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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애 Oct 29. 2024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읽고

행복하고 건강하며 균형 잡힌 삶을 위하여

 오래전에 영화를 보았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건 밝게 웃으며 자전거를 타고 녹음 우거진 길을 달리던 줄리아로버츠의 모습이다. 그 웃음이 인상 깊었던 것은 '간으로도 웃을' 수 있는 발리식 명상에 익숙해져서였을까, 아니면 그녀가 '행복하고 건강하고 균형 잡힌' 삶을 찾아서일까?

이 책은 기자이자 작가인 리즈의 명상의 여정이다. 뉴욕에서 치열한 미국인으로 살던 리즈는 남편과의 이혼을 진행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새로운 연인인 데이비드와의 관계에도 지치게 되자 여행을 계획하게 된다. 본래 명상과 신에게 관심이 많던 그녀였기에 가능했던 이 여행은 그녀가 자신을 찾기 위한 여행이며. 그녀가 자신 안에 있는 신을 발견하고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 계획한 여행이다. 그녀가 택한 여행지는 이탈리아, 인도, 인도네시아이다.


하나. 이탈리아 - 섹시한 로마의 아름다움에 탐닉하다.(먹고)


(98쪽) 그러나 이런 근면함의 역사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벨 파 니엔테'는 이탈리아인들이 언제나 소중히 간직해 온 고귀한 개념이다. 그들에게 빈둥거림의 미덕은 모든 노동의 목표이자, 가장 축하해야 할 최종 업적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부자여야 할 필요는 없다. 이탈리아어에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술(l'arte d' arrangiarsi)'이라는 또 하나의 멋진 표현이 있다. 간단한 몇 가지 재료만으로 진수성찬을 차려내는 기술, 혹은 친구 몇 명만 모아놓고도 축제를 벌이는 기술을 말한다. 꼭 부자여서가 아닌 행복을 만들어내는 재능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180-181쪽) 내가 처음으로 내 영혼을 수선하기 시작한 때는 뉴욕의 욕조에서 큰 소리로 이탈리아어 사전을 읽으면서부터였다. 내 인생은 산산조각으로 부서졌고, 내 얼굴은 나조차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변해 있었다. 설사 내가 용의자 중의 한 명이 되어 경찰서 벽에 나란히 선다 해도 자신을 지목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탈리아어를 공부하면서부터 어렴풋한 행복이 싹트는 걸 느꼈다. 칠흑 같은 시기를 보낸 뒤에는 행복의 희미한 가능성이라도 감지되면 어떻게든 그 행복의 발목을 움켜쥐고 그것이 날 진창에서 일으켜줄 때까지 절대 손을 놓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 이건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라 의무다. 우리는 삶을 부여받았고, 이 생애에서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뭔가 아름다운 것을 찾아내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자 인간으로서의 권리이다. 난 비쩍 마르고 수척해진 상태로 이탈리아에 왔다. 그땐 내가 무엇을 누릴 자격이 있는지 미처 몰랐다. 어쩌면 아직도 완전히 알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백 퍼센트 무해한 쾌락을 즐김으로써 내 자신을 다시 긁어모아 훨씬 온전한 누군가로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은 분명히 알고 있다. 이를 가장 쉽고, 가장 근본적으로 표현하자면 난 몸무게가 늘었다.

이제 내 존재는 넉 달 전보다 더 커졌다. 나는 여기 왔을 때보다 눈에 띄게 부푼 몸집으로 이탈리아를 떠날 것이다. 한 개인의 팽창은 한 인생의 확대요, 이것은 실로 이 세상에서 가치 있는 일이라는 희망을 안은 채, 비록 이번만큼은 공교롭게도 그 한 인생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의 인생일지라도.


이탈리아어에 매력을 느껴 찾아간 이탈리아에서 늘 긴장한 채 생활하는 미국인들과는 다른 이탈리아인들의 ’빈둥거림의 미덕‘에 동화되면서 리즈는 ’ 무해한 쾌락‘을 즐기며 자신을 회복하게 된다.


