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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들 Jun 16. 2024

PANEM

Roscón de Reyes, 그리고 크로아상

1월 6일, 3인의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를 만나러 찾아왔다는, 혹은 세례를 주기 위해 왔다는 동방박사의 날, Día de los Reyes Magos가 끝나야 스페인의 새해는 비로소 시작된다. 동방박사가 찾아왔다는 축일이라는 즐거운 날이지만, 사실 스페인 사람들이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이 날은 Roscón de Reyes라는 특별한 디저트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아주 좋은 핑계이지 않을까.


유럽 내에서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낮은 편인 스페인 사람들이지만, 이들의 소비에 단연코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있다면 그는 바로 모든 먹거리 - 식재료, 외식, 와인, 디저트 등등 - 그리고 8월 바캉스가 아닐까 싶다. 그 먹을 것을 가장 푸짐하게, 열심히, 야무지게 챙겨먹는 시즌이 바로 이 연말연시 크리스마스 연휴. 이정도면 크리스마스는 먹기 위한 좋은 구실이지 않나 싶고.


크기도 무게도 가격도 엄청난 하몬을 통째로 선물하고, 선물받고, 또는 겨우내 가족들과 먹기 위해 통 크게 구입하고, 식구 중에 한 명 쯤은 손에 철장갑 끼고 하몬을 자를 수 있는 기술자가 한 명쯤은 있는 나라. 그 나라에서 야무지게 챙겨먹는 이 디저트는 매해 올해 최고의 Roscón 선발대회도 하고, Mercadona, Aldi 등등 마트 체인에서 판매하는 로스꼰 중에서는 또 올해 어떤 것이 최고의 평점을 받는지도 매해 산정할 정도로 스페인 사람들에게 단연코 인기가 좋다.


아무래도 전통적인 디저트 중 하나이다 보니, 빵 위에 설탕도 뿌려져 있고, 절인 과일이 올라가 있어, 어릴 적 전분맛 가득히 설탕에 절여진 제삿상 용 젤리가 떠오르는 한국인에게는 퍽 매력적이지 않아 보이고, 또 게다가 사이즈도 제법 크기 때문에, 로스꼰에 꽂혀 매일 아침식사로 먹을만큼 좋아하는 친구 손에 이끌리기 전까지는 먹어볼 생각도 안 했던 것이 바로 이 디저트였더랬다.


마트 버전의 로스꼰은 대략 이런 느낌. 이건 스페인의 유일한 백화점 브랜드인 El Corte Ingles의 제품. 가격은 16€이지만, 1월 6일이 지나는 순간 할인에 들어간다!


로스꼰은 con nata와 sin nata, 그러니까 생크림 있/없의 두 가지 버전으로 판매되는데, 가끔 빵집마다 조각으로 파는 경우에는 절단면에 초콜렛을 한 번 발라 내어주는 경우도 있다 (아마도 빵 표면이 마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일듯?). 11월 말이나 12월 초에서 1월까지는 온갖 빵집이나 카페에서도 많이 파니, 이 시즌에 스페인에 있다면 한 번쯤 도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긴긴 서론 후에, 2022년 최고의 로스꼰의 영예를 차지한 집이 바로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Panem이라는 빵집이다. 사진상으로 그렇게 큰 느낌이 안 나지만 생각보다 꽤 크고, 꽤 무겁고, 그리고 매우 비싸다(!). 2024년 가격으로 con nata가 32€, sin nata가 28€이니, 물가 대비 아꼈다가 즐겁게 먹는 간식임은 분명하다.


PANEM의 con nata roscón. 위에 올라간 절임과일의 종류가 다르고 먹어본 로스꼰 중에 빵이 가장 단단하고 쫀득한 느낌이었다.


이 거대한 디저트의 하이라이트는 사실, 온가족이 둘러앉아 자르면서 느끼는 즐거움에 있다. 비닐에 꽁꽁 싸서 숨겨둔 작은 인형이 들어있는 조각을 먹게 된 사람이, 그 해 행운을 받게 된다는 귀여운 이야기. 11월 정도부터 보이기 시작해서, 이 디저트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요청에 따라 무려 7, 8월까지도 파는 곳이 있다는 이 곳. 작은 사이즈를 파는 곳도 있고, 슬라이스로 파는 카페들도 많으니, 겨울 스페인을 방문한다면 한 번쯤 시도해봐도 좋지 않을까. 우승자였던 로스꼰 가게들인 PANEM과 Panod에 더불어, 나의 로스꼰 덕후 친구가 집근처여서 매일같이 사먹었다는 로스꼰 가게 (개인적으로는 이 곳도 담백하면서 부드럽고 맛있었다)를 정리해 놓아 본다.

참고로 이곳은 식사빵 뿐만 아니라 맛있는 크로아상과 페이스트리로도 유명하니, 바르셀로나에서 Hofmann 베이커리를 들리지 못했다면 여기에서라도 피스타치오 크로아상이나 뺑오쇼콜라와 함께 아쉬움을 달래보시길. 앉아서 빵을 먹고 갈 자리는 없지만, 근처의 레티로 공원이나 주변 아무 벤치에 앉아 커피 한 잔과 함께 마드리드의 햇살을 마음껏 즐기시길 바란다.



PANEM (Instagram @panem_madrid): https://maps.app.goo.gl/uQtMHqgWGEfVDG7r9

Panod (Instagram @panod_madrid): https://maps.app.goo.gl/zUQx84mWaWiqqtiE7

Pastelería Bombonería Sonia: https://maps.app.goo.gl/kvammq29CTn53S5N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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