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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심 Aug 07. 2024

스스로 비추는 일

추석 마지막 날,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명절마다 뉴스에서 꽉 막힌 고속도로 화면을 볼 때면 이상한 승리감에 젖곤 했다. 외갓집과 큰집 모두 대구에 있었기 때문에 차를 타고 20분이면 어디든 도착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귀성길이 짧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짧은 20분에도 엄마와 아빠는 죽자고도 싸웠으니, 만약 귀성길이 몇 시간이었다면 이미 이혼했을 것이다. 


외갓집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월세로 내놓았다. 그래서 외가 친척이 모일 장소가 없어져 명절 모임은 자연스레 해체했다. 반면에 큰집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사촌들마저도 결혼해서 각자의 가정 안에서 명절을 보내지만, 아빠네 형제들은 악착같이 제사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환갑이 훌쩍 넘은 큰아빠들과 아빠는 소파에서 정치를 주제로 여유로운 선비 행세를 하는 동안, 환갑인 큰엄마들과 엄마는 시린 손목과 쿡쿡 찌르는 허리 통증을 참아가며 제삿밥을 차리느라 주방에서 바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명절의 주요 장면이다. 사촌 중에서 유일하게 미혼인 나는 명절마다 큰집 방문으로 아빠와 옥신각신이었다. 큰아빠의 전형적인 잔소리는 언니들이 있을 땐, 억지웃음이라도 반응할 수 있었지만, 언니들이 결혼한 이후로는 혼자서 감내하기에는 역부족이라 큰집을 피해왔다. 아빠는 그걸 또 기가 막히게 눈치채곤 전화로 잔소리를 퍼부었다.   

   

"시집도 안 갔으면서 큰집에는 왜 안 가. 가족끼리 명절날이라도 인사해야지."   


아빠와 나는 가족 범위의 격차가 상당했다. 나는 친척과 가족을 구분하는 사람이었고, 아빠는 모두를 포함해 가족으로 칭했다. 이번 추석은 아빠의 잔소리가 비교적 짧았다. 뉴욕 일정과 추석이 아슬하게 맞물렸기 때문이었다. 추석이 끝나는 다음날 오전이 출국이었기 때문에 미리 서울에 올라와 있어야 했다. 의도치 않은 우연이었지만, 출발부터 기운이 좋았다. 명절을 이렇게 평탄하게 보내다니!      


서울에 미리 올라가겠다는 계획은 있었는데 그날이 하필 추석 마지막 귀경길이라는 생각까진 닿지 못했다. 기차는 당연히 매진이고, 고속버스도 자리가 가장 불편한 맨 뒷좌석 가운데만 남아있었다. 급정거하면 바로 고꾸라지기 딱 좋은 그 자리였다. 버스는 아기가 첫걸음마 떼듯이 기어갔다. 조금 간다 싶으면 멈추기를 반복했다. 어릴 적, 내가 뉴스를 보고 승리감에 도취되었던 꽉 막힌 고속도로가 버스 복도 끝에 쫙 펼쳐졌다. 잠도 잘 만큼 자고, 유튜브도 볼 만큼 봤지만 도착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자리도 어찌나 불편한지 자세를 이리저리 바꿔봐도 소용없었다. 4시간 후, 도착한다는 버스는 휴게소에 겨우 도착했다.      


저녁 9시가 넘는 시간에도 휴게소는 인산인해였다. 주차장에 지그재그로 세워져 있는 버스들은 <틀린 그림 찾기>처럼 비슷해 보였다. 평소에는 버스 번호판만 살짝 보고 치웠을 테지만, 여행 전날부터 위기를 만들고 싶지 않아 사진을 찍어 두었다. 담배만 잽싸게 피고 돌아와 보니, 틀린 그림 찾기 정도가 아니라 미로 수준으로 구분이 어려웠다. 버스에 겨우 들어왔는데 기사님이 말한 시간보다 20분이 지나도 출발하지 않았다. 바로 앞자리에 앉은 승객이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기사님은 출발해야 할지 아니면 기다려야 할지를 고민하는 와중에 오랜 탑승으로 지친 승객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출발 좀 합시다. 갈 길도 먼데.” “마냥 기다릴 순 없어요, 저희도 다 서울에 일정이 있어요.”     