둘. 인도-명상 동굴 여전사로서 신을 찾다.(기도하고)


(189쪽) 그러나 요가 철학자들은 인간의 불만족은 자신의 정체성을 오해한 결과라고 말한다. 우리는 스스로가 그저 두려움과 결함, 분노, 언젠가는 죽어야 할 운명을 지닌 보잘것없는 인간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다. 우리의 한정된 작은 자아가 우리 본질의 전부라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면 깊은 곳에 존재하는 보다 신성한 특질을 깨닫지 못한다. 모든 인간의 마음속 어딘가에는 영원히 평화로운 최상의 자아가 존재한다는 걸 깨닫지 못한다. 그 최상의 자아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아울러 보편적이고 신성한 자아이다. 이 진실을 깨닫지 못하면 인간은 언제나 절망에 빠져 있을 것이라고 요가 철학자들은 말한다. 이런 개념은 고대 그리스의 스토아 철학자인 에픽테토스의 까칠한 발언인 “이 한심한 사람아, 그대는 내면에 신을 품고 있으면서도 그걸 모르는구나."를 친절하게 표현한 것이다.


(268쪽) 그리하여 이제는 매일 아침마다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탐색할 시간을 갖는다. 사원에서 무릎을 꿇은 채 진정한 기도의 형태가 갖춰질 때까지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계속 얼굴을 대고 있다. 진실한 기도가 떠오르지 않으면, 떠오를 때까지 그렇게 앉아 있다. 어제의 기도가 늘 오늘도 통하는 건 아니다. 정신이 고여 있으면 기도는 지루하고 익숙한 상태로 넘어가 썩게 된다.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나는 내 영혼 유지의 보호 감찰관이 되기로 했다.


(269쪽) 최근 명상 도중 끊임없이 일어나는 생각에 대해 불평하던 내게 텍사스에서 온 리처드가 말해준 개념이다.

"먹보야, 넌 매일 무슨 옷을 입을까 고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슨 생각을 할까 고르는 법을 배워야 해. 그건 네가 얼마든지 기를 수 있는 힘이야. 네가 정말로 네 인생을 통제하고 싶어 죽을 지경이라면 마음을 훈련시켜, 그거야말로 네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거니까. 마음 외에 다른 건 다 내려놔. 네 생각을 어떻게 다스릴지 배우지 못하면, 넌 영영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될 테니까.”

얼핏 보기엔 이건 불가능한 일처럼 들린다. 내가 생각을 통제한다고? 그 반대가 아니고? 하지만 만약 정말 그게 가능하다면? 이건 억압이나 부인이 아니다. 억압과 부인은 부정적인 감정이나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척하는 교묘한 장치를 설치하는 것이다. 그러나 리처드가 의미하는 것은 부정적인 생각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게 어디서 왔고, 왜 왔는지 이해한 후, 크나큰 용서와 단호함으로 그것을 떠나보내라는 것이다.


영적 스승을 찾는 과정에서 알게 된 구루인 '스왐지'의 제자들이 운영하는 인도의 아쉬람에서 리즈는 명상과 기도를 통해 신을 만나고자 노력한다. 아쉬람에서 리즈는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검열한다. 자신을 억압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떠나보내고 자신 안에 있는 신의 존재를 발견하기 위한 치열한 노력을 통해 그녀는 여러 번 신과의 만남을 체험하게 된다.


셋. 인도네시아 – 내 몸에 완벽한 사랑을 만나다. (사랑하라)


리즈는 잡지사 취재차 만났던 주술사 끄뜻과의 인연으로 인도네시아의 발리를 마지막 여행지로 삼는다. 그동안 노력의 결과일까? 인도네시아에서 그녀는 남편과 데이비드에게서 받은 상처를 극복하고 펠리페와 새로운 사랑을 키워나가며 ‘행복하고, 건강하며, 균형 잡힌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내면을 끊임없이 살피고 안정시키고자 한 자신의 노력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자신이 ‘나의 삶의 구원의 관리자’였다는 것을.


