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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심 Sep 18. 2024

뉴욕의 백종원을 찾아서

뉴욕의 식문화 탐방기

비 내리는 뉴욕의 마지막 날, 모든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가는 길이었다. 뉴욕의 콤콤한 냄새를 뚫고 어디선가 보통의 치즈를 넘어선 맛있는 냄새가 흘러나왔다. 그저 그랬던 배가 고소한 치즈 냄새 한 번에 출출해졌다. 이건 꼭 먹어야겠다. 냄새의 출처는 골목 모퉁이에 있는 빨간 간판의 피자집이었다. 골목에서 유일하게 밝은 조스 피자(Joe’s Pizza)는 사실, 여행 전부터 지도에 따로 표기해 둔 맛집이었다. 고민 없이, 바로 들어선 식당은 아담했다. 테이블도 없이, 창가에 서서 먹어야 하는 작은 공간만 있었다. 주문하러 간 계산대 옆에는 유리 케이스 안에는 생경한 피자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계산대 앞에서 메뉴판을 보고 있는 사이, 내 뒤로 줄이 길어졌다. (신기하게도, 한산했던 가게들이 내가 들어가면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주문이 느리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손님을 몰고 오는 행운의 여행객으로 긍정 해석하기로 했다.) 대기줄이 가게 밖까지 이어지자, 초조한 마음에 가장 기본적인 치즈 피자 한 조각을 주문했다. 주문이 들어가면 유리 진열대에 있는 피자를 삽으로 옮겨 화덕에서 다시 구워주는 방식이었다. 납작하고 토핑이 전혀 없는 피자 조각이 화덕으로 옮겨졌다. 예상과 다른 비주얼이었다. 이번 여행은 마지막까지 먹는 운이 따라주지 않는구나.      

여행 첫날, 뉴욕의 첫 식당으로 베이글 샌드위치 가게인 ‘에싸 베이글(Ess-a-Bagel)’을 들렸다. 블로거가 추천한 데로 연어 베이글을 주문했다. 가격은 베이글 주제에 20달러가 넘었다. 포장지에 싸인 음식을 받았을 때, 베이글이 아니라 봉구스 밥버거가 아닌지 의심했다. 너무 두껍고 묵직했기 때문이었다. 입을 쩍 벌려도 베이글이 한입에 들어오지 않는 두께였다. 뉴욕에서의 첫 음식에다가 비행기에 내려서 아무것도 먹지 못해 군침이 돌았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한입 베어 물었다. 애석하게도 빵은 푸석하고 크림치즈는 충격적으로 짜고 케이퍼 피클의 시큼함은 지금 생각해도 침샘이 시릴 정도다. 양은 어찌나 많던지, 점심과 저녁으로 나눠 먹어도 남았다. 뉴욕 음식은 이런 식이었다. 2인분 같은 1인분을 3인분 가격이었기 때문에 지갑이 납작해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매번 끼니마다, 오늘의 마지막 식사일 수도 있겠다는 각오로 신중해야 했다. 한 끼가 맛없으면, 그날의 음식 운은 꽝이었다. 


화덕에서 꺼낸 피자를 받아 창가에 앉았다. 다시 구워도 비주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대학생 시절에 많이 먹었던 가성비 피자와 겹쳐 보였다. 도우와 토핑의 부족을 트럭 바퀴만큼이나 큰 사이즈로 가려버린 그 피자. 마지막 날이지만, 무의식적으로 가장 싼 피자를 고른 가성비 습관이 한탄스러웠다. 속으로 간절히 기도하며 한입 먹었다.      


‘제발 맛있어라. 제발 맛있어라.’     


세상에. 이탈리아 작은 마을에서 최소 60년 이상 피자를 연구해 온 장인의 맛이었다. 이 얇은 피자에 치즈가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먹을 때마다 쭉 늘어졌다. 도우까지 간이 되어 있어, 피자 꽁지까지 모조리 먹어버렸다. 다른 피자를 먹어보고 싶었지만, 이미 줄이 가게를 넘어서 골목 코너까지 이어진 상태라 포기해야 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로, 피자 맛을 곱씹으며 숙소로 돌아갔다.     

 

뉴욕을 돌아다니며, Joe로 시작하는 식당과 가게를 많이 봤다. 친구들 선물을 사러 갔던 트레이더 조스(Trader Joe’s)부터 인생 피자를 먹은 조스피자(Joe‘s pizza), 조 커피(Joe coffee)까지 하나같이 손님들로 가게가 북적거렸다. 혹시 한국에 백종원이 있듯이 뉴욕의 외식업을 휘어잡고 있는 인물이 Joe가 아닐는지 궁금했다. 평소에는 궁금증에서 끝낼 나였겠지만, 뉴욕만큼은 더 나아가고 싶었다. 여행에 시각적인 충족감도 있겠지만, 지적인 충족감도 필요하다. 시각적인 충족감은 뉴욕이 보여주는 만큼 여행하는 것이라면, 지적인 충족감은 능동적인 여행자로 변신시켜 준다. 뉴욕에서 유일하게 말이 통한 현지인, 공항 셔틀 기사님에게 뉴욕의 백종원인 Joe에 대해 물었다. 기사님은 아무도 묻지 않은 부분이라며 놀라워했다.    

  

“그렇네요. 저도 딱히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아마 3명 다 다른 사람일 겁니다. Joe’s Pizza는 실제로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오신 분이 연 가게라고 알고 있거든요.”

“어쩐지 피자가 예사롭지 않았어요. 근데 어떻게 세 명 다 Joe일 수 있죠?”

“한국에서 ‘지은’이라는 이름이 흔했듯이, 뉴욕에서도 ‘Joe’라는 이름이 흔했던 시절이 있었어요.”  

   

뉴욕에서 백종원을 찾은 줄 알았더니, ‘지은’을 찾은 셈이었다. 백종원이 있기에는 뉴욕의 음식은 전반적으로 대중적이지 않다. 타깃이 확실했다. 비건과 건강음료, 자극적인 맛, 굉장한 양 등 평균적이지 않았다. 세입도 먹지 못하고 버려야 했던 건강주스를 생각하면,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진다. 시럽 한 방울 섞지 않고 온갖 풀과 레몬즙만으로 짜낸 음료는 충격적으로 떫었다. 그래도 건강주스 가게는 스포츠웨어를 입은 뉴요커로 문전성시였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뉴욕 땅에 대중적이지 않은 맛도 살아남을 수 있구나. 나는 대중성과 자본력이 비례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비주류에 포함되는 비건과 예술, 가치관이 살아남으려면 외곽으로 빠지는 방법밖에 없다고 여겼다. 뉴욕을 떠올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겠다. 어떤 방법인지는 모르겠으나, 비주류의 밥벌이를 가진 사람으로서 용기를 얻었다. 


"<(재)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 2024년 대구 특화 출판산업 육성지원 사업>에 선정·지원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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