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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음 Feb 20. 2024

월출산 마애불을 찾아서(1)

九井峰의 九名과 九井涅般

어느 날 밴드에 올라온 사진 한 장!
누구는 그냥 지나쳤고,
누구는 꿈을 꾸기만 했다.
또 누구는 기어서라도 꼭 가봐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설악산, 월악산과 더불어 3대 악산으로 악명 높은 산이라  감히 엄두를 못낼터인데 산악대장 께서 아주 가벼운 산행 코스를 발견했으니 스틱 쥘 힘만 있으면 누구나 가능하다고 부추겼다. 그 꼬임에 넘어가 냉큼 손을 들었고 그렇게 산행은 시작되었다.  


겨울의 냉기가 가시지 않은 2월 말, 주말을 택해서 승용차 2시간 반을 달려  입구에 도착했다. 저 높이 아득히 솟아있는 월출산을 바라보며 과연 저 산을  오를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먼저 앞섰다. 그래도 요 근래 큰 눈은 내리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우리는 금릉 경포대 - 바람재 -장군바위 -베틀굴-구정봉 까지 오른 후에 마애불을 참배하고 되돌아 하산하는 경로를 택했다.  


작년 한국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한 00 도반님이 바리바리 햇 반찬들과 스티로폼 한가득 찰밥을 준비해 오셨다. 00님을 누구나 좋아하고 열광하는 이유는 준비해 온 음식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입이 그냥 쫙~벌어진다.'자신이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기쁨이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이라고 말씀하시며 장을 보고 준비하는 재미가 오히려 크다고 하신다. 밥맛 없다며, 배부르다며, 겸손히 사양을 하다가도 차려진 음식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숟가락을 쥐고 밥그릇을 싹싹 비우는 마법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뒤늦게야 알게 된다. 월출산 구정봉 마애불을 친견하는데 불법심이 없으, 이 찰밥심이 없으, 감히 오르지 못했을 것이라고.

 氣가 세기로 제일가는 월출산. '하늘 아래 첫 부처의 길'이라 이름할 정도로 기암괴석의 절경이 빼어나다. 해발 800미터가량이지만  온통바위 산이라 겁이 날 정도이다. 우리는 절경을 배경으로 휴식도 취하고 사진도 찍으며 행군을 시작했다. 태고에 가려진  마애불을 친견하는데 어찌 순탄하게 산행하길 바라겠는가?
지금은 길이라도 닦여져 있어서 그나마 쉽게 접근할 수 있다지만 그 옛날 조상님들께서는 어찌 이 길을  짚신 신발로 굽이 굽이 바위산을 넘나 들며 기도를 했을까나 하는 생각으로 걸음을 옮겼다.


동행한 9명 중에서 제대로 등산복을 갖춰 입은 사람은 두 사람 밖에 없다. 그냥  산에 가자고 해서 따라나섰는가 하면 스틱과 배낭도 없이, 헐렁한 고무줄 몸빼옷에다 운동차림이다. 촌스럽기 그지없다. 이런 차림으로 전문 산악인들도 혀를 내두르는 월출산을  오를 생각을 하다니ᆢ

정말 대단하다.

지금 정상을 향해 가뿐 숨을 내쉬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내 지나온 업이며, 죄 값이며  허물들임을ᆢ참회하고 발원하는 눈물 걸음 들임을  ᆢᆢ안다.
혼자서는 엄두도 못 내는 산이지만 저기, 저 큰 고개를 넘고 넘어 바위산을 뚫고 지나 가면 그곳에 부처님이 계시기에, 무엇보다  함께  오르는 도반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ᆢᆢ안다.

우리는 마애불을 만나기 위해

뜨거운 땀방울과
살을 에이는 바람과
잔설이 남아있는 미끄러운 빙판길,
좁디좁은 암벽 사이를 비집으며
금세 추웠다가
금세 더웠다가
 몇 번이고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하며  천길 벼랑길 바위를 아슬아슬 넘나들며 심장이 발등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고통 끝에서야 태고의 늠름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좌정하고 계신 마애불을  드디어 만났다.

와!
오길 참 잘했다!

9명의 입에서 동시에 터진 짧은 감탄사. 이 생이 아니면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으랴. 금강경 독송과 각자의 발원을 담은  좌선과 긴 여운. 9명의 용사들을   따스하게 품어주던 용암사지 삼층석탑. 열반의 자리가 어디 따로 있겠는가?

지금 9명과 함께 한  이 자리, 구정봉 마애불을 친견한 이 자리가 꽃자리이며 안락의 자리, 열반의 자리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다시 시작된 고행의 하산 길.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길에는 고통이 배가 되어 한꺼번에 몰려왔다. 가장 먼저 두통이 시작되고 온 삭신이 경련을 일으켰다. 각자 통증의 무게를 견디느라 말수가 줄면서 어느 순간 묵묵히 걷고만 있다.

 난 이 순간이 좋았다.  

 바람에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등산화에 걸리는 흙과  돌계단 밟는 소리가 선명했다.

새소리가 찰나의 통증을 가만가만 잊게 했다. 월출산, 마애불, 도반들, 다 잊었다. 나 조차..

 함께 걷고 있지만 오롯이 혼자인 나만의 깊은 침전.

그 침전은 희미하게 주차장이 보이면서 끝이 났다. 절뚝거리며 무르팍이 떨려오고,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지만 뭔가 큰 일을 완수한 자들의 당당한 눈빛. 우리는 그 힘으로 미지의 마애불을 향해  다시 나아간다. 고어텍스 값비싼 등산복과 전문 산악 등산화가 없어도 우리는 태고의 발자취를 따라 발길을 옮길 것이다.

 우리에겐 최고의 길잡이 산악대장이 있고, 따뜻한 찰밥을 지어 오는 정성이 있으며 먼 길 운전을 도맡아 주시는 도반님이 계시다. 어느 목적지를 가든 그곳의 역사와 전설에 대한 명쾌한 설명이 있고, 모든 기록을 사진으로 남기며 추억한다. 여리한 풀꽃 같지만 힘든 내색 없이 짱짱 히 오르는 도반들과 茶 보다는 막걸리에 더 열심이고 어디 한번 데리고 갈라치면 우는 애기 달래듯 어르고 달래야만 겨우 따라나서는 징징이 해조음이 있기에ᆢ우리는 아무 때고 날을 잡아 산에 오를 것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게 중생의 삶인가 보다. 월출산 구정봉 마애불을 동네 뒷산 가는 차림으로 다녀온 뒤로 우리는  자신감을 넘어, 어느 산이든 정복할 수 있다는 자만심이 생겼다. 그러나 이  자만심으로 아주 큰 교훈을 얻게 된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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