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담수인도감』,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 『마녀의 길』
나에게 3, 4월과 봄은 참 애매한 시기다. 남들은 이제 봄이라며 즐거워하지만 나는 묘하게 기운도 떨어지는 것 같고 모든 게 재미없게 느껴진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가지고 있는 특이한 책 3권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제주에서 살던 시절, 봄에 열리는 제주 북페어에 방문했다. 약 200개가 되는 부스를 우선 싹 돌아봤다. 그런데 이 책은 한 바퀴를 다 돌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강렬한 표지와 제목. 사람들 시선을 끌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다. 혹여나 품절이 될까 봐 급하게 피알엔크리에이츠 부스를 다시 찾아갔고 다행히 내가 살 책은 남아 있었다.
흔히 우리가 '인어'라고 알고 있을 존재(?)의 도감이다. '인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디즈니 영화의 '인어공주'일 텐데 이 책에 나오는 수인들은 좀 더 현실적이다. 정말 사람과 어류가 섞이게 된다면 이런 형태를 띠고 있을 것만 같다. 오히려 마냥 아름답게 표현하지 않아서 정말 있을 법한 기분이 든다. 제주에서 본 『해담수인도감』. 이 책을 들고 바닷가를 지나가며 괜스레 좀 더 멀고 깊은 바다까지 내다보게 됐다.
이 책 역시도 제주에서 발견했다. 제주에 볼일이 있어서 급하게 하루 만에 다녀와야 했던 적이 있었다. 새벽 첫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일정을 다 마치고 나니 집에 돌아가는 비행기 시간까지 꽤나 많이 남아있었다. 일정이 언제 끝날지 몰라 돌아가는 비행기 시간을 넉넉하게 잡은 탓이었다. 너무 피곤한 한편, 그 짧은 시간마저도 제주를 느끼고 가고 싶어서 제주 시내 근처이면서 바닷가 바로 앞에 있는 서점을 방문했다.
서점 이름은 '바라나시 책골목'. 이 서점의 콘셉트는 인도풍이다. 인도 특유의 알록달록한 색채가 담긴 카펫이나 커튼 등이 왠지 모르게 따스하면서 아늑함을 주었다. 편안히 등을 기대고 앉고 싶던 차였는데 마침 구석에 나 혼자만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어서 털썩 편히 앉았다. 그런데 바로 내 눈앞에 띈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 평소 좀비물이라면 환장을 하고, 언젠가 정말 좀비라는 존재가 나타날 거라고 믿는 나에게 안성맞춤인 책이었다. 그래, 언젠가 좀비들이 나타날 텐데 그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책이지. 책을 슬쩍 보니 좀비 사태가 벌어졌을 때 행동 요령에 대해 A to Z 꽤나 자세히 알려주고 있었다. 다만, 아무래도 작가가 미국인이다 보니 미국의 주택 형태를 반영하여 설명하고 있어 한국에 적용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 나타날 좀비라는 존재를 대비하며 이런 책 하나쯤 구비해 두어도 괜찮지 않을까?
영화 <해리포터>와 함께 자라 온 세대로서, 어릴 때 혹시 나에게도 헤드위그가 찾아오진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내 안에 마법 능력이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
영화 <해리포터>도 막을 내리고 이제 그런 상상을 마음껏 하기엔 그때만큼의 상상력은 없는 지금, 여느 때처럼 온라인 서점을 스크롤하며 재미난 책이 없나 탐색하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현대 마녀를 위한 마법 생활 백과사전이라니! 특별할 게 없을 듯한 매일 똑같은 하루에 잠시나마 다시 동심으로 돌아가, 어딘가 있을 마녀의 존재를 상상하며 혹시 아직 나에게 마법 능력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