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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야 Apr 01. 2024

철수야 안녕 영희야 안녕 우리 같이 놀자.

EXIT9

EXIT 9. 철수야 안녕 영희야 안녕 우리 같이 놀자 

옆집 철수와 영희, 비교가 낳은 불행


도덕 교과서 1-1


교과서에 등장하던 인물 철수와 영희. 

철수와 영희, 그리고 바둑이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48년 국어 교과서에 처음 등장했다. 

이후 1987년까지 철수와 영희는 교과서에 등장하는 대표적 인물로

 그 시대를 지나온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강렬하게 자리 잡고 있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녔던 당시 교과서는 슬기로운 생활, 바른 생활 등의 정겨운 이름이었고, 

이 책 표지와 중간 삽화마다 철수와 영희가 등장했다. 정말 바르고 훌륭한 아이 캐릭터였다. 



The Text Book (Chulsoo & Younghee) p31 11x14 Inch Lamda Print 2006

[출처]교과서 : 철수와 영희 - 오석근 개인전 (아트스페이스 휴)|


철수와 영희 캐릭터는 당시 모두가 사랑하던 캐릭터였다.

그들이 교과서에서 사라진 후로도 

영희는 <오징어 게임> 속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고, 

2021년 천재교과서 유튜브에서 공로상을 받는 캐릭터로도 등장했다.

사진작가 오석근님은 <교과서 철수와 영희> 전시회를 통해 철수와 영희 탈을 쓴 인물들의 일탈을 그렸다. 

교과서 밖을 나온 사진 속 철수와 영희는 정체성 혼란과 

당시 음울했던 시대상에 대한 풍자를 보여주는 듯 했다. 

지금 들어보면 촌스러운 이름이나 정감 가는 추억의 캐릭터였다.



아주 오래전 회사 동기들과 술을 마실 때였다.

언론고시 준비생들이었던 우리가 회사 채용 절차 6차 전형을 막 통과한 후였다.

최종 합격이 된 줄 알았던 우리는 2개월의 인턴십 기간 후 

또다시 우리 중 한 명이 탈락될 수도 있다는 비보를 들었다.

방송사 시험을 준비했던 지리멸렬했던 기간을 지나온 우리들은 또다시 낙심할 수밖에 없었다. 

최종 합격자 중 한 명이 2개월 후 다시 언론고시생 신분으로 돌아간다니

이보다 잔인한 채용절차가 어딨냐며 술을 마시던 우리들은 분노했었다.

살아남기 위해 끝없이 동기가 아닌, 동기로 살아야 하는 잔인한 2개월이었다. 


술을 마시던 동기 하나가 불현듯 “철수, 영희” 담론을 꺼냈다. 

술에 취해 논리적이지 않았지만 우리의 모든 불행이 모두 교과서의 “철수와 영희” 때문이라 이야기했다.

이건 또 무슨 해괴한 담론인가. 취해가던 나의 귀가 번쩍 뜨였다.

우린 어릴 때부터 너무나 바르고 슬기로운 생활을 하는 엄친아 철수와 영희에게 익숙해져 있다. 

교과서 속 철수와 영희는 공부와 운동을 잘하고 심지어 교우 관계까지 완벽한, 세상에 없을 캐릭터이다.

그런 캐릭터가 어린 우리들에게 완벽을 강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철수와 영희가 되기 위해 살아왔고, 낙오자는 옆집 철수와 영희를 부러워하며 루저가 되었다. 


명문대를 나온 동기는 자기가 최선을 다해 공부했음에도

강남 8학군 자신의 부모는 매일 옆집 철수와 영희 이야기를 하며 자신을 채찍질했다고 말했다. 

행여나 자신이 마지막 전형에서 떨어져 결국 불합격한다면 

자신은 또 옆집 철수와 영희를 이기지 못한 루저로 불릴 것만 같다는 한탄을 한 후 완전히 취해 뻗어버렸다. 

누가 봐도 훌륭한 스펙을 가졌지만 자존감이 낮았던 동기였다. 



잔인했던 2개월은 지나갔다. 

철수 영희 담론을 이야기한 동기 대신 다른 동기 한 명이 진짜 탈락했다. 

남겨진 우리들은 다시 철수와 영희가 되어 경쟁하고 살아남았다.

