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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야 Jun 07. 2024

종이책 출간

<나는 소아병동 터줏대감입니다> 출간기 

“1990년대는 ‘긍정적인 사고’가 우리를 덮쳤던 시대다. 사실 긍정이란 개념은 꽤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약 1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긍정’을 ‘마인드 치료 운동’이라고 불렀는데, 당시 이를 믿었던 사람들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해악(害惡)과 질병의 원인은 정신적인 문제에 있다’고 생각했다. 부정적인 사고는 신을 부정하는 것이며 곧 죄악이라고 여겼고, 반대로 항상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는 사람은 편안해질 수 있고, 신체적으로도 건강해진다고 믿었다.”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 마티아스 뇔케     



“마티아스 뇔케”의 책을 여기까지 읽는다면 이 책은 긍정심리학에 관한 책일 것이라 예측할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책의 서두와는 달리 저자는 무조건적인 긍정 심리학은 위험한 것임을 이야기한다. 미국의 목회자이자 저술가 로버트 슐러는 청중들에게 불가능하다는 말을 영원히 지우라 했다. 또한 독일 사회 전반에 “안된다는 말은 없다”라는 구호가 보편화되었으며 “숙고하는 사람”이란 표현은 비꼬는 말로 자리 잡게 되었다.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란 책엔 또한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윌리엄 제임스는 긍정심리학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만일 당신이 건강, 권력, 성공 등 무엇이든 그에 대해 생각을 한다면 그 책임은 곧 당신에게 부여된다.” 이 말대로라면 아픈 것은 그 사람 잘못이 된다. 어떤 일에 실패한 사람은, 그 일이 성공하리라 확고하게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책에 나온 이 구절은 “불가능은 없다”라는 긍정 심리학을 뒤집는 표현이었다. 책의 서두부터 나의 철학과 정반대를 주장하는 논리에 흥미를 느꼈다. 최악의 상황에서 항상 최선을 생각해 온 나로서는 그가 주장하는 정답이 무엇일지 정말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는 무엇일까. 그는 그 무엇보다 성공의 근간에는 나를 낮추는 자세, “겸손”이 있다고 결론짓는다. 뭐든지 할 수 있고, 현재의 위기는 극복할 수 있다는 긍정심리학보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더 중요한 것은 “겸손”이다. 새로운 발상의 접근이었다.     


아이의 소아병동 생활 동안 시작된 글쓰기는 여러 가지 목적이 있었다. 1번은 글쓰기를 통한 치유, 2번은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바람에서 나온 판타지, 3번은 멈춰버린 본업에 대한 갈증. 이 세 가지였다. 어찌 됐든 슬픔 속에 희망이 담긴 소아병동의 판타지를 썼고 드라마 제작사에 공유한 후 전자책을 발간했다.  처음엔 전자책만 발간하려고 했다. 종이책을 잘 보지 않는 요즘 트렌드에 전자책만으로도 이러한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데는 충분하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출판사를 차리고 전자책을 발간하려다 보니 책 표지와 편집 등이 마음에 걸렸다. 내가 출판에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책 수준에 현저하게 못 미치는 디자인으로 책을 발간하고 싶진 않았다. 처음엔 부족하지만 내가 직업 책 표지를 만들 생각으로 이것저것 해봤지만 역시.. 영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많이 있는 크몽 사이트를 이용했다. 


가성비를 고려, 감각적인 디자인을 한, 개인 디자이너에게 표지와 내지 디자인을 맡겼다. 교열과 편집은 부족하지만 내가 했다. 처음엔 생각하는 디자인이 있어 내가 유화로 직접 그려보려 했다. 책의 부제인 “문을 열면 마법이 시작되는 곳, 소아병동 이야기”의 타이틀을 생각해 판타지 느낌으로 아이가 바다나 노을 등 자연이 펼쳐진 곳. 그곳에 존재하는 문을 열고, 문의 안쪽에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볼 법한 아름답고 신기한 판타지의 세계가 펼쳐지는 공간. 그런 그림의 컨셉을 생각했다.     

 

유화로도 그려봤지만 영 느낌이 살지 않았다. 나의 똥손은 역시 기적을 만들지 못했다. ㅎㅎ결국 디자이너에게 컨셉을 의뢰하고 시안을 받았다. 이후 전자책 발간을 위해 ISBN을 발급받고, 유통 등을 알아보면서 소설 출간 소식을 들은 지인들로부터 책이 나오면 서점에서 꼭 사보겠다는 말을 들었다. 전자책에 익숙하지 못한 어른들이기에 어찌할까 고민 중 결국 종이책도 출간하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지인 몇 명만 볼 수 있는 소량의 종이책 출간. 유통을 대행해 주는 업체들에 대한 정보를 얻고 나서야 결심을 하게 됐다. 그리고 이건 나만의 생각이지만 이 소설이 내 아이의 투병에서 얻은 모티브로 쓰인 것이기에 내겐 무생물보다 생물에 가까운 존재였다. 그렇다면 영원히 박제되어 전자책으로 있는 것보다는 넓은 세상, 밝은 서점 어딘가에 날개를 달고 활활 날아갔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아이와 내가 고통스러웠던 병동을 떠나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일상으로 돌아온 것처럼...     

아이가 아프고 나서 보이지 않던 세상이 다른 의미로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무심한 코끼리처럼 일상을 살았다면 이제는 개미의 일상을 사는 듯한 느낌이다. 사는 게 바빠 보이지 않던 타인의 일상과 슬픔이 작은 개미에게 밀어닥치는 것처럼, 작게 시작된 물방울은 큰 파동이 되어 내 일상에 박히기 시작했다. 종종 브런치에 등장하는 아프고 힘든 사람들의 하루와 일상에서 마주치는 고통스러운 사람들의 모습들이 바늘처럼 콕콕 박히기 시작했다.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처럼 내가 타인의 삶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오히려 이제는 적당한 거리 두기가 필요한 만큼의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를 고민해야 할 때가 온 듯했다.    

  


아이는 요즘 별똥별을 보러 몽골에 가고 싶단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다. 몽골에는 빛이 적어 수많은 별똥별이 마치 불꽃놀이 하듯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단 나의 말에 아이는 적잖이 충격을 받은 듯했다. 별똥별의 모습이 아름다워서일까. 왜 그렇게 별똥별을 보고 싶냐는 나의 질문에 아이는 “별이 우수수 떨어지면 내가 소원을 막 빌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내 아이는 또 다른 마음의 이야기를 꺼낸다. “소원을 막 빌면서 **이가 아프지 않고 빨리 나으라고 별똥별한테 빌 거예요.”라고 했다.


 얼마 전부터 브런치에서 본 아이와 동갑인 친구 **이. 현재 병원에 입원해 투병 중인 아이의 사진을 보며 가슴 아파하는 내 모습을 본 아이가 작년 자신의 병원 생활이 생각났는지 나처럼 **이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병원에 가서 휠체어도 밀어주고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는 라파엘. 아픈 **이의 사진을 보며 눈가가 촉촉해진 라파엘은 진심을 꾹꾹 담아 반드시 자신이 별똥별에게 소원을 빌어 **이를 낫게 해달라고 말하겠다고 연신 말을 했다. 아이가 겪었던 소아병동에서의 고통스러운 시간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우린 개미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작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큰 일들이 매일 감사하고 소중하고, 의미 있는 일들이라는 것을... 아프고 나서야 작은 발가락 하나를 보여주는 세상...        


  

“우리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삶에서 가장 멋진 것은 상품이 아니며

인간관계, 경험, 의미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그레이엄 힐(Graham Hill), 기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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