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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는 사이에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읽고

by 경애

직장생활을 하면서 한 해를 시작할 때 늘 기원하는 말이 있었다.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가 나로 인해 상처받는 일이 없기를.”

그리고 한 해를 지낸 후 혹시 나로 인해 마음 상한 일이 있었다면 고의는 아니었으니 이해해 달라고 사과하곤 했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결과적으로 잘 지내 온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좀 더 살아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 (100쪽) 이제 나는 은퇴를 한 몸이다. 내 소유의 살림이 딸린 아파트를 가지고 있다. 꾸준히 만나는 술친구가 두엇 있고, 여자친구들도 있다. 물론, 플라토닉 한 관계이다. (중략) 얼마 전엔 동네 병원 도서 관리직에 자원해서 병동을 돌아다니면서 책을 배달하고, 수거하고, 추천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 덕에 외출도 하고, 뭔가 쓸모 있는 일을 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지 않다. 또, 새로운 사람들도 조금 만난다. 물론 아픈 사람들, 죽어가는 사람들이긴 하다. 그러나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적어도 병원 지리 정도는 알고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이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얼마간은 성취를, 얼마간은 실망을 맛보는 것. 나는 이제껏 재미있게 살아온 편이다. 다른 사람들 눈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볼멘소리를 하거나 깜짝 놀라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어떤 면에서 에이드리언은 자신이 뭘 하는지 알았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도 알다시피 내 인생에서 뭔가 아쉬운 게 있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살아남았다. 그는 살아남아 이야기를 전했다. 후세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을까? 과거, 조 헌트 영감에게 내가 넉살 좋게 단언한 것과 달리,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이 아니다.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더 가깝다는 것을. -


말년에 어느 정도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던 ‘나’의 삶에 하나의 돌이 날아왔다. 젊었을 적 친구인 에이드리언의 죽음과 그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그저 안타까운 친구의 이야기일 뿐이라 생각했던 친구의 죽음이, 그리고 그 뒤에 남겨진 사람들의 삶이 자신의 편지로 인해 벌어진 일임을 알게 되면서 ‘나’는 혼란에 빠진다. 나름대로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안에 내가 모르는 축적이 이루어지고, 그 안에 내가 감당해야 할 책임도 있었다. 그리고 그 책임은 참 무겁고 무섭게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나의 뒤통수를 치듯이 손을 내밀었다. 나의 삶을 혼란스럽게 흔들어 놓을 만큼. 삶은 결코 녹녹지 않았다.


- (253쪽) 그 후 집에 돌아와 다시 처음부터 생각해 보았고, 얼마간 시간이 흐른 후, 이해하게 되었다. 감을 잡았다. 맨 처음 포드 부인이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갖고 있었던 이유를 부인이 편지에 '추신.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세상을 떠나기 전에 보낸 마지막 몇 달 동안 에이드리언은 행복했다고 생각해'라고 썼던 이유를 두 번째 간병인이 '특히 지금은'이라고 말했을 때의 의미를 베로니카가 '피 묻은 돈'이라고 말한 것까지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볼 수 있었던 한 페이지에서 에이드리언이 말하고자 했던 것도. 요컨대 b, al, a, s, v라는 정수가 포함된 축적은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을까?' 그런 후, 가능한 축적을 표현하는 두 개의 공식도 이제야 뜻이 명확해졌다. 첫 번째 a는 에이드리언이었다. 다른 a는 나, 앤서니 그 옛날, 내가 진지해지길 바랄 때마다 그가 불렀던 이름이었다. b는 '아기 baby'를 뜻하는 기호였다. 위험천만한 노산 끝에 어머니-‘모친'에게서 태어난 아기 그 때문에 장애를 갖게 된 아이. 이제 마흔 살이 되었고, 깊은 슬픔으로 인사불성이 된 그. 그는 누나를 메리라고 불렀다. 나는 책임의 사슬을 보았다. 거기에 나의 이니셜이 있는 것을 보았다. 에이드리언에게 보낸 그 저열한 편지에서 베로니카의 어머니와 의논하라고 채근했던 것이 기억났다. 남은 평생 머릿속에서 맴돌게 될 그 말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맺지 못한 채 끝나버린 에이드리언의 문장도 함께 '그래서 예를 들면, 만약 토니가 나는 안다, 이제는 바꿀 수도, 만회할 수도 없음을.

인간은 생의 종말을 향해 간다. 아니다, 생 자체가 아니라, 무언가 다른 것, 그 생에서 가능한 모든 변화의 닫힘을 향해. 우리는 기나긴 휴지기를 부여받게 된다. 질문을 던질 시간적 여유를. 그 밖에 내가 잘못한 것은 무엇이었나? 나는 트라팔가르 광장으로 몰려간 한 무리의 애들을 생각했다. 나는 일생을 통틀어 단 한 번만 춤을 추는 한 젊은 여자를 생각했다. 앞으로도 알지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을 모든 것들 중에서 내가 지금 알지 못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에이드리언이 규정한 역사를 생각했다. 그의 아들이 나를 피하려고 엠보싱 화장지가 놓인 선반에 얼굴을 들이박던 모습을 생각했다. 나는 프라이팬에 부치던 달걀이 터졌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태평하게 휙 하니 내버리던 한 여자를 생각했다. 바로 그 여자가 나중에, 햇볕이 내리쬐는 등나무 아래에서 팔을 수평으로 뻗으며 비밀스러운 제스처를 취하던 모습을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용마루처럼 솟아오른 강의 파도가 달빛에 반짝이며 우릴 지나쳐 기세 좋게 거슬러 올라가 사라지는 가운데, 한 무리의 학생들이 어둠 속에서 손에 든 회중전등 빛줄기를 교차시키며, 고함을 지르며 그 뒤를 따르던 광경을 생각했다.

거기엔 축적이 있다.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너머에, 혼란이 있다. 거대한 혼란이. -


책을 읽으면서 약간은 안개를 품은 듯한 느낌이었다. 아마도 이야기들의 근간을 이루는 ’기억의 모호함‘과 연결되어 그런 듯하다. 베로니카와의 사랑과 이별, 베로니카 가족과의 만남과 에이드리언과의 관계와 관련된 모호한 기억은 궁금증을 자아내 ’무언지 모르지만 재밌네.‘라는 생각을 하게 하며 몰입도를 높인다.

그렇게 모호한 기억인 채로, 지나간 추억인 채로 끝났으면 좋으련만 베로니카의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나에게 벌어진 현실 상황은 나의 기억을 다그쳐 진실을 추적하게 한다. 그리고 마주한 진실은 가혹하다.


- (182쪽) 나는 인생의 목적이 흔히 말하듯 인생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님을 얼마의 시간이 걸리건 상관없이 기어코 납득시킨 끝에, 고달파진 우리가 최후의 상실까지 체념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데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할 때가 가끔 있다. -


책을 덮으며 생각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로 인해 누군가가 아파하진 않았기를. 내 생각 그대로 내 인생은 해피엔딩이길.


#줄리언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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