그리고 술자리에서 불만을 토로했던 동기는 

얼마 후 힘들게 들어온 회사를 관두고 아예 다른 분야로 떠나버렸다. 



UN 산하 자문기관인 SDSN의 2023년 세계행복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57위로 나타났다.

사회비교 경향이 높을수록 자존감, 주관적 안녕감이 낮고 우울과 스트레스 등이 높다고 했다. 

코로나 팬데믹과 주식, 가상화폐 붐, 부동산 버블을 겪으면서

빈부 격차는 커졌고 상대적 박탈감은 가중되었다.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이 시작부터 포기하는 N포 세대를 낳았다. 

코로나 팬더믹으로 무기력해진 젊은 세대들은 성장 동력을 잃었고 개천의 용들이 사라졌다. 

금수저, 은수저, 엄친아 등은 SNS 등을 통해 그들만의 리그를 뽐내기 시작했다. 

부모로부터 대물림된 부가 예견된 “사회적 성공”을 낳았다. 



맥스 어만(Max Ehrmann)은 “The Desiderata of Happiness (1927)" 에서 

행복의 조건으로 비교는 금물임을 전하고 있다.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자만하거나 억울해하지 말기를 

세상에는 항상 나보다 위대하거나 더 못한 사람이 언제나 있거늘 

앞일을 계획하는 것만큼 지금까지 이뤄낸 것을 음미하기를...〞


"If you compare yourself with others, you may become vain or bitter,

for always there will be greater and and lessner persons than yourself. 

Enjoy your achievements as well as your plans."


스티브잡스 또한 스탠포드대 연설에서 다른 사람의 생각, 도그마에 빠지지 말라고 말했다.


“Don't be trapped by dogma.-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도그마-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빠지지 마세요.

타인의 잡음이 여러분들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세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를 따르는 것입니다. "



대한민국은 집단주의 문화의 성격을 갖고 있다. 

“한강의 기적”을 만들 때도 모두가 “함께 잘 살아보자”는 기조로 다같이 하나가 되어 악착같이 일했다.

 “공동체 문화”가 기저에 깔려 있었기에 가능했던 대한민국의 기적이었다. 

공동체 문화는 가까이서 함께 부대끼기에 자연스레 비교가 습관화된다.

최선을 다했지만 그 속에서 앞서나가는 “철수와 영희”와 

그 둘을 따라가는 나머지들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과 디오니게네스의 만남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알렉산더 대왕이 무소유의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디오니게네스 이야기를 듣고 그가 궁금해졌다. 

부러울 게 없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던 알렉산더 대왕은 직접 디오니게네스를 만났고, 

거리에서 햇볕을 쬐고 있던 그에게 다가가 자신이 소원을 들어줄 테니 소원을 말하라 했다.

무소유의 삶을 살던 디오니게네스의 소원이 궁금했던 왕에게 그는 이런 답을 했다.

“당신이 지금 내가 쬐고 있는 햇볕을 가리고 있으니 좀 비켜주시오.”

“욕심”과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자주 인용되는 일화이다. 

모든 불행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비롯된다.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비교가 무작정 나쁘다고 하지 않는 의견들도 있다.

상향비교와 하향 비교 중 자신보다 안 좋은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보고 위로를 받는 하향비교는

불행을 극복하는 또 다른 방식이라 주장하는 심리학자들도 있다. 

인간은 혼자 사는 동물이 아닌, 

관계 속에서 존재하기에 남의 삶이 내 눈에 잘 들어올 것은 어찌 보면 당연지사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의 자존감을 잃지 않는 것. 

철수와 영희가 아무리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살더라도

 그들은 그냥 교과서의 철수와 영희이기에 내 중심을 지키는 게 필요한 것이다. 



법정 스님이 말씀하셨다. 

“남하고 비교하지 말라. 모두 얼굴도 다르고 개성이 다르다.

나답게 살면 된다. 왜 삶의 조건이 다른 남과 나를 비교하는가,” 

어렵지만 시도해 볼만한 “나답게 살기”. 

“철수와 영희”는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또다른 우리의 모습이라고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슬기로운 생활에 첫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교과서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했다.

“철수야 안녕 영희야 안녕 우리 같이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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