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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들 Jun 23. 2024

Casa Benigna

마드리드에서 빠에야를?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아주 대표적인 음식, 빠에야. 그래서 나도 스페인살이 이전까지 스페인의 밥이란 무릇 빠에야! 라고 공식처럼 생각했다. 하지만 과장을 조금 보태 이는 한국에 김치란 배추김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대충 비슷한 느낌이다. 사실 스페인에는 아주 다양한 종류의 밥 요리가 있다. 크게는 우리가 빠에야를 생각하면 떠올릴만한, 팬에 얇고 넓게 펴 쌀을 익힌, 후식 볶음밥 정도에 가까운 식감인 Arroz Seco, 약간 죽에서 꿀꿀이죽 정도에 가까운 느낌으로 살짝 질척거리는 Arroz Meloso, 그리고 국밥정도의 느낌으로 국물이 좀 더 많은 Arroz Caldoso로 구분할 수 있다.


직역하면 마른밥? 정도에 해당하는 Arroz Seco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이 중에서 어쩌다 빠에야가 전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밥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스페인 여행자라면 무릇 츄로스 다음으로 찾는 대표메뉴가 빠에야인데, 마드리드에 놀러온 이들이 빠에야 맛집을 찾는다면 살짝 난감해지는 것이 사실. 왜냐하면 이곳은 빠에야의 본고장과 (물리적으로) 사뭇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빠에야의 본고장은 아무래도 쌀농사를 많이 짓던 발렌시아 지방이다. 고속열차를 타고 마드리드에서 정동쪽으로 두어 시간 정도 내달리면 도착할 수 있다. 너른 팬에 쌀과 콩, 그때그때 공수가 가능한 프로틴 - 닭, 토끼, 홍합 등등 - 을 한데 넣고 섞어 오래도록 요리하며 한창 수다떨고, 그 밥을 나눠먹는 문화는 당연하게도 많은 아시아 벼농사권의 문화와 닮아 있다. 육수에 맛을 내고, 그 맛이 쌀에 배어들게 오래도록 졸여가며 쌀을 익혀야 하기 때문에, 정통 밥집(arrocería)에서 보통 1인분은 주문받지 않는데는 이유가 있다. 혼자 하는 여행에서는 억울하기도 하고, 1인분을 파는 식당을 찾아가서 맛보고 싶겠지만, 사실 빠에야(혹은 모든 밥요리)만큼은 동행을 구해서라도 최소 2인분 이상을 주문할 수 있게, 인원을 모아 즐겨보기를 바란다. 그래야 한국인이 아마도 가장 좋아할 볶음밥 누룽지 부분 - 스페인에서는 socarrat이라 하더라 - 과, 맛이 잘 우러난 밥을 여러모로 즐길 수 있다. 동행을 구해 식당을 갈 상황이 아니라면 오히려 마트나 푸드코트에서 파는 빠에야를 1인분 어치 사먹는 편이 더 낫다는 게 나의 생각.


Mercadona 핫키친의 빠에야와 Fideua. 보통 1인분에 4-5유로 선이다.


스페인 여행을 하려면 꼭 외워가야 하는 표현이라고 한국인에게 명성이 자자한 게 바로 “sin sal” (씬 쌀), "소금 빼 주세요"인데, 사실 스페인 음식이 늘 그렇게까지 짜지는 않다. 원재료의 맛을 살리는 조리법을 기본으로 하기에, 좋은 재료를 쓰는 비싼 식당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한 가지 예외로 이 밥 요리들만큼은 우리 입에 보통 짜다. 소금을 빼달라 해도 아마 간이 제법 센 편일테니 참고하는 편이 좋다. 또한 쌀이 설익은 느낌에 가깝다고 생각할 수 있어서, 이러한 식감이 싫다면 더욱이 Mercadona와 같은 슈퍼의 핫키친, 혹은 El Corte Inglés의 푸드코트에서 1인분 정도를 맛본 후에 식당을 갈지 말지 결정해 보는 것도 현명할지 모른다(그리고 보통 이런 곳의 밥이 더 익은 맛이 나는 편이다).


마드리드의 몇 안되지만 아주 추천할만한 밥집들 중 하나인 Casa Benigna는 지난 산 히네스 편에서 얘기한 분점이 있는 동네, Parque de Berlín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너무나 동네의 골목길에 있어 여기 식당이 있다고? 하며 의아할 수 있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면 스페인 할머니댁에 놀러온 것 마냥 아기자기한, 스페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정겨운 가게의 정경이 느껴진다.



가게가 아주 크지 않다는 점, 빠에야는 보통 두 턴을 돌리기가 쉽지 않다는 점, 그리고 마드리드에서 제법 손에 꼽게 잘하는 밥집이라는 점에서 이곳은 보통 디파짓까지 받는 예약임에도 자리가 일찍이 꽉꽉 차는 편이다. 그래도 일정 중 까딸루냐 지방을 갈 일이 없다면, 홈페이지에서 예약이 가능한지를 확인해 한 번 맛보기를 추천한다. 언어가 조금 되고 운이 좋다면, 전화를 걸어 혹시 취소난 자리가 있는지를 확인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빠에야는 조리시간이 제법 길기 때문에 보통 전채요리를 한두 개 정도 먹고 와인 한 잔 하면서 기다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집의 하이라이트는 무려 5kg이나 된다던 노르망디 버터와, 주인 아주머니가 가게 시그니처라며 추천해 주신 따뜻하게 내어 주는 훈제연어 요리(salmón ahumado en caliente)다. 빵도 다 직접 만드신다고 하는 이 집의 메뉴는 하나하나 가정식 느낌이 강하다.


기본 전채요리로 주신 gazpacho, 엄청난 크기의 버터, 그리고 따뜻하게 서빙되는 훈제연어


우리는 이 날 발렌시아보다 남쪽에 있는 동네인 Alicante 스타일의 밥인 Arroz a banda(보통 새우, 생선살, 작은 오징어 등이 들어간다)와 이베리코 갈빗대가 들어간 Arroz con costilla de cerdo ibérico 두 종류의 밥을 시켰다. 두 종류의 밥을 섞어 시킬 경우 알아서 반반정도 되는 양으로 조리를 해 주시고, 밥 요리는 다른 종류 두 가지가 차례차례 서빙되는 것이 원칙.


Arroz a banda 그리고 Arroz con costilla de cerdo ibérico

밥이 나오면 먼저 한 번 구경할 수 있게 테이블에 보여주시고, 전문적인 솜씨로 바닥을 솩솩 긁어 앞접시에 덜어주시는 모습은 닭갈비나 고기를 먹고난 후 프로페셔널하게 볶음밥을 만들어 주시는 한국의 서버분들 같다. 이역만리 스페인 사람들도 결국 입맛은 다 똑같은지, 이들도 우리의 누룽지처럼 눌어붙은 socarrat을 밥요리에서 꼭 먹어야 할 하이라이트로 꼽는다. 여기까지 먹고 나면 아마 탄수화물과 와인이 든든해 잠이 솔솔 올 것. 점심식사로 이곳을 방문했다면 이제 에스빠뇰처럼 시에스타 한 숨 즐겨주셔야 할 차례다.



Restaurante Casa Benigna https://maps.app.goo.gl/nyMeSZTziByDsGju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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