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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야 May 10. 2024

출판사 투고? 할까? 말까?

<나는 소아병동 터줏대감입니다> 출간기 

 “선생님, 안녕하세요.  

 <나는 소아병동 터줏대감입니다> 보내 주셔서 감사히 잘 읽어 보았습니다.  

 참신한 소재와 주제로 의미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다만 저희가 출간하는 방향과 다소 결이 다른 작품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래서 여러 의견이 오간 끝에 작품을 반려하기로 최종 결정하였습니다.   

 오래 기다려 주셨는데, 반가운 소식을 전해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모쪼록 좋은 출판사와 인연이 되어 작품이 빛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출판사에 관심 가져 주시고, 소중한 작품을 검토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건필하시길 바랍니다. “  

 
  

 결론부터 말하면 윗글은 출판사로부터 온 정성스러운 거절의 이메일이다.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을 하고 실제 완성하기까지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글쓰기는 힘든 상황에서 일종의 나만의 치유방법이었고  

 눈앞에 아파 입원해 있는 아이와의 현실은   

 매일 밤 정반대의 희망적인 판타지로 내게 다가와 줬기 때문이다.  

 드라마 아이템을 고민하던 내가 제작사 대표 선배님의 제안에   

 누구보다 잘할 수 있는 나의 이야기를 찾기 시작했고  

 결과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었기에 소설은 생각보다 빨리 마무리되었다,  

 소설을 쓰기 전 소아병동에 관한 에세이를 썼고

 거짓이 아닌 진솔한 일상이었기에   

 선배는 에세이가 좋다며 판타지를 가미한 소설로 가보잔 말씀을 하셨다.  


 내가 겪은 소아병동 이야기는 그야말로 다큐였고  

 실제 소아병동 이야기를 드라마화한다면은 

세팅 값부터 다른 판타지여야 했다.  

아픈 아이들이 

 각박한 현실, 아픔 속에서 성장하며 희망을 찾는 

소아병동 이야기는  

 분명 힐링이 필요한 현대인에게 

무엇보다 강한 공감과 울림, 힐링을 줄 것임이 분명했다.  

 단 전제 조건은   

 아픈 아이들을 지켜보는 것은 너무나도 고통스럽기에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아픔을 이겨내고 꿈과 희망을 찾는 이야기여야 했다.  

 내가 바라는 판타지, 소아병동의 문이 고통의 입구가 아닌  

 꿈을 이루고 희망이 존재하는 마법의 문이 되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쓰고자 했다.   


 
  “지옥에는 배고픈 사람 앞에 큰 그릇에 가득 담긴 음식이 있다. 

단, 1미터나 되는 긴 젓가락을 사용하는 것이 규칙이라 음식을 먹기란 쉽지 않다. 

어떻게 젓가락질을 ‘스킬업’하여도 음식을 전혀 집을 수 없다. 

그러므로 지옥은 일상이 분노로 가득 찬 쟁탈전이다.  

 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1미터 젓가락을 사용하는 것이 규칙이다.

 그런데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늘 배부른 채로 웃는 얼굴이다. 

왜냐하면 음식을 젓가락으로 집어 

서로의 입에 넣어주는 ‘서포트’를 주고받기 때문이다. 

- <스토리싱킹>, 간다마사노리 지음,“    


  

 공중파 회사에서 퇴사하자마자

 타제작사에서 준비했던 첫 아이템이 산부인과 드라마였다.  

 내가 입사한 당시는 실제로 드라마 PD 중엔 여자가 거의 없는 데다 

격무로 인해 임신과 출산을 선택한 연출이 드물었다. 

추측컨대 아이를 낳은 여자 드라마 PD 1호였을 나는, 

산부인과 드라마 프로젝트를 하게 됐을 때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중기유산과 시험관 출산. 

임신 기간 내내 임산부가 겪을 수 있는 온갖 위급한 상태. 

계속되는 하혈이 임신 말기까지 계속되고

 아이가 한 달 일찍 태어난 그날까지 매일매일이 응급 상황이었다.

