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IT 8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It was many and many a year ago,
아주 오래오래전
In a kingdom by the sea,
바닷가 어느 왕국에
That a maiden there lived whom you may know
당신이 아는지도 모를 한 소녀가 살았지.
By the name of Annabel Lee;
그녀의 이름은 애너벨 리"
“아주 오래오래전 바닷가 어느 왕국에”의 아름답고 동화적인 문구로 시작되는 시
<애너밸 리>.
사랑했던 아내가 죽고, 슬픈 마음을 달랠 길 없어 한 구절 한 구절 써 내려간
<애너밸 리> 속엔 세상의 전부였던 아내를 사랑했던
비운의 천재 작가 “에드거 앨런 포”의 슬픔이 아름다운 잔혹 동화처럼 진하게 배어 있다.
에드거 앨런 포(1809-1849)
사랑과 죽음의 거장, 에드거 앨런 포.
어릴 적 세상을 떠난 배우 엄마. 자식을 두고 집을 나간 아버지에게 태어나
3살에 고아가 된 포는
양아버지 존 앨런에게 입양됐다.
자신을 입적하지도 않고, 아무런 유산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난
존 앨런이 남긴 것은
애드거 “앨런”이라는 이름뿐이었다.
“포의 작품에는 내가 쓰고 싶은 모든 것이 있다”-샤를 보들레르.
<검은 고양이>, <까마귀>, <어셔가의 몰락>, <애너밸 리> 등을 썼던 포는
사후 다른 작가들에게 천재 작가로 불릴 만큼
훌륭한 작품을 남겼으나
가난과 비극의 삶을 벗어나지 못한 작가였다.
가난과 고난 속에서 1835년 사촌인 버지니아 클렘과 결혼한
에드거 앨런 포는
진실로 버지니아 클렘을 사랑했고
가난에 시달리던 그녀가 1847년 결핵으로 요절하자
고통 속에 2년 후 열병으로 사망한다.
“비운의 천재작가.”
우울증, 도박, 마약, 가난과 고통, 사랑하는 사람들의 상실로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는
비극의 삶을 살았던 에드거 앨런 포.
그의 시와 소설을 보면 비극적인 그의 삶과 어두운 내면들이
면면히 드러나고 있다.
죽음. 공포, 감금. 살인 등으로 점철되는 기괴하고도
암울한 그의 글은
어둡지만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되고 있다.
현실은 고통스러운 삶이었지만
사후 그의 천재성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다.
뉴욕과 보스턴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미국 문학가들의 발자취를 연구하는 프로젝트로
미국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
브롱크스에는 에드거 앨런 포가 살았던
작은 Cottage오두막집이 있었다.
애너밸 리의 모티브가 된 그의 아내 “버지니아 클램”이
결핵으로 사망할 때까지 살았던 오두막이었다.
오두막은 단출했고 천장이 낮았던 오두막에 들어선 순간
포의 가난과 고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집 안엔 포가 글을 썼던 작은 의자와 책상이 있었고,
버지니아가 죽었던 작은 침대는
침대 머리맡 기둥 한쪽이 잘려나가고
바닥은 짚으로 채워져 있었다.
천장이 낮고 몇 가지의 작은 가구로 채워져 있던
그곳에서의 에드거 앨런 포와 버지니아 클램의
비참하고 가난했던 삶이 그대로 재현되는 듯했다.
“12월 한창 추울 때였는데, 클램은 불도 떼지 않은 방에서
지푸라기를 요삼아 누운 채
고양이를 가슴에 올려놓고 그 고양이의 체온에 기대어
숨을 쌕쌕 내쉬고 있었다.”
당시의 상황을 글로 남겼던 포를 통해
그들이 얼마나 가난했으며 고통스러웠는가를 체감할 수 있었다.
"For the moon never beams, without bringing me dreams
달도 내가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Of the beautiful Annabel Lee;
꿈을 꾸지 않으면 비치지 않네.
And the stars never rise, but I feel the bright eyes
별도 내가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Of the beautiful Annabel Lee;
빛나는 눈을 보지 않으면 떠오르지 않네.
