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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애 Jan 07. 2025

백영옥의 '빨강 머리 앤이 하는 말'을 읽고

(8쪽) “린드아주머니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들은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실망할 것도 없으니까.’라고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실망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게 더 한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수없이 앤을 읽었다. 하지만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앤이 한 말을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앤이 한 말을 ‘듣기만 했을 때’와 그녀에게 들은 말을 ‘노트에 적었을 때’의 차이는 컸다. 그 차이만큼이 내겐 기적의 크기다. 나는 다시 실망하더라도 오래 꿈꿔왔던 것을 기대해 보기로 했다. 나는 ‘다시’ 소설을 쓰기로 했다. 나는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안나 카레니나’와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파우스트’, ‘오만과 편견’ 같은 내 인생의 책들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결국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어쩌면 이것은 더 이상 기적을 믿지 않는 시대에 일어난 지극히 개인적인 기적에 관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빨강머리 앤’을 읽으며 기적을 경험한다. 절망에서 벗어나 ‘다시’ 희망을 향해 노력하게 되는 기적, 그리고 작가는 ‘소설가가 되었다’. 작가는 책에서 발견한 주옥같은 말들에 자신의 생각을 더하여 이 책을 썼다. 책 속에서 앤의 말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이 책을 읽은 후 ‘빨강머리 앤’을 다시 읽었다. 나도 보석 같은 앤의 말을 찾아내고 싶었다. 작가가 찾아낸 그 반짝이는 말들을 책 속에서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책을 읽으면서 앤의 수다에 미소 짓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였다. 처음이 아님에도 호기심을 갖고 재미있게 읽었지만 내가 찾아낸 말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작가가 찾아낸 앤의 말조차도 평범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앤의 말이 돋보일 수 있었던 것은 작가의 재창작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작가는 앤의 말에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을 입혀 새로운 글을 썼다. 앤의 말은 작가의 표현 속에서 더 깊이를 지닐 수 있게 된 것 같다. 어쩌면 앤의 말이 작가의 상상력을 더 높여주었을 수도 있겠지만.


(190,191쪽) “아주머니 실컷 울게 해 주세요. 우는 게 그 아픔보다는 덜 괴로워요. 얼마 동안 제 방에 있어 주세요. 저 좀 안아주세요.”

추억이 기억과 다르다면, 그런 것 때문이리라. 추억 속엔 '나'아닌 '너'도 있다. 추억은 '우리'가 함께 만드는 것이다. 매튜를 잃은 앤은 마릴라의 가슴에 파묻혀 운다. 울고, 또 울면서 마릴라와 매튜에 대해 끝없이 말한다. 앤은 끊임없이 과거로 돌아간다. 앤은 아저씨와의 추억을 기억해 낸다. 결국 앤은 조금씩 마음을 추스르고, 아저씨가 자신에게 해주었을 말을 떠올린다. 비는 그칠 것이다. 눈은 잦아들고, 바람은 지나갈 것이다. 하늘에 떠 있는 별조차, 좌표를 바꾸며 끊임없이 변한다. 시간은 많은 것들을 바꾼다. 하지만 지금의 앤에게 슬픔을 참으라고 말하지 않겠다. 슬픔은 참아서 잊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이 약이란 말도 하지 않겠다. 아직 슬프다면 더 울어야 한다. 눈물이 더는 흐르지 않는 시간이 되면, 얼마간 담담해진 얼굴로 피어 있는 꽃도 보고, 반짝이는 달도 별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상처가 회복된다고 해도, 인간에겐 흔적이 남는다. 우리는 그것을 흉터라 말한다. 흉터를 안은 채, 죽지 않고 살아내는 것, 견디거나 버티는 것, 어쩌면 삶은 그런 것에 보다 가까울지 모른다. 상처가 꽃이 되는 순서를 믿는 건 어쩜 어른이 되어간다는 말일는지도..... 벚꽃이 바람에 비처럼 흩날린다.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나는 4월이다.


