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매거진 <퇴사 후 아내와 함께 걷는 순례길>과 동행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글에서는 43편의 여행기를 쓰는 동안 하지 못한 얘기들을 두서없이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조금 더 자세한 퇴사 과정
퇴사 통보 몇 달 전 정기 건강 검진을 받았었다. 마지막 연차를 몰아 쓰고 공식 퇴사일을 기다리는 동안 결과를 받아 보았다. 충격적인 문구가 적혀있었다.
'우울증 전조 증세가 있음'
거짓말 조금 보태서 40년 평생 우울한 감정을 모르고 살아왔다. 평소 낯빛이 어둡다는 얘기는 종종 들었으나 단지 웃을 일이 없어서 무표정했을 뿐이었다. 다른 이의 결과지가 잘못 배달된 것은 아닌가 의심되었다. 이름, 생년월일, 키, 몸무게 등 기본 인적 사항이 분명 내 것이었다.
문득 연초에 회사 동기들과 재미 삼아했던 MBTI 성격 유형 검사 결과가 떠올랐다. 내/외향성 구분 인자가 I(내향성이 비교적 강함)로 나왔었다. 대학교 3학년 때 처음 MBTI 검사를 받은 이래 한 번도 본 적 없는 알파벳이었다.
MBTI 결과로 사람의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성격을 단정적으로 정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I 인자가 강한 경우 대체적으로 외향성 보다 내향성이 도드라진다는 정도의 두루뭉술한 해석은 가능하다고 본다. 나만 해도 그랬다. 지금껏 E 성향이 더 강하게 나왔지만 처음 보는 누군가를 대할 때 낯을 가렸고 마음 편히 깊은 얘기를 꺼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낯가림의 정도, 그리고 상당한 시간이라는 것은 주관적인지라 사람에 따라 기준이 다를 수는 있다.) 암만 그렇다 해도 내향적인 성향이 외향적인 성향보다 우세하다는 결과는 생소했다.
아무래도 조직에 순응하기 위해 자아를 억누르다 보니 어느새 기본적인 성향까지 바뀌었나 보다.
잘 적응해서 다니(는 걸로 보였)던 회사를 그만둔 나를 두고 복권에 당첨된 것 아니냐는 소문이 회사 내에 돌았다고 한다. 주변 지인들은 정년이 보장된 안정적인 직장을 박차고 나온 모습을 보며 용기가 대단하다고 했다.
실상은 일확천금이 생긴 것도, 대단한 자신감이 불현듯 솟아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내가 살기 위해서, 버티고 버티다 더 이상은 도저히 못 견디겠다고 느껴져서 결단을 내린 것이었다.
퇴사를 결정한 것은 어느 날 오후였다. 당시 나는 걷잡을 수 없는 막막함에 사로 잡혀 있었다. 모니터에 글자들이 뿌옇게 보였고 머리가 멍했다.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회사를 그만두는 것 외에는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남은 대출금, 앞으로의 생활비, 지금껏 쌓은 커리어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퇴사만이 유일한 선택지였을 뿐이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속담을 몸소 실천했다.
사회 부적응자라거나 인내심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난 업적과 살아온 인생이 이를 대변해 준다. 나의 성향이 경직된 조직생활과 맞지 않을 뿐이다.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퇴사를 후회한 적이 없다. 오히려 5년이나 그 힘든 시간을 버텨낸 나 자신을 칭찬하고 싶다.
덕분에 산티아고 순례길도 걷지 않았는가.
