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avacolla 아 라바꼬야 ~ Santiago de Compostela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10.81km / 2시간 33분 / 비, 바람, 비 그리고 비
대망의 산티아고 입성일이다. 어제 30km에 이르는 먼 거리를 걸은 덕에 오늘구간은 10km 남짓으로 짧았다. 순례길을 걷는 내내 그러했듯이 종일 비가 왔다. 두 시간 반 밖에 걷지 않았는데도 밤새 말려 놓은 신발과 양말이 축축하게 젖었다. 그나마 여느 때처럼 7~8시간씩 걷지 않아도 되었기에 망정이었다.
산티아고까지 10km 남았음을 알려주는 표시석
정신없이 비를 맞으며 걷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저 멀리 산티아고가 보였다.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진행하는 12시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미리 알아본 바에 의하면 성당에는 가방을 가지고 입장할 수 없단다. 짐 보관소가 있는 근처 순례자 사무실로 곧장 향했다.
사무실 건물에 들어가려면 비옷을 벗어야 한다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 로비에서 가방을 내려놓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주변을 살펴보니 안쪽에서 익숙한 얼굴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네덜란드 출신 Erwin(엘빈)과 Inge(잉어) 부부였다. 순례길 여정 4일 차 저녁에 함께 와인을 마신 것을 끝으로 30일 동안 마주치지 못했었다. 아내와 나는 둘을 그리워하며 늘 안부를 궁금해했는데 거짓말처럼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반가움에 포옹을 나누고 짧은 대화를 나눴다. 그들은 우리보다 하루 빠른 어제 산티아고에 도착했단다. 순례길 완주 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 잠시 사무실에 들렀고 오후에는 포르투갈로 이동해서 며칠 쉬었다가 네덜란드로 돌아간다고 했다. 헤어지기 전 식사를 함께하지 못해 아쉬웠다. 우리 부부에게 많은 영감과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준 친구들에게 직접 작별 인사를 건넬 수 있었던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순례길의 마법(Camino magic)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순례자 사무실 맞은편에 있는 표지석이 산티아고에 다 왔음을 알려 주고 있다.
가방을 보관함에 넣고 대성당으로 들어가 시계를 보니 미사 시작 5분 전이었다. 미리 도착해 앉아있는 이들 사이에서 순례길 동지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가볍게 눈인사를 나누며 중앙 통로를 따라 앞쪽으로 걸어가 저녁에 한식 파티를 함께 하기로 한 친구들 옆에 앉았다.
잠시 숨을 돌리며 생각에 잠겼다. 산티아고가 순례길의 종착지인 이들에게서 풍기는 상기된 분위기와 다르게 나는 오히려 덤덤했다. 15년 만에 다시 찾은 곳임에도, 무려 800여 km를 한 달 넘게 걸어서 힘겹게 왔음에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나의 순례는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인가 보다.
산티아고에서 서쪽으로 약 100km를 더 가면 나오는 피스테라가 최종 도착지이다. 15년 전에 좋은 기억을 선사했던 것도 산티아고가 아니다. 피스테라에 도착하는 마지막 날 먼발치에서 대서양이 보이는 짧은 순간이었다. 내게 이곳은 그저 순례길 여정 중에 만나는 또 하나의 경유지 일 뿐이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던 와중에 하얀 사제복을 입은 무리가 교단에 들어서면서 미사가 시작되었다. 의식은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일정 금액 이상의 성금이 모이면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향로가 성당 안을 왕복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데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다.
도중에 사제들이 돌아가면서 자국 언어로 기도문을 낭독하는 순서가 있었다. 동양인으로 보이는 사람의 차례가 되었다. 입에서 한국어가 흘러나왔다. 얼굴을 유심히 보니 최근 며칠 동안 자주 마주쳤던 순례객이었다. 아내와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 서로를 쳐다보았다. 선한 인상을 가진 그는 조용한 성격 탓에 말을 섞을 기회가 적었다. 한국어를 할 줄 아는 남성이라는 것 외에는 아는 바가 없었다. 어제까지 같이 순례길을 걷던 사람이 왜 사제복을 입고 교단에 올라 기도문을 읽고 있는지 도통 가늠되지 않았다.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미사가 종료되었다.
성당 내부를 둘러보던 도중 아내가 룩셈부르크 출신의 순례자 친구 얘기를 꺼냈다.
"Paul(폴)은 잘 도착했을까?"
"그러게. 몸도 성치 않은 데다 길도 자주 잃어버렸는데 걱정이네."
대답을 마치며 모퉁이를 돌았다. 그리고 또 한 번 순례길의 마법을 경험했다. 폴이 서있는 게 보였다. 영화나 드라마도 이렇게 만들었다간 말이 안 된다고 비난받을 만한 장면이었다. 혹여 시야에서 사라질까 아내와 후다닥 달려가 폴을 불러 세웠다. 폴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기쁨과 놀라움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반가움에 포옹을 나눈 후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폴. 잘 지냈어요?"
"응 그럭저럭 괜찮았어. 너희는 어때?"
"우리도 별 문제없어요. 감기랑 다리에 통증은 좀 나았어요?"
