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조음 Feb 27. 2024

월출산 마애불을 찾아서(2)

산에서 길을 잃다


월출산 구정봉 마애불을 성공적으로 탐방한뒤에 또다시 맞은편 월곡리 마애불을 찾아 길을 떠났다. 딱 두 달 만이다. 멤버는 그때와 동일하게 9명이지만 구성원은 제각각이다. 구정봉 마애불은 국보 144호에 지정되어 있는 반면 월곡리 마애불은 구정봉 서북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산악인이나 불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아서 찾는 이가 드문 편이다. 지도나 표지판도 부정확하여 길라잡이 산악 대장 초행길이라 했다. 여러모로 알아본결과, 지정된 코스가 아닌 샛길을 이용하면 2시간 정도를 단축할 수 있다고 했다.


  이미 우리는 윌출산 등반으로 사기가 충전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무 길이나 상관없으니 '빨리 보고 빨리 내려오자'라는 심산이 깔려있었다. 결국 샛길을 이용하여 도림사 장군당에서 월곡리 마애불을 향해 신발끈을 고쳐 맸다.

곧 잡힐 듯 정상이 다가온 것 같지만 산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겨우내 쌓인 마른 낙엽을 밟고 오르다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다행히 산악 대장의 오랜 경험을 나침반 삼아 능선을 향해 올라갔다. 이윽고 정상 코스와 연결된 등산로를 나면서 우리안도했다.


 따지고 보면 정상적인 등산 코스로 오르는 것이 훨씬  빠른 길이었으며 정신 건강에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르면서 가는 길은 더디기 마련이며 제대로 가는지를 알 수 없어서 수시로 멈춰서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산하는 길에는 정해진 코스를 밟아서 내려오자며 힘겹게 월곡리 마애불을 주했다.


구정봉 마애불과는 부조의 조각장함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신체에 비해 두 배는 크게 보이는 여래의 얼굴과 불균형적인 비례는 그리다가 실패한 모습 같았다. 그러다 보니 일 년에 몇 사람이나 이곳의 마애불을 참배했을까 하는 생각에 연민의 마음들이 일어나 금강경 독송과 예불을 경건하게 모셨다.

늦은 점심과 예불, 참선을 다 하고 난 뒤끝이라 오후 3시 무렵이 다 되었다. 빠듯하게 내려가야   같아서, 또 정해진 등산로를 포기하고 지름길을 택했다. 산악대장의 오랜 감과 촉을 믿으며 길 없는 길을 뚫으며 내려갔다. 경험상, 산들은  오르기가 힘들 뿐, 내려가는 길은 수월한 편이라서 쉽게 동의했다. 배낭을 가볍게 하려고 간식과 과일은 억지로 나눠 먹거나 날짐승 먹이로 남겨두었다.


 멋진 풍경과 바위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시간을 허비하다가 태양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보고 나서야 서두르기 시작했다. 어느 만큼 까지는 희미하게 등산로가 보였는데 웅장한 천리 암벽 앞에서 완전 길을 잃어버렸다. 내려가는 길은 천길 벼랑 끝이었고 시 올라갈 수도 없었다. 되돌아서 길을 찾아 내려가기엔 이미 늦어버렸다.


그때부터 다들 하얗게 질렸다. 현재 우리 위치와 오전에 출발했던 도림사 장군당 지점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4월의 햇살은 점점 기울어 가는데 벼랑 끝에서 핸드폰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범위를 벗어났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막 닿은 천리 벼랑길에서 갈팡질팡 하고 있을 때,  휴전선 지역에서 군복무했던 도반님이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4~5미터 바위 아래를 내려가면 될 것 같다고 했다. 먼저 본인이 나뭇가지와 돌 틈을 비집고 내려가는 데 성공했다. 평균 연령이 60대인 우리로서는 무리이지만 그나마 이 길이 아니면 내려갈 수 없는 상태라서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 잡아주고 받쳐주며 무사히 내려가는 데 성공했지만, 벼랑 끝에서 지워진 길을 다시는 찾을 수 없었다. 무조건 나무 숲을 헤치며 계속 내려갔다. 


이미 태양의 꼬리는 사라졌고 어둠이 깔리기 직전의 희미한 여명이 우리를 비추고 있었다. 점점 조여 오는 어둠에 발길을 서둘렀으나 이미 등산로를 벗어나서 어느 만큼 내려가야 민가를 만날 수 있을지는 속수무책이었다.

물과 간식과 과일은 이미 바닥이 났다. 첩첩산중에서 길을 잃고 물과 간식까지 떨어진 데다 핸드폰은 계속 먹통이 되다 보니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수다스럽던 9명의 목소리가 잦아들고 불안감과 공포감이 우리를 짓눌렀다. 이만큼 내려왔으면 민가의 기척이 보일법한데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설상가상으로 빽빽이 둘러싸인 잡목나무들 사이에 갇혀버렸다. 9명이 한 줄로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 한 장소에 모여들었다. 완전히 포위되듯 갇혀 버린 것이다.

 

잡목이 빽빽하게 심어져 있어서 도저히 길을 낼  없었고, 사방이 꽉꽉 막힌 데다 9명이 함께 모여 있으니 호흡 곤란과 어지러움이 동반되었다. 손 한 뼘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잡목과 가시나무가 뒤엉켜 있고, 위로는 무성한 잎들이 자라고 있어서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우리는 엉거주춤 자세로 산악 대장만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별일 아니라는 듯, 걱정 말라고 우리를 안심시켰던 산악대장은 머리가 텅 빈 것처럼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주저앉았다. 패닉빠진 것이다.


