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원하는 것은 아마도, 내가 정신질환을 앓고 생을 포기하게 되거나, 교회를 떠나거나, 아니면 자신들의 종교집단에 ‘포섭’되거나. 그렇게 괴롭히면서 무슨 포섭이냐고? 그때 그 예배 후에 만난 그 자매가 대화 중에 나한테 그랬거든.
“언니, 하나님께서 사람에 대한 환멸을 느끼는 시간도 일부러 허락하시는 것 같아요.”
이게 무슨 전지적 작가 시점의 말이니 방구니? 넌 곧 우리에게 포섭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는 묵시의 전달자라도 되는 듯한 그 태도 어쩔? 그런데 웃을 일도 아닌 게, 천하의 똑똑하다는 사람들도 사이비 종교집단에 빠져들고 한다잖니. 내가 경계심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도우심인 것 같아.
이번에는 그 여자가 또 다른 지령을 받았나 봐. 그 여자가 담당하는 업무 중에 학생들의 탐구 과제를 진행하는 일이 있거든? 몇몇 학생이 탐구 과제 결과물로 나의 인터뷰 영상을 포함한 브이로그를 제작해서 멋지게 발표했어. 문제는 학생들이 발표 후에 제출한 발표 자료에 포함된 브이로그의 링크였지. 학교 구성원뿐만 아니라 그 누구라도 링크만 있으면 나의 얼굴과 음성을 볼 수 있을 것이었고, 혹시 그 여자가 링크를 만천하에 퍼뜨려서, 혹시 누군가가 나의 딥페이크 영상을 만들어서, 혹시 그걸 가지고 우리 가족에게 위해를 가한다면, .......
친구야, 이쯤 되면 나 정말로 불안장애 환자 맞지? 어쩌면 그 전도사의 말이 꼭 맞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누가 날 이렇게 만들었는지를 잊지도, 외면하지도 말아야 할 거야. 물론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과 죄책감을 “잃어버린” 상태니까 가능했던 일이겠지만 말이야. 너만은 날,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 줘서 정말 고마워.
하여간 불안해진 나는 아이들에게 달려가 양해를 구했어. 선생님의 얼굴과 음성이 불특정 다수에게 알려지기를 희망하지 않아서, 정말 미안하지만, 제출한 발표 자료에 포함된 링크를 삭제해 주거나, 아니면 선생님 인터뷰 영상 부분을 좀 삭제해 줄 수 있겠느냐고 말이야.
아이들 대답이, 지금 영상을 다시 편집하기는 조금 어렵고, 발표 자료에서 링크를 빼고 다시 올리겠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자료를 제출할 때 로그인을 안 한 채로 올려서 수정 권한이 없다면서, 심하주 선생님께 삭제를 부탁드린 후에 다시 올리겠대.
“아, 선생님이 교사 공유 아이디로 접속할 수 있어. 내가 지금 바로 삭제할게. 정말 고마워, 얘들아.”
나는 눈을 빛내며 말하고, 교사 공유 아이디로 들어가서 게시물을 삭제했어. 학생들도 곧 링크를 제외한 발표 자료를 다시 올려줬고.
순삭! 문제 해결, 끝!
아, 그런데 이를 어쩌니. 열심히 찍은 브이로그 영상 링크를 삭제하겠다고 말하는 아이들 눈에 서린 아쉬움이 그제야 생각이 나는 거지. 하지만 아이들의 아쉬움을 만회할 방법을 고민할 겨를이 없었어. 사건이 발생했거든.
내가 혹시나 하고 아이들이 새로 올린 발표 자료가 잘 있는지(?) 확인하러 해당 페이지에 접속했는데, 이게 웬일이니? 새로운 게시물 하단에 떡하니 브이로그 링크가 올라가 있는 게 아니겠어? 이게 무슨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니? 실은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니고 심하주 그 여자가 ‘열일’한 노릇이겠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교사 아이디로 접속해서 링크를 ‘삭제’했어. 한 시간쯤 있다가 들어가 보니 다시 링크가 되살아나 있는 거지. 내가 죽이면, 살아나고, 죽이면, 살아나고. 좀비가 따로 없어. 한 네 번 정도 소리 없는 사이버 전투를 벌이다가,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었지. 그래서, 내가 고요한 교무실에서 정적을 깨고 우렁차게 외쳤어.