And so, all the night-tide, I lie down by the side
그래서 나는 밤이 지새도록
Of my darling—my darling—my life and my bride,
나의 사랑, 나의 사랑, 나의 생명, 나의 신부 곁에 누워만 있네.
In her sepulchre there by the sea—
바닷가 그곳 그녀의 무덤에서─
In her tomb by the sounding sea.
파도 소리 들리는 바닷가 그녀의 무덤에서."
<애너밸 리>의 마지막 구절이다.
마지막 구절을 보면 자신이 정말 사랑했던
버지니아 클램이 죽고 얼마나 포가 슬퍼했는지 느낄 수 있다.
포는 버지니아를 진실로 사랑했지만
가난과 사랑받아 본 적 없던 유년시절로 인해 서툰 사랑을 했다 했다.
그래서 버지니아 세상을 떠난 후 누구보다 고통스러웠고
다시 살아갈 힘을 잃었다.
그녀가 떠나고 나서야 그는 그녀와의 사랑과 그리움을 그의 시에 녹아내며
그녀를 위한 추모의 시를 썼다.
살아생전 잘해주지 못한
자신의 사랑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이
매일 간절한 기도로 그의 일상을 지탱시키고 있었다.
예전 러시아 여행을 할 때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에는 렘브란트 1668년 그린 유명한 그림
“돌아온 탕아”가 있었다.
어느 그림보다 관람객들의 줄이 길었던 그 그림 앞에서
실물로 “돌아온 탕아”를 보았다.
단체 관광으로 온 외국인 관광객들과 가이드가
그림에 대한 설명을 하고 감상하고 있었다.
그림은 노년의 아버지가 방탕하게 살다 돌아온 초라한 몰골의 아들을
인자한 미소로 등을 두드리며 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초라한 아들의 신발은 하나가 벗겨지고
다른 하나는 낡아빠진 모습으로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안겨 있었다.
보잘것없는 차림과 굳은살이 박인 아들의 발이
얼마나 고단한 삶을 살아왔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늙은 아버지는 어머니와 같은 자애로움으로
아들을 말없이 안고 있었다.
돌아온 탕아, 렘브란트, 1661~1669년, 262 × 205cm, 에르미타주 박물관
복음서에 따르면 아들이 저 멀리 나타났을 때부터
아버지는
그를 알아보고 달려와 안아주었다고 한다.
나약했던 둘째 아들이 자신이 유산을 주면
탕진해 버릴 것을 알면서도
재산을 모조리 내준 아버지는
그런 아들이 모든 것을 다 잃고 돌아왔을 때
어떠한 말 없이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했다.
심지어 그가 거지가 되어
돌아올 것을 알고 있었던 아버지는
매일 밖으로 나가 돌아올 아들을 기다렸다 했다.
그림에 대한 해설을 듣던 난
문득 그림을 보고 눈물이 차올랐다.
자신이 번 소중한 유산을 다 탕진할 걸 알면서도
내어준 아버지는
분명 아들의 행복을 위해 매일 기도했을 것이다.
무조건적인 사랑이었다.
염낭거미는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몸을 먹여가며 자식을 키운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모든 걸 다 주고도
자식의 행복만을 기도한다.
가끔 우리가 나약해지거나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잊고 있는 게 있다.
분명 어디선가 누군가 반드시 날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괴팍했지만 한 여자만을 죽고 나서도
잊지 못했던 에드거 앨런 포는
그가 사랑했던 버지니아를 위해 죽는 그날까지
그녀를 그리워하는 시를 썼다.
그것은 그녀를 위한 그만의 추모와 기도의 방식이었다.
그의 글을 접한 후세의 사람들은 지독히도 불행했던 그가,
세상을 떠나 살고 있을 어딘가에서는
모든 불행을 잊고 행복하게 살고 있기를 염원한다.
“당신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
주님은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사랑으로 인도하시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내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약해진
나를 위해 항상 기도하고 있음을
우리는 종종 잊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