사실, 나도 출발했으면 했다. 늦게 도착하는 만큼 늦게 잘 것이 뻔한데, 아침 출국에 영향을 받는 게 싫었다. 그러다 문득, 창밖을 슬쩍 보는데 한 남자가 옆에 주차된 버스에 타지도 않고 어슬렁거리는 걸 발견했다. 돌아오지 않은 그 승객이었다. 지금까지 버스를 못 찾아서 맨 앞에 주차된 차부터 들여다보고 있었다. 드디어 우리 버스 차례가 되었다.      


‘그래요. 당신이 탄 버스가 이거예요. 어서 올라오세요’     


애석하게도 남자는 우리 버스를 겉으로만 슬쩍 보더니 다음 차로 넘어갔다. 기사님은 시계를 보시더니, 결심했다는 듯이 운전석에 가서 시동을 걸었다. 나는 위기를 잘 보지 못한다. 드라마에 나오는 위기를 건너뛰며 보는 편이다. 이번 위기도 리모컨만 있다면 건너뛰기를 몇 번이나 눌렀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현실이다. 버스 문까지 닫혔다. 남자는 더 멀어졌다. 터질 듯한 답답함에 나도 모르게 외쳤다.      


“기사님!!!”     


모든 승객이 나를 일제히 돌아봤다. 소리를 뱉어졌고 시선은 모였다. 뭐라도 해야 했다. 운전석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지금 그분이 저기 앞에 계시는데 버스를 못 찾는 것 같아요. 제가 데려올게요. 기다려주세요.” “그럼 부탁합니다.”     


문이 다시 열렸다. 비장하게 내린 나는 남자에게 곧장 뛰었다. 남자도 당황해서 식은땀을 흘리며 종종걸음을 치고 있었다.      


“동서울 가는 버스 타셨죠? 버스 저기에 있어요. 제 자리 바로 앞에 타셔서 알아요.”   

  

남자는 낯선 나를 경계하지도 않고 잘 따라왔다. 버스로 돌아오는 길 내내 감사 인사를 받았을 때의 대답을 생각했다. 연기대상에서 수상소감문을 미리 준비하듯이 말이다. 가는 길도 심심한데 스몰토크라도 해볼까 아니면 간단하게 ‘괜찮습니다.’라고만 할까. 예상과는 다르게, 고맙다는 인사 대신에 남자가 사 온 과자를 씹어먹는 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 서운했다. 내가 얼마나 용기를 내서 구하러 간 것인지 남자는 모른다. (너무 씩씩하게 말을 걸었나.)      


하루는 친구와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횡단보도에서 아저씨가 쓰러져 있는 걸 발견했던 적이 있다. 늦은 밤이라 다가가는 것도 무서워 멀찍이 떨어져 아저씨를 불러봤다. 꿈틀 하긴 하지만, 술에 취한 건지 아니면 진짜 쓰러진 건지 구분이 어려웠다. 못 본 척하고 가면 좌회전하는 차량에 밟히고 말 것이란 건 확실했다. 구급차를 부르고 기다렸다. 구급대원이 도착하고 어디 아픈 곳이 없냐는 질문에 아저씨는 꺼져가는 소리로 말했다.     


“심장이 아파요.”     


구급차를 부른 건 좋은 판단이었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가려는 순간, 아저씨가 소리치기 시작했다.   

   

“씨발!!! 시끄러워!!!! 잠 좀 자게 조용해!!! 개새끼들아!!!”     


구급대원을 볼 낯이 없었다. 고급 인력을 낭비했다는 죄책감마저 들었다. 술주정뱅이가 괘씸해서 차에 그대로 깔려 <톰과 제리> 속 한 장면처럼 납작해지는 상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 버스 남자는 술주정뱅이만큼은 아니지만 조금은 괘씸해서 그대로 버스를 놓치는 상상으로 마음을 달랬다. 만약 출발하는 버스를 멈추지 않고, 남자를 모른 척했다면 버스를 놓치는 것 외에 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방관에 대한 몫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았을 것이다. 그게 흉터 딱지가 되어, 뉴욕을 여행하는 내내 만지작거렸을 것이다. 남자를 버스로 인도해온 이후에는 방관에 대한 몫은 없다. 오직 용기를 내서 남의 불행을 막았다는 기특함만 남았다. 그 기특함이 뉴욕여행에서 더 용기 내고 더 즐겁도록 해주었다. 선행은 타인을 도운 행동을 통해 스스로를 비출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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