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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야 Jun 21. 2024

책 유통의 A, B, C

나는 소아병동 터줏대감입니다 출간기 

책 유통의 A, B, C   

  

책의 디자인 작업을 끝냈다. 종이책과 전자책 버전 두 가지로 만들었고 ISBN까지 발급받았다.

그렇다면 다음 스탭은 유통이다. 종이책과 전자책을 독립출판사에서 유통하는 것? 지인 중에 본인 일을 그만두고 아예 출판사를 차리고 유통까지 혼자 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 자문을 구했더니 “진짜 혼자 다 하시려고요? 에이~하지 마세요.”라고 말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해 줬다. 수많은 유통 업체에 일일이 계약을 하고 서울 시내 서점에 매일 다니다시피 하며 본인 출판사 도서 홍보에, 매대 진열이 잘 보이는 곳에 진열하기까지 얼마나 치열하게 사는지를. 잘 보이는 매대에 진열하는 것이 독립 출판사에겐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는 사실과 인쇄까지의 공정에서 자신이 어떤 사기를 당하고 실수를 했는지에 대한 푸념까지 그는 계속하지 말란 말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책의 내용과 외피는 어찌어찌 만들지만 인쇄와 유통은 손을 빌리기로 결정했다. 다행히도 여러 선택지가 있었다. 인쇄부터 유통을 도와주는 “작가와”, “인디펍”, “부크크” 등 여러 대행업체가 있었다. 얼마큼의 유통 업체 풀을 지녔는가와 추후 발생하는 인세 셰어 등을 고려, 자신에게 맞는 업체를 선택하면 나머지는 일사천리로 대행해 준다. 난 “작가와”를 선택했고 관계자와 발행부수와 인쇄지, 사이즈 등에 대한 협의를 했다. “작가와”의 시스템 역시 유통을 책임져주는 대행업체가 있었고 ISBN 발급 당시 정해놓은 출판 예정일이 있었기에 서둘러 일을 진행시켰다. 그렇게 소설책 “나는 소아병동 터줏대감입니다”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요즘 준비하는 프로젝트가 “생과 사”에 관한 것이다 보니 자연스레 나의 모든 레이더망이 “생과 사”에 관해 발동된다. 특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감정과 과정들. “죽음”을 겪는 과정이 비단 당사자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것.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과정에서 오는 고통과 파장이 더 클 수도 있다는 것. “남겨진 자의 고통과 치유”에 관한 고민이 요즘의 관심사다. 예전 술자리에서 고통 중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이 뭐냔 토론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각자 겪을 수 있는 최대의 고통을 상상한 후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난 단연코 최대의 고통은 “상실”이며 그중에서도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고통”이라 말했다.


인간이 겪는 스트레스 상황 중 가장 극심한 것이 “이별” 나아가 “죽음”인데 어느 연구 결과에서 “이혼, 장애, 부모의 죽음” 등을 뛰어넘는 고통 지수가 “자식의 죽음”이라 했다. 몇 명은 고개를 끄덕이던 가운데 평소에도 엉뚱하기 그지없는 선배 하나가 내 말을 뒤집고 최대의 고통은 “무위고”란 말을 했다. 떠들썩하던 술자리가 갑자기 조용해졌고 다들 선배의 다음 말을 주목했다. 참고로 “무위고”는 노년이 겪는 4대 고통 “빈고, 병고, 고독고, 무위고” 중 하나로 아무 일도 하는 게 없어 무료한 것이 고통인 것을 일컫는다. 주 52시간이 자리 잡기 전 밤샘은 기본이고, 그야말로 매일이 “방송사고 직전” 촌각을 다투는 삶을 살고 있던 그때는 그게 가능하다 했던 시절이었다. 우린 그렇게 그 순간을 낄낄대며 흘려보냈다.      