백팩에 붙인 태극기
15년 전 순례길을 걸으며, 그리고 이후 스페인의 여러 도시들을 여행하며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의 국적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접근했다. 첫 번째는 어디에서 왔는지 직접 묻는 것이다. 두 번째는 당연히 내가 일본인(또는 중국인) 일거라 넘겨짚는 것이다. 어느 쪽이던 개의치 않았지만 굳이 내가 말하지 않아도 한국인임을 알릴 수는 없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최근 부쩍 늘어난 한류의 인기에 편승하고자 하는 기대감도 한몫했다. 2022년 겨울 해외 출장을 나갈 일이 있어 일주일간 네덜란드에 다녀온 적이 있다. 호주, 미국, 오스트리아, 스위스, 프랑스, 일본 등 여러 국가의 담당자들과 일정을 소화했다.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전부 내게 먼저 다가와 한류를 주제로 스몰토킹을 나누었다. 손녀들이 K-pop 가수의 엄청난 팬이라는 호주 출신 할아버지, 한국 드라마 마니아 아내 덕에 자신도 푹 빠져버렸다는 프랑스 아저씨, 자국의 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서 한류 열풍이 불고 있다는 일본 청년 등 가지각색의 증언들을 접했다. 그전 까지는 각종 미디어에서 한류가 유행이라는 보도가 나와도 반신반의했다. 하나, 그때를 계기로 한류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가방에 부착할 수 있는 태극기를 구매하여 바늘과 실로 직접 한 땀씩 기워 붙였다. 아내는 썩 내켜하지 않았다. 도리어 한국에 악감정을 가진 누군가에게 해코지를 당할까 걱정이라고 했다.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고 오히려 몇몇은 관심을 갖고 먼저 다가왔다. 런던에서 버스를 탔을 때 앞에 마주 앉은 아주머니는 태극기를 보고서 K-드라마를 너무 좋아한다며 직접 한국인을 만난 것이 반갑다고 했다. 순례길에서 만난 아일랜드 출신 아저씨도 마찬가지였다.
태극기를 붙이고 다닌 덕에 한 사람이라도 더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으니 개인적으로는 잘한 일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역대급 악천후
추운 기온과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비 그리고 강한 역풍까지, 악천후는 끊임없이 우릴 괴롭혔다. 동료 중 누군가는 스페인에 40년 만의 기상 이변이 발생해서 우리가 이 고생을 하고 있노라고 뉴스에서 접한 소식을 전달했다.
이번이 10번째 순례라고 한 미국인 Jim(짐) 아저씨(사람들은 그를 Camino Jim이라 불렀다)는 어느 날 의미심장한 얘기를 했다.
"내가 지금 까지 경험했던 순례길 중 최악이야. 이번이 가장 힘들어."
짐의 대사는 순식간에 동료들 사이에서 퍼져나갔다. 이후 아저씨는 버스를 타고 다음 마을로 이동하는 일명 점프를 반복했다. 그를 보며 나와 몇몇 동료들은 묘한 희열을 느꼈다.
"10번 온 사람도 포기하는데 우린 꿋꿋이 걷고 있어.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만한 자격이 충분해."
지금 보니 정신이 살짝 나갔었나 보다.
Camino Jim을 언급한 날의 순례길 여행기(클릭)
당시의 상황을 그나마 보여주는 사진 2장. 더욱 심한 악천후 상황에서는 사진 찍을 겨를이 없었다.
제일 좋았던 점
귀국 후 만난 지인들이 빠지지 않고 던진 질문이다. 딱 한 개만 집어서 답할 수는 없다. 40일간의 여정을 어떻게 한 문장에 요약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순례길을 걸으며 좋았던 점들을 주저리주저리 적어 보자면,
저렴한 가격에 유럽 시골 여행이 가능하다.
새로운 환경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반복되는 단순한 일상 덕에 머리를 비울 수 있다.
규칙적으로 고강도 운동을 하기 때문에 체력·근력이 향상되고 다이어트도 가능하다.
품고 있는 문제의 해답을 찾기 위해 온종일 사색할 수 있다.
나 자신에 대해 더욱 잘 알게 된다.
아내와의 관계가 돈독해진다.
품질 좋은 와인을 저렴한 가격에 매일 먹을 수 있다.
