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계가 마을로 온 날』(짐 디피디) & 대만
지난주에 대만 여행을 다녀왔다. 도시 여행은 영 취향이 아니라 조금은 걱정이 됐다. 타이베이를 중심으로 여행 예정이었는데, 타이베이는 대만의 수도이니 한국으로 치면 서울인 격이라 너무 정신없진 않을까 염려가 됐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염려가 무색하게 타이베이 안에서 마음이 편안했다. 왜일까. 수도인 만큼 사람이 많지만 도로와 인도 그리고 자전거 도로가 잘 닦여 있어서 거리가 쾌적한 느낌이 든다. 길가에 쓰레기도 많지 않아 깨끗한 것도 중요한 요소였다. 도시 곳곳에는 크고 작은 공원들이 틈틈이 스며 있었다. 걷다가 더워서 쉬고 싶거나 길거리 음식을 사서 먹기 위해 앉을 곳을 찾으면 5분 거리 내에 공원이 있었고 그냥 털썩 앉아 쉬다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역시 가장 큰 부분은 사람들이 친절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친절함은 과하지 않다. 동남아 여행을 가도 대부분 사람들이 친절하지만, 비교적 하얀 피부를 가진 아시아 사람들을 동경하는 데에서 오는 친절함이 가끔은 묘한 기분이 들게 하는데 대만은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 기질 자체가 온화하고 친절하며 그 친절을 과하지 않게 베푼다. '유바이크'라는 자전거(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의 '따릉이')를 작동하는데 잘 되지 않아 낑낑거리고 있으면 조용히 와서 작동법을 알려주고 살짝 미소 지어준다. 마트에서 셀프 계산을 하다가 여러 번 헤매도 짜증 한 번 비치지 않고 도와준다. 빵집에서 가장 맛있는 메뉴를 추천해 달라고 하면, 정말 맛있는 걸 추천해주고 싶은지 망설이다가 '자기 기준'에는 이 메뉴가 가장 맛있다며 조심스레 추천해 준다. 이런 편안한 친절 덕분에 대만 여행을 하는 동안 마음이 불편하다거나 긴장을 한 적이 없었다. 타이베이는 도시였음에도 안온함을 느끼며 머물 수 있었다. 대만은 손님에게 진정한 환대를 베풀 줄 아는 곳이었다.
그런 대만을 보며 『온 세계가 마을로 온 날』이라는 소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9.11 테러 때 미국 영공이 폐쇄되면서 하늘을 떠돌던 수많은 비행기들이 캐나다의 작은 마을 갠더에 불시착하게 된다. 그러면서 갠더 주민들은 마을 주민의 수와 맞먹는 손님들을 갑작스럽게 맞이하게 된다. 당황도 잠시, 마을 사람들은 그 손님들에게 친절과 환대를 베푼다.
'선한 사람, 선한 이야기가 가장 강한 것이다'라는 주제를 좋아한다. 불과 몇 년 전, 코로나로 세상이 혼란하던 때를 생각해 보면, 그때에도 곳곳에서 수많은 친절과 선행이 나타났다. 끔찍한 재난 상황에서 물고 뜯는 악행이 먼저 나타날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서로를 돕고 선행을 베풀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현실에서 악한 이야기보다는 선한 이야기들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이 책은 9.11 테러 20주년을 맞이하여 쓰였다. '온 세계가 마을로 온 날'로부터 20년 후 갠더 사람들과 갠더에 머물렀던 손님들의 소식도 담겨있다. 갠더 주민들이 손님들에게 베풀었던 환대의 손길은 그 후에 돌고 돌아 다시 갠더로 되돌아오기도 하고, 누군가는 이 일을 계기로 다른 이들에게 또 다른 환대의 손길을 내밀기도 하며 살아가고 있다. '환대의 순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이야기였다.
처음엔 큰 기대 없이 떠난 대만 여행이었지만 그들의 친절에 평안하게 머무를 수 있었고 이 기억은 대만에 자주 방문하고 싶다는 마음을 남겼다. 그리고 나는 손님들에게 얼마나 친절했나 돌아보게 된다. 친절과 환대의 기억은 나에게 깊이 남아 나도 친절한 사람이 되게 한다. 그리고 나의 환대가 언젠가는 또 누군가의 친절로 이어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