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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야 May 24. 2024

출판사 설립 노하우

<나는 소아병동 터줏대감입니다> 소설 출간기 

출판사 설립 노하우      


많은 이들이 할 일을 미루는 이유는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심리학자들은 미루기는 시간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 관리의 문제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러분이 할 일을 미루고 있을 때 노력을 피하는 게 아니라 그 행동이 일으키는 불쾌한 감정을 피한다. 머지않아 여러분이 원하는 바를 추구하는 일조차 회피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만 말이다. 


- <히든 포텐셜>, 애덤 그랜트 지음-      


애덤 그랜트의 <히든 포텐셜>을 보면 미국의 영화배우이자 코미디언인 스티브 마틴에 관한 일화가 나온다. 재능이 없고 최악의 코미디언으로 불렸던 스티브 마틴은 글쓰기를 제일 싫어했다. 자기가 공연에서 할 농담을 쓰는 것도 싫어했던 그는 결국 참담한 실패 끝에 깨달았다. 자신이 코미디언으로 성공하려면 대본을 자신이 직접 모두 써야겠다고. 몇 년 동안 낮에는 TV 대본을 쓰고 밤에는 공연을 했던 그는 이후 글쓰기 실력이 늘며 말의 군더더기가 줄고, 재밌는 공연을 하게 되었다. 결국 그는 1970년대를 대표하는 코미디언이 되었다. 그의 성공 노하우는 자기가 가장 하고 싶지 않고 불편해했던 글쓰기를 용기 내 시작한 것이었다.      


난 운동 신경 제로에 기계맹, 컴맹이다. 재주도 없어 똥손에 무얼 배우든 배움의 속도가 늦다. 생긴 건 체력장 특급 같은 외모로 사람들이 오해하지만 체력장 시험,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불릴 때까지 바닥에서 꼬물거리며 수없이 허리를 튕기다 결국 단 한 번의 윗몸일으키기를 한 후 장렬히 전사하는 몹쓸 운동 신경을 갖고 태어났다. 타고난 음치인지라 지인들의 환호 속에 등 떠밀려 올라간 노래방 무대에서 한 소절만 부르기 시작하면 지인들은 절대 다시는 내게 노래를 시키지 않는다. 기계와 컴퓨터 보기를 돌같이 여겨 또래 중 가장 늦게까지 전화로 은행 계좌이체를 했던 나는 뭘 해도 늦고 어설프다. 그런 내가 기술과 테크닉, 예술과 센스가 가장 필요한 이 일을 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천운. 기계맹이 편집기를 다루고 촬영, 조명, 음향, 비디오, 종편 시스템을 익히기까지 유난히 느린 나는 여의도의 밤을 부여잡고 될 때까지 반복했다. 하기 싫은 일일수록 가장 먼저 하자. 낯설고 두려울수록 모두 도전해 볼 것. 될 때까지 하면 언젠가는 된다는 것. 그것이 거북이인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물론 아직도 거북이의 세상은 녹록지 않다.      



출판사에 대한 동경은 항상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 제일 좋아하는 게 책이었고, 그래서 책을 만드는 일에 대한 동경 또한 있었다. 소설을 다 쓰고 출판사를 차리겠다고 생각한 순간 출판사 설립 관련 자료들을 찾아봤다.  생각보다 시중에 출판사 설립 노하우를 담은 책들이 많이 있었고 알아보니 출판사 설립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주변에서 어떻게 출판사를 차렸냐고 물으면 우스갯소리로 27,000원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이건 물론 쑥스러움에 더 이상의 질문이 없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대답이지 절대 출판업계에 대한 폄하는 아니다. 다수의 직원을 고용하는 거대 출판사가 아닌, 1인 독립출판사를 차리는 건 생각보다 절차가 복잡하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무언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니어도, 출판사 설립은 누구나 조금의 용기와 책을 출간하겠다는 계획과 열정, 책임감이 있다면 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리고 싶었다. 출판사 설립 노하우라는 제목은 거창하지만 출판사 설립을 고민하시는 분이 있다면 참고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과정을 공유한다.      


1. 사무실 임대와 출판사 신고

먼저 어디에 출판사를 열 것인지 정한다. 출판사를 차리려면 당연히 사무실이 있어야 하기에 사무실을 임대하거나 비상주 오피스를 알아본다. 이것도 여의치 않으면 본인 집을 주소로 출판사 사무실을 정하면 된다. 사무실 임대계약서나 집일 경우는 등기부등본 혹은 전세계약서를 준비해 사무실 주소의 구청을 방문한다.    

 

2. 출판사 이름을 정한 후 출판사 신고확인증을 접수할 것

출판사 이름을 정한 후 같은 상호의 출판사가 있는지 문체부 홈페이지에서 검색을 해본다. 같은 이름의 출판사가 있으면 사용할 수 없기에 반드시 검색해 보길 바란다. 서류를 준비해 구청에 방문해 접수하면 며칠 후 승인 문자가 온다. 이후 구청에 27,000원을 납부한 후 “출판사 신고 확인증”을 받는다.     


3. 사업자 등록 내기

출판사 신고확인증을 들고 세무서를 방문한다. 인터넷 홈택스로도 신청 가능하다. 서류는 임차계약서, 출판사신고확인증을 준비하면 된다. 업태와 업종을 무엇으로 할 건지 미리 검색하고 준비해야 한다. 출판사 1가지만 해도 되고 전자 상거래를 넣어 여러 업종을 같이 해도 좋은데 그건 하기 나름이다. 출판업의 대분류는 “정보통신업”이고 업종 세부분류는 6가지로 자신이 출간한 도서의 종류에 따라 고르면 된다. 일반서적이나 학습서, 잡지 등의 분류로 나뉠 수 있다. 과세 종류는 일반이나 간이를 선택하면 되는데 출판사는 면세이기 때문에 다른 업종을 부가적으로 한다면 면세가 아닌 “일반”이나 “간이”사업자를 선택하면 된다. 세무서에 접수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사업자등록증이 나온다. 감개무량한 순간이다.      