아이가 아프고 나서 내 삶엔 큰 변화가 생겼고 그때 나를 가장 힘들게 짓누르던 감정은 “죄책감”이었다. 아무 죄도 없는 어린아이를 수술실에 8번 보내며 고통스러워하는 나의 아이를 바라보는 감정. 모든 게 내 탓이었다. 내가 아픈 아이를 낳았고, 이 모든 고통은 내가 대신할 수 없이 오로지 나의 아이가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 아이의 투병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수술실에서 깨어날 때마다 눈을 뜨며 극심한 고통의 신음소리를 내던 아이. 아이가 제발 눈을 뜨기를 바라며 수술 회복실에 들어가 아이 손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하던 8번의 순간. 멀쩡했던 아이가 하루아침에 생사를 오고 가고 그리고 기약 없는 투병 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모든 사실이 모두 부모인 나의 책임과 잘못 같았다. 아니 “같았다”가 아니라 그건 분명 “내 잘못”이란 단어로 바뀌어 매일 밤 잠들지 못했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 아이와 함께 회복실에 들어가면 루틴이 있었다. 마취 담당 선생님과 간호사쌤이 와서 아이 상태를 체크하고 마취에 대해 설명한다. 아이가 처음 수술을 한 날 머리가 희끗한 마취과 교수님이 직접 오셔 수술에 있을 마취를 설명하고 라파엘의 긴장을 풀려고 노력해 주셨다. 수술 회복실을 가득 메우던... 막 수술에서 깬 환자들의 울음과 신음, 어린 환자들의 비명소리. 삐비 대던 산소 포화도 기계음, “환자분 눈 떠보세요...!!”“환자분 주무시면 안 돼요. 환자분 정신 차려 보세요.” 등 수술이 끝난 환자를 깨우는 소리.. 아수라장 같은 그곳에 들어온 아이는 고통스러운 회복실의 전쟁 같은 상황을 온몸으로 느끼며 어른처럼 그 상황을 견디고 있었다.     


수술이 첫 번째, 두 번째 정도 진행됐을 때 수술실 스태프들은 정말 친절하게 아이에게 다가와 긴장을 풀어주려 노력했다. 그러나 이후 두 번이 세 번이 되고 네 번이 다섯 번이 되고 결국 여덟 번의 순간이 왔을 때 수술 회복실에 있는 모든 스태프들이 내 아이의 존재를 알게 됐고 점점 재처럼 변해가는 내 모습 앞에 루틴의 설명을 하러 오는 모든 스태프들이 “아... 어머니...” “아.... 라파엘....”“하아.... 또 왔구나...”의 탄식을 하다 이내 내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우물쭈물 최대한 빠르게 설명을 한 후 자리를 떠났다. 그들은 내게 더 이상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고, 그들이 건네는 어떤 말도 우리에게 전혀 위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저 우리 모자가 또 수술준비실에 들어오면 당황한 눈빛을 감출 수 없어 흔들릴 뿐이었다.    

 

아이의 투병 기간 더 마음 아팠던 것은 아이의 “내려놓음”이다. 혈관들이 다 터져 링거 바늘 꽂기에 온 의료진이 출동하고, 이겨낼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아이는 어른보다 더 어른스럽게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순응적인 태도로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였다. 수술의 고통보다 수술 후 금식과 물 한 방울 먹을 수 없는 서러움에 가끔 눈물이 맺히던 아이는 첫 수술 이후 단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수술 준비실에서 나와 마지막 인사를 하고 의료진들에게 이끌려 수술 베드가 사라져 가는 순간, 라파엘은 8번의 수술 동안 단 한 번도 베드에 누워 수술실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말했고 결국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베드에 앉은 채 수면 마취 없이 수술실에 들어갔다. 마취 쌤들은 아이들의 경우 불안과 공포로 수술실에 들어가긴 전 보통 수면마취를 시키고 들어가기 때문에 라파엘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무슨 생각인지 라파엘은 항상 수술실에 들어간 후 마취를 하겠다고 고집했고 선생님들은 그런 라파엘의 의견을 들어줬다. 저 멀리 수술실로 사라지는 아이의 베드. 온몸을 꼿꼿이 세워 정좌하고 앉아 있는 아이의 모습이 아렸다.     

 

“오늘도 수술실 보고 나서 코 잘 거야? 쌤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라파엘. 꼿꼿이 앉아 들어선 수술실에서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번쩍이는 불들과 차가운 수술실에서 매번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 이 모든 고통과 외로움을 작은 몸을 세워 이겨냈을 아이의 순간을 상상해 보면 그것은 더욱더 고통이었다. 소설을 쓰면서 난 아이의 친구 “은도형”을 만들어냈다. 비록 유령인 친구이지만 아이가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 옆 베드에 누워 아이를 응원해 주고, 아이가 수술을 하는 동안 손도 잡아주는 주인공 선우의 비밀 친구 “도형이”. 내가 지켜주지 못한 그 순간 아이가 외롭지 않기를 바란 마음에서 만들어낸 “선우”의 친구 “도형”이었다. 내가 라파엘의 “도형이”라고, 그래서 항상 널 지켜줄 거란 말을 하고 싶었다.     


존스홉킨슨대 소아정신과 지가영 교수는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을 거야.” “너는 소중한 사람이야.” “너는 무척 사랑받고 있어.” 이 세 가지 말만 아이에게 해줘도 아이는 잘 자랄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가 입원하고 나서 유독 나와 남편이 아이에게 해줬던 말이 있었다. “라파엘, 우리는 항상 널 지켜줄 거야. 사랑해.” 아이는 우리의 이 말에 매일 밤 마음을 놓고 잠을 청했다. 요즘도 가끔 아이가 잠들기 전 우린 어떤 일이 있어도 네 편이며 널 지켜줄 거란 이야기를 한다.      