"응. 너희가 준 약 덕분에. 다시 한번 고마워."
"별말씀을요. 어쨌든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어요."
"그래. 고마워. 너희도 수고 많았어."
짧은 정적이 흘렀다.
우리는 폴이 갖은 역경들을 이겨내며 힘겹게 이곳까지 왔음을 잘 알고 있었다. 아내가 마음을 담아 다시금 폴의 순례길 완주를 축하해 주었다.
"Paul, We made it! (폴, 우리가 해냈어요!)"
"Yes..."
짧은 대답을 마친 폴은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2초가량 지났을까, 폴의 눈에 눈물이 빠르게 차올랐다. 그러다 결국 참지 못하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아내와 나도 동시에 감정이 벅차올라 부둥켜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폴은 평소 속내를 잘 비치지 않는 무뚝뚝한 사람이었다. 직장을 은퇴한 성인 남성이,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었을 그가 어린아이처럼 우는 모습을 보며 순례길 여정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너무도 와닿았다. 폴에게 순간적으로 동기화되어 버린 아내와 나도 같은 감정을 눈물로 공유한 것이다.
세 명의 울보 곁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언젠가부터 폴과 함께 여정을 소화하고 있는 미국인 순례자 Jake(제이크)였다. 폴과 연령대가 비슷하고 성향도 잘 맞아 거의 매일 같은 숙소에서 머물며 지냈단다.
한바탕눈물바다를 이루고서야 진정된 폴은 제이크를 향해 말했다.
"These are the two angels I've always told you. (내가 맨날 얘기했던 천사들이야)"
천사들이라니.
순례길을 걸으며, 아니 살면서 가족 이외의 누군가에게 들은 최고의 찬사였다. 이미 한 번 열린 눈물샘은 너무나도 쉽게 다시 개방되었다. 폴의 얘기를 들은 나와 아내는 겨우내 멈춘 눈물을 다시금 왈칵 쏟아 내었다. 폴은 순례길을 마쳐서 울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를 다시 만나게 된 반가움에 눈물을 흘린 것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들썩거리며 폴에게 기대어 한참을 울었다.
"You guys were so nice to me. (너희는 나한테 정말 친절했어.)"
폴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부르고스에서 출발한 날 아침, 그리고 까스뜨로헤리스를 떠난 날 오후 두 번이나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데 너희가 나를 구해줬어. 부르고스에서는 감기에 걸려 컨디션도 좋지 않은데 발목 통증까지 겹쳐 정말 힘들었어. 너희가 진통소염제를 나눠 준 덕에 무사히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그날 이후 힘들 때마다 부르고스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며 너희를 그리워했어."
감정이 너무나도 벅찬 탓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짧은 감사 표시를 전했다.
"그렇게 생각해 줘서 정말 고마워요, 폴."
마음을 가라앉히고 폴의 남은 제2의 인생을 응원해 주고 다시 아쉬운 이별을 했다.
단지 나이가 많아서, 또는 이전에 친분을 쌓았기 때문에 경로를 이탈한 폴을 도운 게 아니었다. 누가 되었든 간에 순례자가 순례길을 벗어난 것을 발견하면 알려주는 것이 당연하다. 진통소염제는 폴에게만 나누지 않았다. 아내는 근육통이나 관절염 또는 감기 증세가 있는 모든 이에게 한 알씩 꺼내 주었다. 12개짜리 묶음을 가지고 왔는데 정작 우리는 아픈 곳이 없어 먹지 않았음에도 딱 두 알 밖에 안 남았다. 우리 입장에선 별거 아닌 자연스러운 행동이 폴에게는 너무나도 힘들고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순간에 큰 선행으로 다가왔나 보다.
지금껏 순례길을 걸으며 우리에게 친절을 베푼 여러 사람들 덕에 수차례 인류애를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은 반대로 아내와 나도 누군가에게 인류애를 선사해 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뿌듯함과 따듯함으로 돌아왔다.
순례길을 걸으며 가장 좋았던 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40년을 살면서 거의느끼지 못한 아름다운 인류애를 한껏 느낄 수 있었다고.
교단 앞쪽으로 돌아오니 친한 순례객 여러 명이 모여 있었다. 무리 중에는 미사 도중 한국어로 기도문을 낭독했던 이도 보였다. 알고 보니 그분은 직업이 신부님이었다. 성지 순례차 산티아고까지 왔고 사전 협의가 없었음에도 오전에 무작정 성당 사무실을 방문했단다. 미사에 참석하고 싶다는 요청을 전달했더니 간단한 신분 확인 절차를 거쳐 사제복을 입을 수 있었다고 했다. 미사 진행 순서는 전 세계가 동일하기 때문에 별도의 연습이나 리허설은 필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왜 미리 신부님임을 밝히지 않았느냐 물어보니 순례자들 중에는 비종교인들도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다고 답했다.
비로소 정체를 밝힌 신부님은 결코 말수가 적지 않았다. 오히려 쾌활하고 사교적인 성격에 가까웠다. 고생한 동료들과 단체 사진을 남기고 신부님과 함께 성당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