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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심 Sep 29. 2024

탱크톱은 기세다

자유로운 옷이 날개

캐리어에서 야심 차게 준비한 옷을 꺼냈다. 옷장을 통틀어 원단이 가장 적게 든 옷이다. 어깨끈 없이 가슴과 배만 겨우 가려주는 ‘탱크톱’이다. 뉴욕 여행을 위해 유일하게 장만한 옷이다. 짐을 싸면서 남자친구에게 옷을 보여주자 강아지 옷을 왜 샀냐고 놀렸다. 그럴 만도 한 게 입기 전에는 크기가 손바닥만 하다. 옷이 널브러져 있을 때, 헤어밴드로 착각할 수 있다. 스판기가 상당해서 입으면 쭉 늘어남과 동시에 몸에 착 달라붙는다. 가슴 쪽에는 어깨끈이 없이 뛰어다녀도 흘러내리지 않게 더 강력한 고무 밴딩이 되어 있다. 집에서 틈만 나면, 탱크톱을 입고 거울 앞에서 요리조리 살펴봤다. 뉴욕의 자유 여신상 앞에서 이 옷을 입고 사진 찍는 모습을 상상하니 더 콩닥거렸다. 

여행을 시작하는 10월이 되면서 출국 전날까지 뉴욕날씨를 주식처럼 들여다봐야 했다. 쌀쌀해지면서 경량패딩을 입는 뉴요커 사진이 종종 SNS에 올라왔다. 탱크톱의 기회가 날아가나 싶다가도 다음날에는 민소매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진들이 발견되었다. 종잡을 수 없는 10월의 날씨에 여름과 가을옷을 모두 챙겨야 했다. 내 캐리어에는 탱크톱부터 기모 맨투맨까지 빈틈없이 꽉 찼다.      

허드슨강을 따라 배를 타고 뉴욕의 랜드마크를 투어 하는 날, 날씨가 깨끗했다. 구름 한 점 없이 햇볕이 내리쬐면서도 가을 공기가 있어 시원했다. 드디어 탱크톱의 날이 밝은 것이다. 숙소 거울 앞에서 몇 번이나 점검했는지 모르겠다. 배가 나오진 않았는지, 겨드랑이 제모는 깨끗하게 되었는지, 등에 여드름이 나진 않았는지 등. 저녁 되면 추워지니, 얇은 셔츠도 함께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다. 나는 ‘자유로운’ 옷이 날개라고 말하고 싶다. 주체적인 선택권이 날 해방시켰다. 일상으로부터 놓인 기분이었다. 뉴요커들 사이에서는 유행도 없고, 퍼스널 코디도 없었다. 각자의 개성대로, 각자가 편한 대로 입었다. 투어 할 선착장으로 가는 길에서 긴치마를 입은 남성을 보았다. 성큼한 걸음걸이에서 자신감을 읽을 수 있었다. 크루즈 배에서는 영화 <가위손>과 <유령신부>의 주인공을 오마주한 듯한 의상과 화장을 한 남성도 있었다. 호리호리하고 긴 체격에 해골이 잔뜩 그려진 검은 티를 입고 있었다. 삐쭉 뻗어있는 머리카락과 하얀 얼굴, 그리고 새카만 입술화장이 눈에 띄었다. 신기했지만, 빤히 쳐다보지 않기 위해 애썼다. 레깅스 입은 여성은 선착장 주위를 조깅하기도 했다. 나의 탱크톱은 그들에게 특별한 게 아니었다. 내가 입은 옷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더 편안하게 자유로웠다. 


집에 수두룩하게 쌓여있는 옷들을 더 가져오지 못한 게 아쉬웠다. 종아리 근육이 돋보인다고 입지 못했던 원피스, 팔뚝 살이 흔들려서 서랍 깊숙이 넣어둔 민소매 블라우스, 피부가 노랗게 뜨는 개나리 카디건 등. 문득, 한국에서 주로 어떤 옷을 입었는지 반추했다. 대부분이 튀지 않기 위한 옷들이었다. 검정 슬랙스, 무채색 티셔츠에 소심하게 가방이라도 색다르게 메고 싶어 실버나 레드 가방을 많이 들었다. 그리고 살을 최대한 가렸다. 평균적인 체형이지만 계단 올라가면 허벅지 뒷살이 보일까 봐 긴 바지 위주로 입었다. 사실, 그건 내가 입고 싶은 옷들이 아니었다. 철저히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옷들이었다.      


MBC <나 혼자 산다>에서 박나래의 빨간 비키니가 이슈 된 적이 있었다. 150cm의 키에 통통했던 박나래는 카메라 앞에서 과감하게 빨간 비키니를 선보였다. 그리고 바다에 거침없이 들어가 수영하고 모래사장에서 도도한 자세로 샴페인을 즐기는 장면에 나는 환호했다. 박나래가 인터뷰에서 남긴 명언은 유행이 되었다.   

   

“비키니는 다 필요 없고, 기세입니다.”


간지러운데 손이 닿지 않아서 긁지 못한 부분을 효도 손으로 박박 긁어주는 기분이었다. 뉴욕은 이런 효도 손이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다만, 예외였던 영역이 있었다. 하루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구경하고 굿즈샵에서 모자를 샀다. 여러 가지 색이 있었는데, 평소에 빨간색으로 포인트 주기를 좋아해서 빨간색을 골랐다. 빨간 모자는 의도대로 마지막 날에 입었던 심심한 의상에 좋은 포인트가 되었다.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자, 친구 명태에게 메시지가 왔다.      


“너 그거 쓰고, 갑자기 백인들이 말 많이 걸지 않았어?”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자, 명태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색이 빨간색이라고 말했다. 명태도 똑같은 모자를 쓰고 맨해튼을 걸었을 때, 그날따라 백인들이 친절하고 말을 많이 걸었다고 한다. 뉴욕은 색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가족들과의 채팅방에도 사진을 올리자, 아빠가 전화했다.      


“모자가 마음에 쏙 든다. 올 때 기념품으로 하나 사와.”     


지구 어디에서도 원색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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