 그때의 기억과 경험들이 오만했던 나를 다시 한번 넘어뜨린 경험이 되었고, 

내가 품고 있던 생명을 떠나보내고 지키는 일이

 그동안 내가 벼랑 끝에서 견뎌왔던 나의 일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또 다른 차원의 나를 성장시키는 것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산부인과에 이어 소아병동.  

 대부분 인생의 중요한 선택의 순간 

난 내가 주도적인 선택을 하며 삶의 선택들을 해왔다고 자부했건만

 아이를 갖고 태어나 아이가 아프게 된 상황부터 벌어진

내 인생의 삶은 정반대의 것이었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토네이도에 휩쓸려 정신을 차리고 보면

 또 다른 토네이도가 모든 것을 쓸고 가버리고, 

다시 정신을 차려 견디려 하면 저 멀리 무서운 기세로 다가오는 토네이도가 보였다.

 직업을 선택한 이후 나름의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고 자부해

 맷집 하나는 자신 있었던 내가 

아이가 아픈 순간만큼은 풍랑을 맞은 작은 돛단배처럼 휘청거렸다. 

이제 고통이 끝났으리라 굳건히 믿었던 순간들은 다시 시작되어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던 와중에

 난 나도 모르게 누구보다 소아병동 이야기를 하고 싶은 길로 향해 가고 있었다,  

 
  
 소설을 쓰고 나서 재밌는 경험을 하기 시작했다.  

 난 직업상 글을 선택하고 다듬는 사람이었지 

내 글이 선택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작가란 이름을 달고 평가를 받고 싶어졌다. 

소설을 업계 관계자 세 명에게 읽어달라 부탁했다. 

세 명 중 둘은 혹평을 했고 한 명은 펑펑 울었다며 호평을 했다. 

부족한 건 알았지만 이토록 양극단의 반응이라니. 

참고로 이 소설은 마케팅 타깃이 불분명한 작품이었다. 

아이들을 위한 성장소설 같지만 어른들을 위한 힐링 소설이기도 했다.

 내가 심사위원의 관점으로 보았다면 분명 타깃이 불분명하니 

주 타깃 독자층과 노선을 분명하게 다시 쓰란 혹평을 했을지도 모르는 소설이었다.

 의식의 흐름대로 빠르게 쓰인 소설이기에 

다 쓰고 나서 단점들이 심사위원적 관점으로 확연히 드러났다. 

드라마 아이템으로 숙성시키기 전 문득 출판사의 의견을 듣고 싶어졌다. 

그렇게 출판사 투고를 결심했다.


 딱 세 군데만 넣어 의견을 들어보자.

 출판사의 성향을 검토해 성장소설을 출간하는 규모가 큰 출판사 세 군데,

 그곳에 투고 메일을 보냈다. 

그들은 한 두 달가량 검토 후 결과를 알려주겠단 이메일을 회신해 왔다. 

한 두 달의 시간. 생각보다 투고하는 글들의 양이 많았던 걸까. 

아니면 대형 출판사의 검토 라인이 복잡해서일까. 

기다리는 입장이 되어 보니 한 두 달이라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작가의 입장이 되어보니 

그동안 지나쳐갔던 수많은 작가님들의 얼굴이 하나둘씩 머릿속을 지나갔다. 

작가들의 몸속엔 아마도 사리 하나씩은 있으리라.  


 시간이 흘러 세 군데 출판사의 “본 출판사의 출간하는 결과 다른”이라는

 정중하지만 완곡한 거절의 이메일을 받았다. 

출판사 투고를 위해 원고를 송부한 다음 날, 

제작사로부터 드라마화해 보자는 연락을 받았다. 

얼마큼의 시간이 흐를지 앞으로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간절한 바람이 있다면 소아병동 속에 박제되어 있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책 밖을 나와 푸른 하늘과 따스한 태양 아래에서

 맘껏 뛰어놀며 행복해하는 시간이 오기를...

그것 하나를 가슴에 지니고 있다면

 다음에 다가올 풍랑도 잘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아마도 인간이 가장 원하는 일들이 가장 할만한 가치가 있는 일들일 것이다.  

 The things that one most wants to do are the things

 that are probably most worth doing.  

 “위니프레드 홀트비” “Winifred Holt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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