“심하주 선생님!”
고요한 교무실은 순식간에 엘사가 다녀간 것처럼 얼음장이 되었어. ‘네?’라고 답하며 목을 길게 빼고 대답하는 그 여자의 얼굴은 이미 하얗게 질려 있었지.
“제가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개인 정보가 포함된 링크를 삭제하고 올려달라고 부탁한 게시물에 어째서 링크가 계속해서 올라오는 것일까요? 제가 교사 아이디로 접속해서 링크를 삭제하면, 올라오고, 삭제하면, 올라오고, 삭제하면, 또.다.시. 올라오기를 네 번째 반복하고 있어요. 선생님은 업무 ‘담당자’이시니까 이런 이상한 일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계세요.”
“이, 이상하네요. 저는 다른 아이디로 접속을 한 상태인데, .......”
다급하게 한다는 변명은 참으로 궁색해서 안타까울 정도였지. 내가 갑자기 공격력 만랩인 목소리로 포효하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다른 선생님께서 상황 파악에 나서셨어.
“한사랑 선생님, 학생이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일지라도 그 페이지에서 빠져나오지 않고 머물러 있는 경우에는 수정이 가능하긴 해요.”
“예,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다섯 시간째 같은 페이지에 머무르며 누군가가 삭제한 링크를 다시 올리기를 반복하고 있을 확률은 굉장히 낮죠.”
“그건 정말 이상하네요.”
“네. 게다가 학생들은 수정 권한이 없는 상태여서 선생님이 삭제를 해주시면 다시 올리겠다고 한 것이라서요.”
피융. 나의 확인 사살 실력 어때? 그 여자는 당연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다른 선생님들께서 ‘그 페이지에 뭔가 문제가 있는가 보네요.’하며 수습해 주신 덕분에 일단 겨울왕국 교무실 편은 일단락이 되었지.
학생들은 어떻게 되었냐고? 집에 와서도 씩씩거리다 보니 학생들이 브이로그에 쏟아부은 열정과 노력이 다시 떠오르는 거야. 그래서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아이들을 다시 찾아갔어. 번거롭겠지만 선생님이 나온 부분을 편집하는 작업을 해줄 수 있겠느냐고 요청했어. 너무 귀중한 영상이어서 ‘너희가 괜찮다면’ 선생님들 단톡에 올리고 싶다는 말도 덧붙이고. 교실 문을 열고 나타난 내 모습에 조금 떨떠름하던 학생들 표정이 순식간에 환해졌어. 새로운 영상 링크를 교사 단톡방에 올리면서, ‘학생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링크 외부 공유는 자제 부탁드립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겼지.
그렇게 겨울왕국 교실 편도 마무리가 되는 것 같았어. 그런데 그 여자가 어느 순간 갑자기 옆의 선생님에게 귀엣말을 하면서 킬킬거리며 웃는 게 아니겠어? 마치 날 들으라는 듯이 말이야. 당시에는 영문은 모른 채 그냥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일을 하느라 그 일은 잊어버렸지 뭐.
주말인 다음날 저녁에야 그 킬킬거림의 이유를 알겠더라고. 봐봐. 교무실의 다른 선생님의 관점에서는, 개인 정보가 포함된 링크를 게시하지 말라고 길길이 날뛰던 내가 다음날에는 별안간 학생들의 학번과 이름, 얼굴을 포함한 ‘개인 신상’이 담긴, 심지어 ‘자기 자신의 민감 정보만은 쏙 빠뜨린’ 링크를 공유하는 모습으로 비추어졌을 수 있잖아. 내 꼴이 참 우습게 되었구나, 하고 한탄이 나오더라.
결국 ‘주말 저녁에 정말 죄송합니다.’하고 장문의 카톡을, 우리 교무실 선생님들께 날렸어. 그러고도 선생님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실까, 결국 구질구질한 변명을 하고 말았네, 하고 한참을 마음이 아려왔어. 와신상담하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