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을 가진 사람의 삶의 자세
인생을 누구와 함께하는 지는 중요하다.
난 요즘 내가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삶을 떠올려봤다.
이 전 글에서 난 인간의 삶을 강화학습과 같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인간의 소신이 강화학습의 정책과 같다고 표현했었다.
하지만 사실 강화학습에서 가장 아름다운건 정책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정책을 지키므로서 "틀림"을 경험하고
더 나은 것들을 할 능력을 갖추는 피드백 과정에 있다.
소신 있는 사람들은 고집을 부리는 사람이 아니다.
실패를 마주할 때 인정하고 배우는 사람이다.
이 글을 통해 난 과거의 나의 잘못된 생각 하나를 바로 잡고 싶다.
난 그동안 누군가의 성장과 일대기에 있어 어릴적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이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다만 난 한동안 어릴적 가장 환경에 "자본"이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아니 사실 가끔은 어린마음에
집에 돈이 많거나, 부모님이 높은 직책을 가진 누군가를 부러워하기도 했던 것 같다.
지금 보면 굉장히 경솔한 생각이다.
사실 부모의 돈보다 그들이 가진 사고 방식이 중요했으며
직책보다 그들이 했던 노력과 경험이 중요했다.
분명 자본과 직책, 직업 같은 것들도 영향을 주기는 한다.
하지만 이는 그리 크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어릴 때의 성장에서는 누군가가 내게 주는 돈 한푼보다
따뜻한 인정, 위로, 응원의 한 마디,
많은 경험으로 나의 신념을 지킬 수 있도록 돕는 지혜가 훨씬 더 중요함을 깨달았다.
난 예전부터 부러움과 아쉬움 두 감정은 가질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부러움은 그 대상을 잘 알지 못해서 일 가능성이 크며
아쉬움은 나의 선택으로 내가 얻은 것을 잊어서 일 가능성이 크다.
내가 부러워하는 누군가는 마음 한 켠에 그들만의 고충이 있으며
내가 아쉬워하는 선택을 한 누군가는
내가 피했던 길을 힘들게 견뎌왔을 것이다.
내가 경험하지 않았으면서 그들의 것을 탐한다면
부러움과 아쉬움을 갖는 건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을 기만하는 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
누군가의 삶을 존중하는 것이 내 삶을 고고하게 만드는 첫 걸음이다.
그래서 난 그동안 내가 부러워했고 아쉬웠던 사람들에게
또 나에게 많은 지혜와 응원을 보내줬던 사람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을 건네고 싶다.
그동안의 내가 그랬듯
누군가는 나의 이런 경솔한 생각을 보고 나를 떠났을 지도 모르겠다.
아쉬움은 없다.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을 것이니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 잡으면 그만이다. 잘못을 인식할 능력의 부재가 진정한 재앙이다.
난 실패하고 있고 앞으로도 실패할 것이다. 다만 내 스스로와 끝 없는 실패 속에서 잘못된 것을 인식하며
끊임없이 개선하며 살아갈 것을 약속한다.
최근에는 내가 감사함을 느끼는 사람들 이외의 관계는 정리했다.
내가 한동안 많은 감정 낭비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내가 감사하지 않은 사람은 내가 그를 또 그가 나를 가식으로 대하고 있었을 확률이 높다.
난 나와 인생의 시간을 함께한 그리고 함께할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내가 감사할 사람들에게만 집중하며 살아갈 것이다.
인생이라는 여정은 생각보다 짧고, 그 여정을 누구와 함께하는 지에 따라
누군가를 욕하며 허망하게 시간을 보내는 삶을 살기도
나의 삶에 집중하며 많은 성취를 이루는 삶을 살기도 한다.
내가 살고 싶은 인생에 맞는 사람들을 찾고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