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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심 Jul 27. 2024

여러분의 뉴욕은 어디인가요?

뉴욕 여행을 글로 쓰게 된 이유

뉴욕에서의 마지막을 여행기의 시작으로 쓸까 한다. 읽기도 전부터 결말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 찝찝하겠지만, 나는 드라마의 결말을 미리 알고 보는 편이다. 심지어 마지막 화부터 거꾸로 내려오며 보곤 한다. 결말을 알고 있는 드라마는 보는 내내 편안하다. 여러분이 내 여행기를 읽는 동안, 편안했으면 하기에 뉴욕의 마지막 날을 먼저 다뤄보고 싶다.      

약 3만 보를 걷고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털썩 앉았다. 룸메이트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지 방이 조용하다. 하긴, 저녁 8시면 귀가하기에는 이른 시간이지. 3만 보가 마지노선이었다. 숙소와 가까운 맥주펍이라도 가고 싶었지만, 통증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발바닥은 불나기 일보 직전이었다. 왼쪽 양말을 벗자 커다란 물집 4개와 눈이 마주쳤다. 뒤꿈치와 새끼발가락에 각각 1개씩, 엄지발가락에 2개. 발에 열매가 달렸다면 이런 비주얼이려나. 발바닥은 그만 걸으라고 화내다 못해 열꽃을 폈다. 손가락으로 물집을 톡톡 건드리며, 발바닥을 살살 달랬다.      

‘네가 이해해라. 내가 뉴욕 또 언제 와보겠어.’     


터트릴까 말까 고민하다 문득 눈가가 시큼해졌다. 예상치 못한 감정이었다. 뉴욕 여행의 난이도는 ‘순한 맛’이다. 대중교통도 잘되어 있고, 치한도 걱정 없고 길이 잘 되어 있다. 딱 하나 걸리는 게 있다면 ‘물가’였다. 무엇을 해도 비싼 나라에서 뽕 한번 제대로 뽑아보겠다고 혼자 이리저리 뛰어다닌 내가 안쓰러웠다. 그 결과, 발바닥이 장렬히 전사했다. 지하철 한번 타는데 3천 원이라니. 햄버거가 3만 원이라니. 6인 도미토리 숙소가 12만 원이라니. 캐리어에 짐을 챙기고 침대에 누워 7일간 찍은 사진과 영상을 돌려봤다. 남는 게 사진뿐이라는데, 사진이 별로 없었다. 정확히는 내가 나온 사진이 없었다. 그러면 나는 뉴욕 여행으로 무엇을 남겼나. 무엇을 위해 뉴욕에서 500만 원을 일주일 만에 써버렸나.     

 

책 <그냥, 사람>의 홍은전 작가가 프롤로그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40일 동안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걷고 종착지에 도착했을 때, 오히려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순례자의 길에는 화살표가 있어서 그대로 걸으면 되지만, 종착지에는 화살표가 없었다. 종착지에 도착했다고 자축하는 외국인들 사이에서 작가는 오히려 두렵고 막막했다. 그 감정을 뉴욕을 떠나기 직전에 정확하게 내 몸을 관통했다. 회사가 힘들거나 지루한 일상이 참을 수 없을 때면 뉴욕 여행을 떠올리며 준비하고 계획했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회복하곤 했다. 그게 화살표 역할을 했던 셈이다.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뉴욕 전의 일상을 그대로 살 텐데, 화살표가 있긴 할까.    

 

잠이 쏟아져도 짐을 챙겼다. 귀국행 비행기가 아침에 출발하기 때문에 짐을 미리 챙겨둬야 했다. 그러다 여행 중에 한 번도 꺼내지 않은 아이패드를 발견했다. 틈틈이 글 쓰며 뉴욕을 기억하겠다고 터질 것 같은 캐리어에 욱여넣은 아이패드였다. 짐이 무거워 숙소에 두거나, 숙소에서는 씻고 바로 누워 자느라 한 번도 활용하지 못했다. 글 쓰고 싶은 사람에게 남는 건, 글밖에 없겠다.     


한국에 돌아와 지인들에게 뉴욕 여행기를 써서 메일로 보냈다. 누가 시켜서 쓴 것도 아닌데 열심히 썼다. 퇴근할 시간이 지나도 야근하는 척하며 글을 썼다. 집에 도착하면 새벽 1시는 넘었다. 물론 피곤했다. 피곤해도 회사 일처럼 갈린다는 기분이 아니었다. 드디어 내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활력이 돌았다. 뉴욕 여행으로 어떤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지 치열하게 고민하며 썼다. 그런 과정이 모두 나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었다. 글만큼은 욕심이 많고, 대충이란 법이 없구나.      


지금 쓰는 뉴욕의 이야기는 그때 썼던 글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과정까지 확장된 버전이다. 뉴욕으로 시작해 삶으로 끝나는 이야기. 즉, 뉴욕 여행을 권장하는 글이 아니다. 여행도 권장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뉴욕 이후로 나홀로 여행을 떠나본 적이 없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또다시 글쓰기를 다짐하게 된 이야기다. 그걸 뉴욕 여행을 통해서 말하고자 한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일을 찾게 되는 무언가라면 무엇이든 좋다. 여러분의 뉴욕은 어디인가? 







"<(재)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 2024년 대구 특화 출판산업 육성지원 사업>에 선정·지원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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