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은 어디의 봄이 되나요
청춘의 시기를 가로지른다. 푸를 청에 봄 춘을 쓰는 청춘. 분명 청춘이란 푸르게 피어나는 봄이라 읽혀서, 그곳에 몸을 담그면 막연한 아름다움과 종횡무진하며, 나를 열렬히 개화시킬 줄만 알았다.
크나큰 착각이었다. 마음을 시리게 만드는 파랑이 나를 잠식시키는 청춘. 이 청춘의 시기는 까마득한 파란波瀾을 간직하고 있어서, 그것 또한 일종의 푸른색에 속하다며 푸를 청 자를 쓰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바닥없는 파란에 휩쓸려 자연히 길을 헤매이게 되는 것이었다. 정처없이 헤매다가, 영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아 덜컥 겁을 주워 먹고는 소리 높여 외쳤다. 길을 잃었다고, 길을 좀 알려달라고. 그러자 돌아온 대답이란 봄이었다.
길을 잃었다니 봄이란다. 그러나 왜 이토록 시린 봄이 존재하는지. 왜 이토록 온몸이 앓는 계절을 봄이라 이름 붙인 것인지 알려주지는 않았다. 따사로운 햇살도 만발하는 꽃들도 존재하지 않는 봄. 그런 봄을 저항없이 만끽함에 들큰한 애처로움이 코를 찔렀다. 코를 마비시킬 것 같은 외로운 향이 목을 조른다. 그제야 이곳이 왜 봄이 되는지, 그 중에서 왜 푸른 봄이라 불리는지 알 수 있었다.
청춘이란 말은 우리에게 너무도 가혹하다. 청춘이란 어여쁜 말로 우리를 눈속임하고는, 뼛속 깊이 채우는 어릿함에 몸부림치자 이것이 진실 된 청춘이라며 말해오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도 잔인한 처사다. 그런 분한 마음임에도 결국 우리가 존재하는 곳은 이미 청춘이다.
파란에 몸이 부서지고, 외로운 향에 취해가는 마음이 존재하는 청춘. 그러나 그곳에 당신 혼자만이 아니라는 사실로 어떤 위로가 될 수는 없을까 하는 그런 작은 공상.
우리, 이 계절을 무사히 건너가 보자. 조금만 덜 외로울 수 있도록 함께 이 계절을 지나가 보자.
나는 나를 볼 수 없어 당신을 봅니다
가녀린 팔다리에 엉켜붙는 봄에 휘적이는 모습을 봅니다
당신의 앙상한 봄은 당신에 옮겨서야 만개합니다
만연히 당신에게 도래한 봄
낭만이 된 당신
묻습니다,
나의 청춘 또한 낭만이 되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