4. 사업자 통장 만들기

마지막 단계는 사업자등록증을 가지고 은행에 가서 사업자 통장을 만들면 된다. 사업자 통장과 사업자 등록증이 생김으로 출판사 설립이 끝나는 것이다. 생각보다 간단한 과정에 놀랄 수도 있을 것이다.  사업자등록증을 발급받은 날 아이에게 보여주며 이제 너와 나의 이야기, 우리 소설을 발간할 것이라 했다. 그리고 그날 남편은 퇴근길에 내가 좋아하는 와인과 아이가 좋아하는 바나나 우유를 사 왔다. 엄마에게 좋은 일이 생겼다고 파티를 하자며 늦은 밤 야식을 준비한 우리는 여러 번 잔을 부딪치며 우리만의 파티를 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낼 것이라는 내 말을 아이가 정확하게 이해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아이는 바나나 우유 잔을 연신 부딪치며 건배사를 했다. 아이가 긴 입원을 끝내고 퇴원을 한 그날부터 우리 가족에겐 큰 변화가 생겼다.    

  

가끔 망각하기도 하지만 매사에 감사하고 일분일초가 소중했다. 아이가 시험을 잘 본 날, 숙제를 잘한 날, 단짝 친구가 생긴 날, 우리는 갖은 핑계를 대며 매일이 파티인 하루를 보냈다. 남편은 늦은 퇴근길 늘 꽉 찬 가방 속에 항상 아이의 간식 한 두 개씩을 넣고 퇴근했고 아이는 오늘은 아빠가 무슨 선물을 사 올까 기다리며 아빠를 기다렸다. 당연했던 일상들이 그토록 바라던 일상이 된 날부터 하루하루가 소중해졌다. 어린 나이 연이은 8번의 수술과 병원 생활이 트라우마가 되질 않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다행히도 아이는 아픈 기억을 잊어가고 있는 듯했다.     


얼마 전 아이가 학교에서 책을 읽고 내용을 요약하고 질문에 답하는 숙제를 받아왔다. 또래친구를 괴롭히는 개구쟁이 남자아이에 관한 이야기였고 아이가 답해야 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나를 괴롭힌 나쁜 사람을 만난 경험이 있나요?” 질문을 읽은 아이는 갑자기 울컥한 듯 연필에 감정을 담아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어린이 가슴에 막 수술을 한 선생님”      


생각지도 못한 포인트에 순간 할 말을 잃은 내게 항상 어른처럼 씩씩한 아이가 말을 했다. 감정이 올라온 듯 혼잣말로 크게 “어떻게 어린이한테 여덟 번이나 칼로 그렇게 아프게 수술을 해!!” 눈물이 맺히는 것 같았지만 울음을 삼켜내고 있는 아이가 뱉어낸 말이었다. 너무나 씩씩하고 용감한 나의 아이가 처음으로 뱉은 감정이었다. 잊어버린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예측하지 못한 지점에서 나는 다시 놀랐다. 힘든 수술을 하며 병원 생활을 누구보다 큰 어른처럼 씩씩하게 견디고 참아내던 아이였다. 아이의 상처가 다시 떠올랐다.      


지난주 일요일 아빠와 목욕탕에 다녀온 아이가 특유의 우렁차고 신이 난 목소리로 “엄마”를 외치며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왜 이렇게 신이 났을까. 목욕을 잘하고 왔냐고 묻는 내게 아이가 줄 게 있다며 손을 펴보라고 했다. 분명 빈 손으로 온 것 같았는데 손을 펴보라니 의아하긴 하지만 손을 폈다. 아이는 주먹을 쥐고 있는 작은 손을 펴 내게 무언가를 건넸다. 손을 펴보니 웬걸... 하얀색의 작은 들꽃이었다. 심쿵했다. 아이는 특유의 시크함으로 “엄마, 선물이에요. 내가 가져왔어요.”라고 말하며 냉장고로 사라졌다. 아빠의 작전인가 싶어 남편을 쳐다보니 모른 척 내게 “내가 시킨 거 아니야. 직접 한 거야.” 라며 같이 냉장고로 사라졌다. 둘은 뭐가 그리 신난 건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좋아했다.      



하얀색 작은 들꽃 두 송이에 웃음이 나왔다. 아프지 않았다면 몰랐을 행복이었다. 얼마 전 보름달이 크게 떴고 창문 틈으로 보름달을 본 아이가 큰 소리로 “엄마, 보름달 떴어요.”하며 창문 쪽으로 달려갔다. 병원에서도 보름달을 본 날이면 우린 항상 소원을 빌었다. 이제 더 이상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보름달에게 소원을 빌면 꼭 이뤄질 거라고 믿는 아이가 한동안 “건강하게 해 주세요”를 빌더니 오늘 병원에 입원한 동갑 아이 사진을 보며 마음 아파하는 날 보더니 보름달이 뜨면 꼭 그 아이를 위해 자신이 기도를 하겠노라는 말을 하며 잠이 들었다. 자신이 그 아이가 입원한 병원에 가서 꼭 휠체어를 밀어주고 친구가 되어 주겠다고 한참 동안 친구 걱정을 하다 잠이 든 라파엘. 아이는 그렇게 천사 같은 얼굴로 잠이 들었다.      


두려워말라. 그러면 곧 알게 되리라.

고통을 겪은 다음 강해지는 것이 얼마나 장엄한가를...


H, W. 롱펠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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