정도로 정리되겠다. 가장 좋았던 점(인류애 충전)은 뜻깊은 에피소드가 담긴 이전 여행기(클릭)로 대신하겠다.
재방문 의사와 빈대
Fisterra(피스테라)에 도착 후 아내에게 물어보니 다시 오고 싶지 않다고 했다. 정확히는 '지금 당장은' 재방문 의사가 없단다. 날씨가 워낙 나빴기에 납득되었다. 기온도 우리가 듣던 것에 비해 낮았다. 오죽했으면 순례길 완주 후 북유럽에서 오로라를 보기로 한 당초 계획을 뒤엎고 따듯한 남쪽 나라로 갔을까.
반면 나의 경우 왔던 길을 되돌아 다시 출발지 생장을 향해 당장이라도 역주행하여 걸어가고 싶었다. 한국에 귀국해서 순례길을 그리워하는 Camino Blue(까미노 블루)에 시달리기까지 했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다. 빈대에 무방비로 노출된다는 것이다. 시중에는 다양한 빈대 기피제가 판매되고 있으나 아내와 나의 경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우리는 각각 두 번씩 빈대의 공격을 받았다. 마침 같은 시기 한국에서도 빈대로 인해 난리가 났었다. 혹시라도 짐에 숨어서 귀국길에 같이 들어올까 봐 기존 백팩을 버리고 새로 사서 건조기에 돌린 옷가지들을 담았다.
빈대에 물리면 가려움의 정도가 모기의 그것에 비해 훨씬 심한 탓에 통증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물린 이를 더 힘들게 만드는 것은 옷가지 어딘가에 빈대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에서 기인한 불안감이다. 오늘 밤에도 기어 나와서 나를 물어뜯을까 봐,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번질까 봐 한시도 안심할 수 없다.
유일한 해결책은 모든 옷가지들을 고온에 건조하는 것뿐이다. 건조기가 모든 알베르게에 비치되어 있지 않다 보니 며칠 동안 심란한 마음을 그대로 안고 지낼 수밖에 없을 때도 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끔찍하다.
전체 여행 일정
(순례 전) Seoul/Incheon - Singapore(Singapore) - London(England) - Biarritz(France)
(순례 중) Saint Jean Pied de Port ~ Camino de Frances(프랑스 길) ~ Fisterra
(순례 후) Muxia(Spain) - Porto(Portugal) - Lisbon - Albufeira - Ayamonte(Spain) - Sevilla - Mallorca - Barcelona - Marseille(France) - Nice - Strasbourg - Paris - Gent(Belgium) - Rotterdam(Netherlands) - Amsterdam - Taichung(Taiwan) - Taipei - Hanoi(Vietnam) - Bangkok(Thailand) - Phi Phi Island - Phuket - Seoul/Incheon
순례길 일정 40일, 태국 한 달 살기를 포함하여 120일 동안 10개국을 방문했다.
총 걸은 거리
Saint Jean Pied de Port ~ Fisterra : 899.27km.
- Saint Jean Pied de Port ~ Santiago de Compostela : 806.86km.
- Santiago de Compostela ~ Fisterra : 92.41km.
* 중간에 실수로 GPS를 2회 끄는 바람에 오차가 있을 수 있음
100km만 더 걸었으면 네 자릿수가 되는데 아쉽다. 아직도 정신이 온전치 않은가 보다.
당신도 할 수 있다.
체력이 부족해도 문제없다. 일정 금액을 내면 다음 목적지까지 가방을 배달해 주는 일명 donkey(동키) 서비스를 이용하면 된다. 실제 많은 이들이 활용한다. 신체 컨디션이나 기상 조건이 나쁜 날에만 쓰기도 한다.
환갑을 훌쩍 넘긴 분도 몸집 만한 가방을 멘 가녀린 여성도 모두 완주했다. 신체적 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걷겠다는 의지와 정신력이다.
다만,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접근했으면 좋겠다.