 조직에서 위험이 감지되면 각자의 생각이 입으로 뱉어지기 마련이다.

 지금 길을 잃은 현시점에서 어떻게 빠져나갈 것인가를 생각하는 사람, 걱정 없을 거야 하며 입을 다무는 사람, 이럴 줄 알았다 면서 깐족거리듯 싸움까지 걸어와 최악의 상황을 만드는 사람ᆢᆢ

최악의 케이스로 맹비난하는 사람이 팀원 중에 바로 ''다. 피로와 갈증, 두통까지 심해지자 나는 산악대장을 향해

"그렇게 호언장담 하시더니,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길을 못 찾아서 생고생을 하고 있잖아요?"


한 번도 가본  없는 초행길을 무리하게 끌고 간 것이 원인이기도 하지만, 이런 논쟁은 안전하게 하산한 후에 벌여도 될일 이었다. 우선 당장은 소모적인 논쟁을 벌일 것이 아니라 하산 길을 빨리 찾아서 안전하게 내려가는 게 급선무이다. 나 또한  빠르게 가자고 동의하지 않았던가.


내가 지금의 사태에 대해 볼멘소리로 항의를 하자 팀원들은 산악 대장의 눈치를 보면서 입가에 쉿! 자세를 취하며 나를 진정시켰다. 회장과 총무 사이가 분열되면 팀원 간에도 극한 대립각을 세우게 되어 자칫 해체되는 것은 순간이기 때문이었다.

산악대장은 한숨 돌리더니 되돌아가서 길을  뚫어보자고 했다. '이런 것도 다~추억이야.' 하면서 웃어넘기던 여유는 이미 사라졌다. 피곤과 불안으로 어두운 얼굴이 되었다.


 내려가다 되돌아 올라가고, 다시 내려가다 되돌아가기를 서너 번 반복하면서 이젠 생존에 대한 무서움이 번지기 시작했다. 오래전 앓았던 공황 장애가 재발되는 느낌이었다. 배낭주머니에 있던 오래된 사탕으로 겨우 갈증을 해소하며 내려갔다.


얼마큼 내려갔을까. 앞서가던 산악대장의  짧은 외침이 들렸다.

"무덤이다!"

9명 모두 "와!" 탄성을 지르며 무덤가로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어둠 속에서 나는 무덤이 이렇게 반갑기는 처음이었다. 무덤으로 이어진 희미한 길을 찾아 내려오니 멀리서 개 짖는 소리와 양계농장의 거름 냄새가 희미하게 맡아졌다. 우리는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했고 저 멀리 민가의 불빛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서야 눈에 익은 출발지점의 주차장이 보였다. 깜깜한 어둠 속으로 가라앉기 직전 산 그림자를 보았더니 첫 출발한 지점에서 왼편으로 70도가량 기울어진 계곡을 타고 내려온 것이었다.


 예정된 등산로를 실하게 따라 주었더라면 왕복 5~6시간 거리를 거의 10시간을 헛돌면서 생고생을 한 것이다. 쉽고 빠르게 편법을 쓰려다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지는 꼴이 되어버렸다. 내려와서 기쁘다는 표현보다, 살아서 기쁘다, 는 표현이 맞았을 것이다.

 

 누군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정색하며 말했다.

"오늘 우리가 곡리 마애불을 참배하고 무사히  내려와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특히 산악대장님 너무나 수고 많으셨습니다. 나중에 다시 또 다른 산행을 하게 되었을 때는 아무리 멀고 험난해도 반드시 정해진 등산로를 통해서 산행해야 된다는 것을 꼭 명심하셨으면 합니다. 오늘 이 사건에 대해서 저 또한 많이 반성합니다. 아는 길도 물어보고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너라는 옛 말씀, 그른 것 하나 없습니다. 멀리 타 지역에까지 내려와서 험준한 초행길은 자신뿐 아니라 팀원의 목숨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오늘과 같은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간곡히 말씀드립니다."


웃음기 없는 어조로 말을 이어가자 산악대장은 '자기가 오만불손했고 자신의 오랜 경험을 너무 믿었으며, 오늘 산행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서 겸손한 자세로 산행에 임하겠다' 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우리는 산악대장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길잡이를 잘못하는 바람에 가장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밤늦은 시간 도착해서 몸을 살펴보니 가시넝쿨과 잡목에 긁힌 상처와 멍자국으로 성한 곳이 없었다. 물리치료를 받는 등, 병원 신세를 져야 할 정도로 고된 산행이었다.


만약에라도 등산로를 무시하며 빠른 길을 재촉하는 팀원이 있거나 대장이 있다면 떼어 놓고 가는 것을 꼭 추천드린다. 그런 사람들이 나중에 큰 사고를 치게 되어있다.

가끔 뉴스에 보면 조난당하여 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종종 목격되는데 우리가 바로 주인공들이 될뻔했다. 정해진 코스를 무시한 대가는 아주 컸다. 나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쉽고 빠른 길을 선택하는데 일조했기 때문이다. 모든 자연 앞에서는 그 누구라도 겸손해야 하며, 물과 간식은 하산이 끝날 때까지 꼭 비축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은 마애불 탐방이었다.



  

이전 06화 월출산 마애불을 찾아서(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