도 빼앗지 못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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