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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심 Sep 27. 2024

마약으로 보는 뉴욕의 위상

여행자는 여행지에서의 기억으로 먹고산다. 생계형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환상이 덕지덕지 붙는다. 5박 7일간의 짧은 여행이지만 콩깍지가 제대로 꼈다. 지인들이 뉴욕 여행을 물어보면 1년은 살아본 사람처럼 의기양양하게 추천했다.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뉴욕이 나타나면 쉼 없이 아는 척한다. 실제로 뉴욕은 환상을 가지기에 최적의 나라다. 세계 각국의 금융업자들에겐 월스트리트가, 예술가들에겐 브루클린이, 뮤지컬 배우들에겐 브로드웨이가 로망일 테다. 각종 업계의 정상을 상징하는 명소들이 많다. 나도 로컬 서점을 구경하며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하는 장면을 몇 번이나 상상했는지 모르겠다. 


뉴욕의 자부심은 이런 명소로부터 나온다. 조금이라도 불평하면 뉴요커들은 한마디로 가볍게 받아친다.      


“this is Newyork.”     


‘여기 뉴욕이잖아. 못 참겠다면 떠나도 좋아’라는 의미가 내포된 말이다. 하루는 같은 방을 쓴 올리에게 한국보다 물가가 2배 이상으로 비싸다며 가볍게 불평했었다. 올리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This is Newyork.” 외에 어떤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뉴욕을 찬양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턱 걸리는 부분이 있다.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는 뉴욕은 위상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를 묻는다면, 쉽게 대답할 수 없다.      


맨해튼 냄새는 유쾌하진 않다. 먼지와 곰팡이, 쓰레기 등 부정적인 요소들이 한데 섞인 악취가 어딜 가든 은은하게 풍겨온다. 그중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가진 냄새가 있다. 타이어처럼 큰 고무를 태우는 냄새 같으면서도 한방 찜질 냄새 같기도 하다. 가끔은 냄새가 가시로 변신해, 머리를 푹푹 찔러 두통을 일으킨다. 이미 뉴욕을 다녀간 사람들도 궁금했는지, 포털사이트에 뉴욕만 검색해도 ‘냄새’ 키워드가 자연스레 붙었다. 놀라지 마시라. 이 악취의 정체는 ‘대마초’다.     

뉴스 보도로만 보던 마약을 뉴욕에서는 담배만큼이나 기호식품으로 취급한다. 맨해튼 거리에는 대마초 공인 판매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가게 앞에 ‘마약과 전쟁을 하지 말고, 사랑이나 하라.’는 광고문구까지 붙어 있다. 심지어 마약으로 낸 수익 일부를 에이즈 환자를 위해 기부하는 비영리단체도 있다. 소비자의 심리적 장벽을 낮추기 위한 전략이다. 더 놀라운 건, 뉴욕이 대마초를 합법화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21년 3월부터 21세 이상의 성인이라면 개인적인 목적으로 최대 3온스의 대마초 꽃, 또는 최대 24g의 농축 대마초를 흡연할 수 있게 법이 완화되었다.      


뉴욕은 오랫동안 걸어 잠근 마약법을 왜 풀었을까? 정답은 자본주의에 있다. 바로 옆 뉴저지주가 대마초를 허용하면서 뉴욕도 질세라 냅다 합법화해 버린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대마초 판매금에서 9%의 세금을, 산하 지방자치단체는 4%의 추가 세금을 벌 수 있다. 합법화했을 당시, 뉴욕주가 예상했던 대마초 수익은 한국 돈으로 3,000억 원이었다.


하지만, 대마초 합법화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처사다. 대마초와 함께 불법 마약 거래까지 급증했다. 대마초 흡연을 시작한 사람은 더 강한 자극을 원한다. 그래서 ‘좀비 마약’이라 불리는 펜타닐까지 불법 거래되고 있다. ‘좀비 마약’은 펜타닐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수식어였다. 조스 피자집(Joe’s Pizza)에서 나오던 길이었다. 대기 줄이 가게를 벗어나 골목까지 이어질 정도로 손님들이 많았다. 골목 모퉁이에서 흰 비닐봉지를 든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할아버지는 갓 태어난 망아지처럼 쓰러질 듯 말 듯 아슬하게 가게로 걸어왔다. 야외 테이블에 털썩 기댄 후, 고개를 푹 숙이곤 끊임없이 비틀거렸다. 그때, 어떤 아프리칸 아저씨가 할아버지와 같은 걸음으로 다가왔다. 둘은 비틀거리며 봉지와 무언가를 주고받더니, 사이좋게 팔에 주사를 꽂았다. 더 충격적인 건,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아무도 그들을 의식조차 하지 않았다. 커피 한잔 하는 사람들처럼 하나의 배경으로 좀비들을 여겼다.     


한국도 올해부터 ‘마약 청정권’이라는 타이틀이 무너졌다. 대마초는 물론, 펜타닐, 필로폰까지 종류별로 뉴스에 보도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마약을 체내에 숨겨 운반하는 ‘바디패커’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적발되었다. 국내에 마약이 유입되는 그 시작점에는 뉴욕과 같은 자본주의에 의한 마약 합법화다. 합법 국가에서 유통되는 마약은 해외직구를 통해 국내에도 유입되고 있다.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과는 반대로 뉴욕은 위드 드러그(With Drug)를 선포했다. 이 지점에서 뉴욕이 돈 벌 궁리만 하는 무책임한 기업의 이미지와 겹쳐 보인다.   


“This is Newyork.” 한 문장으로 모든 게 설명되는 뉴욕은 이 위상만큼의 책임을 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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