(299쪽) “난 최선을 다해 공부했고, 노력의 기쁨이란 어떤 것인지 그 뜻을 알게 된 것 같아. 열심히 노력해서 이기는 것 다음으로 좋은 것은 열심히 노력했으나 졌다는 것이야.”

한때 나는 노력이 의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늘 내 노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때마다 의지박약이란 말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하지만 이젠 노력이 일종의 '재능'이라는 걸 안다. 노력은 의지가 아니다. 노력이야말로 어떤 면에서 타고난 재능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특별한 재능 말이다.


독서가 '읽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렇게 '쓰는' 것으로 이어지는 경험은 앤을 사랑하여 여러 번 읽은 작가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있다. 누군가에게서 책을 많이 읽어 안에 꽉 차게 되면 저절로 흘러나오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제대로 읽어내고 표현하는 능력이 있어서 가능했겠지만 말이다.


(195쪽) 사람을 빠르게 치려다가 오타가 나면 삶이 된다.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들은 실은 사람들이 수없이 내고 있는 오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288쪽) 나는 내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아! 사람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변하는 거구나!"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변하지 않아서 좋았다'는 말보단, '변해서 좋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어졌다. 평생 밥만 먹던 할머니가 죽기 몇 달 전 빵을 맛보면서 '아! 빵이 참 맛있구나'라고 말하는 장면이 그래서 나는 참 좋았다. 변했다는 건 뭔가 끊임없이 시도했다는 얘기일 거다. 발음이 괴상한 외국어 배우기를 시도하고, 낯선 나라의 음식을 먹어보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하기 위해 용기를 내보는 것 말이다.


좋은 표현. 좋은 생각들이 많다. 읽으면서 앤의 말에서, 작가의 말에서 많은 기쁨과 위안을 얻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책을 읽고 있는 우리들도 쓸 수 있겠다고.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을 읽고

우리도 써 봅시다.


1단계 ㅡ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찾아 옮기기(앤의 말이어도 되고 작가의 말이어도 됨)


(예시)

(164쪽) 길은 소실점까지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내 눈앞에서 사라지곤 했다. 그 길의 끝에는 하늘과 땅이 샴쌍둥이처럼 붙어 있을 것 같았다. 한 시간을 달려도 차 한 대 지나가지 않는 이런 길을 달리다 보면, 어느새 내가 도시에서 체득한 시간들이 무의미해진다는 것도 알게 됐다. 시간은 모든 것을 천천히 바꾼다. 하지만 공간은 많은 것들을 빠른 시간 안에 뒤바꾼다.

사막을 달리다가 충동적으로 차를 세워놓고 길가에 누워 있거나 그저 서 있었다. 방전된 핸드폰 같은 내 몸이 거대한 태양을 집열판 삼아 충전되고 있다고 느꼈다. 오직 조슈아 트리만 있는 사막의 길 위에서 내가 본 건 모래, 바람, 태양뿐, 그곳이 한때, 깊은 바다였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거대한 계곡과 협곡들 위로 구름이 떠다니고 있었다. 내 몸 여기저기에 박혀 있던 지독한 고단함은 사막의 뜨거운 태양과 텅 빈 길을 달리는 동안, 어느 사이 조금씩 녹기 시작했다.


2단계 ㅡ 그와 연관된 나의 경험 찾기


(예시) 40이 되던 해에 부석사에서의 경험


3단계 ㅡ 그 경험에서 내가 느낀 것 쓰기


(예시) 40을 앞두고 이제 내게 더 이상 특별하거나 새로운 인생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

그저 그런대로 살아가리라는 생각이 들었음

해 질 녘 부석사 삼층석탑에서 노을 속에 첩첩이 펼쳐지는 능선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가슴에 맺혔던 무엇인가가 풀어지는 느낌

주홍빛 불빛이 밝혀진 고루에서 스님이 울리는 저녁 북소리에 가슴이 뜀

주홍빛 불빛 밝혀진 부석사 대웅전을 돌면서 마음이 평안해짐

그 기억으로 아직도 저녁 무렵의 절을 좋아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을 때 부석사에 데려감

내가 힘들 땐 일상에 두지 말고 회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어야 함

변화가 필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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