어제 일주일 전부터 별러왔던 아이와의 이벤트를 실행했다. 아이와 영화관에 가서 “인사이더 아웃 2”를 함께 보는 것. 라파엘은 9살이 되고 나서야 처음으로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하게 됐다. 가정보다 일을 항상 우선시했던 난, 아이와 해본 것보다 안 해본 게 더 많은 너무나 부족한 엄마였다. 아이가 태어나고 바로 현장에 복귀한 난, 새벽이 되어서야 귀가해 자고 있는 아이가 부쩍부쩍 자라고 있음을 느끼고 아이가 깨기 전 다시 떠나는 일상을 반복하는, 아이 보는 게 너무 서툰 그런 엄마였다.      


“띠띠띠띡” 현관문을 여는 내 소리에 아이는 이미 맨발로 현관까지 달려 나왔다. 내가 들어오자마자 영화관에 가겠다고 얘기해 두었기에 이미 아이의 마음은 두둥실 떠오르고 있었다. 상기된 목소리로 빨리 가자고 부추기는 아이와 함께 부리나케 운전해 근처 영화관에 도착했다. 신이 난 아이는 영화관에 있는 팝콘을 사달라 했고, 나는 편의점에서 더 맛있는 걸 사주겠다고 꼬드겼다. 편의점에 도착한 난 아이가 원하는 걸 다 사라고 했다. 이 무슨 허세인지...ㅎㅎ 고래밥과 감자칩을 산 후 영화관에 입장했다. 영화 볼 땐 절대로 떠들면 안 된다고 단단히 교육을 시켰기에 아이는 뒤꿈치를 들고 발걸음도 살금살금 걸었다. 다람쥐처럼 소중히 과자를 꼭 안고 있는 아이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자리를 찾은 우리는 영화가 시작되기 전부터 과자를 먹기 시작했다. 설레며 과자를 흡입하던 아이에게 귓속말로 “이제 영화 시작되나 봐.”라고 하려는데 갑자기 아이가 날 보며 “쉿”했다. 나보고 조용히 하라니 순간 풋 웃음이 났다. 누가 보면 영화 관람 100회 차 되는 어른 같은 자세였다. 영화를 보는 한 시간 동안 걱정과는 다르게 조용히 관람하던 아이가 갑자기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얘기했다. “몇 시에 끝나요?” 난 워치를 보여주며 아직 30분이 더 남았다고 하자 아이는 그럼 5분 후에 나가도 되냐고 조심히 물었고 우린 영화 중간 영화관을 나섰다.     


‘그래, 1시간 집중한 거면 많이 한 거다. 대단하다.’ 과자를 다 먹으니 알아서 자체 관람을 끝낸 아이는 영화관에서 나와 “영상을 너무 오래 보면 중독돼서 안 좋아.”란 나의 말투를 따라 하며 자신이 왜 영화 도중 나왔는지 나름의 논리로 나를 설득하고 있었다.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시간이 너무 늦어 자야 해서 나왔다는 아이가 갑자기 아래층 아이스크림 가게로 돌진하더니 뒤따라오고 있는 나는 신경도 안 쓴 채 점원에게 아이스크림 주문을 했다. 그리곤 세상을 다 가진 표정으로 맛있게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차창 밖으로 슈퍼문 만한 달이 보였다. 아이에게 달이 떴다고 보라 했더니 “우와... 오늘 달 진짜 크다. 그렇지 엄마.”라고 말하며 연신 감탄을 했다. 작년 보름달이 뜰 때마다 병원에서 달을 함께 보며 소원을 빌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우리에게도 시간이 많이 흘렀다. 시간은 우리를 “나아지게” 하고 있었다.      


“세상은 왜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의 단서는 빅뱅이 일어나는 순간에 있을 거다. 현대물리학은 빅뱅 이후 ‘1,000억 분의 1초’가 지난 다음부터 적용할 수 있다. 그 이전의 엄청나게 짧은 시간 동안을 기술할 수 있는 물리이론은 아직 없다. 물리학의 성배나 다름없는 통일장이론 혹은 양자중력이론이 나온다면 ‘1,000억 곱하기 1,000억 곱하기 1,000억 분의 1초’까지 빅뱅에 근접하여 우주를 기술할 수 있게 된다. 이 찰나와도 같은 시간 속에서 우리는 우주 존재의 이유를 찾아낼 수 있을까? 스티븐 호킹이 쓴 『시간의 역사』의 마지막 문장이다.”     


  “만약 우리가 (우주가 왜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의 답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인간 이성의 최종적인 승리가 될 것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신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떨림과 울림 >, 김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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