(491쪽) 행복하고, 건강하며, 균형 잡힌 삶

하지만 날 지금 당장 완벽한 동화의 엔딩 속으로 녹아들지 못하게 막는 것은 이 또렷한 진실, 지난 몇 년간 실제로 내 뼈대를 만들어온 진실 때문이다. 즉 날 구해준 것은 왕자가 아니라, 나 스스로 내 구원의 관리자였다는 진실. (중략)

최근에 내 모습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을 생각해 봤다. 그건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려는 촌극에서 벗어난, 내가 늘 꿈꿔오던 내 모습이요, 내 삶이다. 지금 이렇게 되기까지 내가 참아왔던 모든 것들을 생각하니 이런 의문이 들었다. 그러니까 더 젊고, 더 혼란스럽고, 더 힘들었던 그 기간 동안 앞으로 나가려고 안간힘을 쓰던 나를 끌어당겨 주었던 건 이 행복하고, 균형 잡힌 나, 조그만 인도네시아인의 낚싯배의 갑판에서 졸고 있는 내가 아니었을까? 더 젊은 시절의 내가 잠재력으로 가득 찬 도토리였다면, 지금까지 시종일관 "옳지, 어서 자라! 변화해! 진화해! 어서 와 여기서 나를 만나자. 이곳에서 난 이미 온전하고 성숙한 존재야! 넌 어서 자라 내가 되어야 해!"라고 말해준, 더 나이 든 나는 미래의 떡갈나무가 아니었을까?

아마 사 년 전, 한밤중 욕실 바닥에서 흐느끼던 젊은 주부의 주위를 맴돌며, 절박한 그 여인의 귀에 “침대로 돌아가, 리즈……….”라고 상냥하게 속삭였던 건 지금의 완전하게 발현된 나일 것이다. 이미 모든 게 좋아질 거라는 걸 알고, 모든 게 결국은 여기서 우리를 합체시킬 상태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도착해 나와 합류하기를.


그녀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무엇이 이렇게 그녀를 떠나게 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생각해 보면 그것은 '간절한 마음'이 아닌가 싶다. 삶의 허전함을 극복하고, 자신 안의 신을 발견하여 추락한 자존감을 극복하고, 평화롭고 안정된 삶을 원하는 마음이 간절했기에 그녀는 떠날 수 있었던 것 같다. ㅡ 물론 작가로서 책을 쓰겠다는 부수적인 목표도 함께 했지만. 그 여행에서의 다양한 경험과 노력 끝에 그녀의 삶이 달라졌다. 삶의 변화는 그렇게 오는 걸까? 책을 읽으며 문득 생각하게 된다. 나에게도 변화가 간절히 필요한가? 만약 그렇다면 어디로 떠날 것인가?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읽고 생각해 봅시다.


1. 현재의 내 삶에 변화가 필요한가요? 그 이유는?


2. 리즈의 이탈리아, 인도, 인도네시아의 삶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어느 나라에서의 삶을 선택하고 싶나요? 그 이유는?


3. 다음 글을 참고하여 ‘당신의 단어’를 적어 보세요.


“당신의 단어는 뭐요?"

그건 정말이지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로부터 이삼 주 동안 계속 그 질문에 대해 생각했지만, 난 여전히 대답을 찾을 수 없다. 죽어도 내 단어가 될 수 없는 몇몇 단어들이라면 알고 있다. '결혼' 이라든가, 가족' (비록 남편과 함께 그 단어의 나라에서 몇 년 간 살기는 했지만, 그 단어에 적응할 수 없었던 게 내고통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같은 천만다행으로 '우울'도 더 이상 내 단어는 아니다. 스톡홀름의 단어인 '순응'도 아닌 게 분명하다. 뉴욕의 단어이자 내 이십 대를 사로잡았던 '성취하다'도 이젠 더 이상 완벽한 내 단어로 여겨지지 않는다. 내 단어는 아마 '추구하다' 일 것이다. (그렇지만 솔직히 말해서 도피'라고 하는 게 더 가깝지 않을까?)

이탈리아에서 보낸 지난 몇 달간 내 단어는 주로 '쾌락'이었다. 하지만 그 단어가 날 속속들이 담고 있는 건 아니다. 그랬다면 내가 그토록 인도로 가고 싶어 하진 않았을 테니까. 내 단어는 '신앙‘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왠지 실제의 나보다 더 미화된 것처럼 들린다. 게다가 내가 와인을 얼마나 많이 마시는데. 난 아직 대답을 찾지 못했고, 아마도 그게 이번 여행의 목적인 것 같다. 내 단어를 찾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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