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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콩대 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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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예랑 May 17. 2024

우리 이제 반성하며
집으로 돌아갑시다

16. 영상 19도. 너무도 맑은 날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묘비명을 아느냐?"

  그것이 작년, 그가 나와 헤어질 때 했던 말이다.



  올해도 여지없이 걸음을 재촉한다. 그러다 오중의 햇살이 부서져 내리는 뿌연 통유리 안을 슬쩍 들여다본다. 먼발치 앉아 있는 한 남자. 어김없이 그가 먼저 와 있다. 나는 빤질빤질한 걸음으로 슬쩍 들어가 얼굴을 불쑥 내밀고는 허리를 깊이 숙여 정중히 인사를 한다. 그가 환히 웃는다. 내게, 5월이 되면 만나는 단 한 사람이 있다.  





  "네가 나를 참 의아하게 만들었다는 것 아니냐. 그때 네 소설을 보고, 이것은 대체 뭐지, 하루키와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이 참 이상하다 했어." 그는 그렇게 말하며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대어 앉았다. 만나면 언제나 오래전 그때의 이야기였다. 그러며 그는 내게 물었다. "그런데 왜 안 쓰냐." 그러고는 한참 후 대뜸 내게 말했다. "나에게 소설을 쓰라고 말해 주어라." 나는 말했다. "어서 쓰세요." 그리고 나는 또다시 말했다. "쓰세요. 저도 쓸 테니, 저랑 한번 해 보시지요." 그러자 그가 파안을 하며 내게 말했다. "그래. 우리 겨뤄 보자. 정말 한번 겨뤄 보자."


  우리는 자리를 옮겼다. 

  식사를 하던 중 그가 말했다. "반성하는데 일생을 바쳐 버렸다." 여든. 그의 여든 해의 삶은 여전한 약동과 여전한 적막. 얼굴에 작은 그늘이 진다. 


 "대교약졸大巧若拙. 그 말을 아냐. 대단한 것은 오히려 아주 서투른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아주 미세하고  교묘하게 만들어진 솜씨는 범인의 눈에는 도리어 어리석어 보인다는 말이지." 그가 내게 말했다. 방금 전 대교 무엇이라 하셨느냐 묻자 그가 다시 말한다. "대교약졸 말이다. 대교약졸." 그러나 나는 여전히 대교大巧뿐이 모른다. 그는 물 한 컵을 들이켰다. "문학은 헤매는 것이다. 우리를 혼돈에 빠뜨리는 것이 예술이지. Ambiguty. 모호성. 의도적으로." 한참 후 그는 내게 말했다. "반성도 습관이라. 나는 평생 연필만 깎다 만다." 그러며 그가 먼발치를 바라본다. "쓰세요, 선생님. 저와 겨뤄 보기로 하셨잖아요." 그러자 선생님은 내게 말했다. "그래, 맞다. 시합하는 거다."  

  여든. 그의 여든 해의 삶은 여전한 약동과 여전한 적막, 그리고 여전한 열의.  




  그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머리 위 까치들이 요란하게 운다. 

  하늘을 올려 보니 커다란 까치 두 마리가 공중을 헤매며 활개를 친다. '길조다. 길조.' 나는 다시 길을 걷는다. 나는 여든의 한 소설가와 글을 겨루기로 하였다. 나에게 글을 가르친 선생님과 글을 겨루기로 하였다. 마음이 미로와 같다. 청명한 하늘을 가르며 까치들이 운다. 





오늘의 추천곡은 Ólafur Arnalds의 improvisation입니다.

제목 '우리 이제 반성하며 집으로 돌아갑시다'는 선생님께서 저와 헤어질 때 하시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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