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여행의 리허설 무대
1. 뉴욕의 스펙트럼에 전주가 존재한다.
뉴욕 여행기에 전주 이야기가 나오면 이질감이 들 것이다. 그래도 뉴욕의 스펙트럼 안에 전주가 분명히 존재한다. 공식적인 나홀로 여행의 데뷔 무대는 뉴욕이었지만, 리허설은 전주에서 한 셈이니 말이다. 나홀로 여행도 연습이 필요했다.
대구에서 전주까지는 기차는 없고 버스로만 이동 가능한데 3시간 정도 소요된다. 교통편이 불편해서 다른 지역보다 자주 가진 못했다. 그래서 전라도 여행에 대한 전통적인 로망을 그대로 간직한 상태였다. 상다리가 부서지는 반찬과 먹거리가 가장 컸다. 전주로 향한 버스에서 멀미 나도록 맛집 검색만 했다.
배고프고 어지러운 상태로 전주에 내려졌다. 전주의 교통 질감은 부산과 비슷했다. 클락션 빵! 끼어들기 쑥! 몰려오는 멀미에도 맛있는 걸 먹고 말겠다는 의지로 악착같이 검색한 결과, 점심은 유명한 칼국수 집으로 정했다. 유명세답게 가게 앞은 북적거렸다. 대기표를 적는 순간이 용기가 가장 필요한 순간이다.
“몇 분이세요?” “한 명입니다.”
식당에 혼자 갈 때마다 이 질문을 들으면 소심해진다. 뷔페 레스토랑을 갔을 때, 혼자 왔다는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재차 확인했던 직원이 떠올라 더 위축되었다. 대기자 명단에 이름 남긴 지 10분도 되지 않아 차례가 되었다. 한 명이라 다른 팀보다 더 빨리 불렸다. 규모가 꽤 큰 식당인데도 안에는 시장통이었다. 합석해도 무방한 테이블 간격과 들어오고 나가는 손님 간의 통행이 복잡했다. 가족과 연인 단위 손님들 중간에서 당당히 혼자 테이블을 꿰찬 나를 제3의 눈으로 상상하니 웃겼다. 놀라웠던 점은 미친 회전율이었다. 믿을 수 없겠지만, 칼국수를 주문한 지 30초 만에 음식이 나왔다. 밑반찬과 물보다도 빨랐다. 음식을 먹는 사이에 옆 테이블은 두 번이나 손님이 바뀌었다. 칼국수의 맛은 기억나지 않는다. 직원의 발에 차이고, 시끄러운 소음에 맛을 느낄 여유 없이 도망치듯 나왔다.
여행에서 꼭 가는 코스 중에 하나가 서점이다. 책이 많은 곳은 안전지대처럼 느껴진다. 근처에 있는 독립서점을 찾았다. 아담한 크기의 서점은 방심할 만 곳에 책이 진열되어 있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책이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발에 차여 툭툭 떨어졌다. 사장님께 책을 추천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전주에서 입을 뗀 적이 없어 내 목소리 자체가 어색하게 들릴 정도였다. 뽀글 머리 사장님도 심심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적극적으로 설명해 주셨다.
“가벼운 에세이를 좋아해서요. 그런 책은 없을까요?”
“정말 가벼운 걸 좋아신다면... 이건 어때요?”
사장님은 이런 책은 보지도 못했을 것이라는 당당한 표정으로 <드립의 정석>이라는 책을 꺼내 보였다.
“이건 가벼워도 너무 가볍잖아요.”
책에 대해서 이것저것 이야기하다가 독립 출판으로 이야기 주제가 흘러갔다. 나의 출간 필살기를 꺼낼 타이밍인가 싶어 자연스럽게 말을 꺼냈다.
“에세이를 출간해 보니깐 독립 출판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기더라고요.(제가 작가입니다.)”
놀라워하는 사장님의 반응을 기대했지만, 예상 밖으로 대화가 흘러갔다.
“책을 내보셨구나. 저돈데. 제 책은 여기 서점에 진열 안 해요. 손님들이 자꾸 제 책만 찾아서.”
졌다. 대화를 급히 마무리하고 나왔다.