나의 경우 퇴사 이후의 인생에 대한 답을 간절하게 찾고자 했다. 무언가를 갈망하며 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같은 상황에서 느끼고 배우는 깊이가 다르다. (이는 순례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반면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왔더라도 나름의 의미를 찾을 수도 있다. 별생각 없이 왔는데 걷다 보니 목적이 생기기도 한다. 정답은 없다. 그저 독자들 중 순례길에 오르기로 결심하신 분이 계신다면 이왕 가는 김에 더 값진 경험을 쌓기 바랄 뿐이다.
인연의 지속
한식 파티를 함께한 인원들과 한국에서 뒤풀이 자리를 가졌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안부를 전하며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외국인 친구 중 네덜란드 출신 부부 Erwin(엘빈), Inge(잉어)와도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감사하게도 두 친구들은 우리 부부 이야기를 주변에 많이 하고 다닌단다.
스웨덴 출신 예술가 Fia(피아)는 아내와 SNS를 통해 소통을 지속하고 있다.
대만 출신 대학생 Betty(베티)는 대만 타이중에서 만나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서로 결이 잘 맞는 것을 느끼는데 국적은 걸림돌이 될 수 없다.
타이중에서 베티와 함께(왼쪽) / 노량진에서 장O님 & 인O님과 함께(오른쪽)
Buen Camino
피스테라에서 숙소 체크아웃을 하고 버스를 타러 가는 길이었다. 같은 객실에 묵던 아저씨와 마주쳤다. 이름 모를 그는 우릴 향해 Buen Camino(부엔 까미노, 좋은 길 되세요) 인사를 했다. 순례객들이 무사히 걷기를 기원해 주는 인사로만 알고 있던 나는 다급히 손사래를 치며 우리는 더 이상 걷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웃으며 다시 한번 부엔 까미노를 반복했다.
버스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좋은 길 되라는 말의 의미는 순례길에만 국한된 인사말이 아니었다. 인생은 기나긴 길과도 같다. 순례길이 그러했듯 매 순간 고난과 역경을 헤쳐 뜻하는 바를 이루라는 넓은 의미로도 쓰일 수 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죄송합니다.
여행기를 작성하는 동안 하루도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습니다. 연이틀 여행기를 발행하기도 했고, 주말·공휴일이라고 만사 제쳐두고 쉰 적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두 차례 제법 긴 공백기가 생겼습니다. 죄송합니다. 생산 활동을 해야 되다 보니 글쓰기에 소홀할 수밖에 없는 시기가 발생했습니다. 독자님들의 너른 이해를 조심스럽게 구해봅니다.
감사합니다.
약 6개월에 걸쳐 43편의 글을 발행했습니다. 전문 작가가 아닌지라 어색한 문장과 오탈자가 많았습니다. 수십 번의 퇴고와 아내의 감수까지 거쳤는데도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럼에도 독자님들 덕분에 지치지 않고 매조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보잘것없는 제 글을 시간 내어 찾아와 읽어 주시고, 라이킷 눌러 주시고, 댓글 달아 주시고, 응원까지 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여행기들이 자식 같이 느껴져 당당히 세상에 내놓고 싶은데 예전 글을 다시 볼 때마다 눈에 거슬리는 문구들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매거진 연재는 마쳤지만 브런치북 출간을 위해 또 한 번 인고의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조만간 브런치북으로 다시 만나 뵙겠습니다.
독자님들과 재회하는 그날까지 모두들 좋은 길 되세요.
Buen Camino.
지금까지 <퇴사 후 아내와 함께 걷는 순례길>과 동행해 준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본 매거진은 저와 아내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 생장 피에드 포흐(Saint Jean Pied de Port)에 도착 한 날(23.10.10)부터 목적지인 피스테라(Fisterra)에 당도하기까지 40일 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직접 기록한 일기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더 많은 사진은 @the_kangkang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