2. 나를 지키는 경계선
저녁은 숙소에서 먹어야 했다. 여행에서 밥을 대충 때우는 사람으로 생각했다면 오해다. 숙소에서 3만 원을 내면 방어회 파티에 참석할 수 있다는 공지를 봤다. 후기 사진으로 봐도 방어회와 수육, 가리비 등 양이 충분했고 무엇보다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였다. 잠시 잊었던 뉴욕 여행으로 돌아가자면, 여행하는 동안 동행을 구할지 말지 고민하던 시기였다. 여러 관점에서 뉴욕을 뜯어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으면서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나를 상상하자 피곤하기도 했다. 전주에서 낯선 사람들과도 어울리면서 천천히 생각해 볼 요량이었다.
방을 같이 쓰는 여자 3명과 쉽게 친해졌다. 파티에도 같이 앉았다. 사람들이 처음부터 4명에서 놀러 온 무리로 알 정도였다. 문제는 대화 주제가 대학교 MT만도 못했다. 나를 제외한 여자 삼인방은 목소리가 커서 쉽게 파티장을 휘어잡았다. 술게임이 난무하고 조금이라도 대화할 법한 주제가 나오면 야유소리가 귀에 꽂혔다. 여행지에서 아주 기본적인 질문조차도 그녀들에게 막혔다.
“어디 다녀왔어요?”
“안물안궁이에요. 우리 술게임이나 해요.”
그날, 온갖 술게임이 총동원되었다. 꾸역꾸역 게임을 이어가는 내내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했다. 정신없이 시끄러운 틈을 타서 몰래 방으로 올라와 일찍 누웠다. 뉴욕에서 동행을 구하는 건, 좀 더 신중해야겠다며 다짐한 채로 눈을 감았다. 잠이 슬슬 오려는 순간, 방문이 벌컥 열렸다.
“언니. 왜 벌써 누워요. 언니 없어서 저희도 일찍 올라왔어요. 우리끼리 놀아요.”
내가 파티에 큰 역할을 했다는 뿌듯함에 일어났다. 그녀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빠르게 친해지고 싶은 경우, 대화 주제는 2가지다. 뒷담화 혹은 섹스. 숙소 사장님을 신나게 욕하고 소재가 고갈되었는지 바로 각자의 침대 취향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삼인방의 취향을 들으면서 하품이 끊임없이 나왔다. 지루했다. 내가 왜 이 사람들의 취향까지 잠을 참아가며 들어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그래도 먼저 자겠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남을 위해 천근만근인 몸을 일으켜 앉아있는 나를 보며 아직 스스로 지키는 방법을 체득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동행을 구하지 않기로 했다. 뉴욕에서만큼은 초면인 동행을 위해 맞추거나 참기 싫었다. 차라리 심심하고 말자.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도슨트 투어를 같이 신청한 한국인 남녀가 있었다. 같이 있는 기류만으로 어색함이 전해졌다. 단박에 뉴욕에서 처음 만난 동행임을 알았다. 말도 섞지 않고 어색한 채로 박물관을 구경하다가 서로의 사진을 간간이 찍어주었다. 가끔 하는 대화도 단답형으로 뚝뚝 끊겼다. 그들은 각자의 경계선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박물관을 구경했다. 그 경계선이 일상에서 종종 생각난다. 어색한 만남에서 끊기지 않는 대화를 위해 나를 과하게 작동시킬 때면 그 경계선이 필요했다. 도슨트 투어를 마친 후, 그들은 쿨하게 헤어졌을지 아니면 다음 일정을 또 기약했을지 궁금했다. 내 눈에는 불편해 보였지만 정작 본인들은 편안했을지도 모르니깐.
전주의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눈 뜨자마자 짐을 챙겼다. 전날 밤, 삼인방이 내일 점심도 같이 먹자며 제안했다. 역시나 거절하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해방되지 못한다며 죄절하던 와중에 남자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일 아침에 데리러 갈게.’
할렐루야. 아직 꿈나라 중인 그녀들에게 짧은 인사를 남기고 숙소를 떠났다. 전주에서 대구로 돌아오는 차에서 남자친구에게 1박 2일 동안 있었던 일을 쫑알쫑알 이야기하느라 3시간이 금방 흘렀다. 오랜만에 발언권이 뺏긴 남자친구가 말했다.
“1박 2일 동안 외로웠구나.”
"<(재)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 2024년 대구 특화 출판산업 육성지원 사업>에 선정·지원 받아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