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선택하고 영어를 포기했습니다

모든 걸 다 가질 순 없었던 인간미 넘치는 당신을 위한 솔루션

by 작은 하마

뜬금없이 왜 영어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국제 학술대회에 가보셨거나 이미 논문을 해외 학술지에 게재해 본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의과학계 세계 공용어는 영어입니다. 누군가는 ‘영어를 못해서 논문을 못쓰겠어요ㅠㅠ’라고 슬퍼할수도 있겠군요. 그 눈물, 제가 닦아드리도록 하죠.




‘내 연구는 너무 너무 너무 의미 있고 대단해서 해외 유명 학술지에 도전해보고 싶지만 나는 논문을 영어로 유려하게 작성할 자신이 없다’의 위치에 본인을 가둬두신 연구자 여러분. 여러분들께는 네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1. 해외 학술지는 포기한다. (밑에 이어질 내용을 더 읽어봅시다. 아직 포기하지 말아요!)


2. 영어로 논문 작성을 도와주는 전문 Medical writer를 고용한다.

뒤져보면 여기저기에 영어로 논문 작성을 도와주시는 medical writer들이 계실 겁니다. 이 분들은 대부분 의/과학 계열 전공이라서 연구에 대한 이해도도 높으신 분들이십니다. 물론 논문의 기틀은 논문 저자 본인이 잡아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을 작성하고 나면 medical writer분들께서 앞뒤 내용이 서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글을 다듬어주실 겁니다.


하지만 medical writer의 서비스에는 비용이 수반됩니다. 연구비가 빠듯해서 medical writer를 고용할 여유가 없다고요? 그렇다면 다음 선택지를 고려해 보도록 합시다.


3. 관심 있는 해외 학술지 editorial team에 medical writer가 있는지 알아본다.

놀랍게도 학술지 editorial team내 in-house medical writer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들은 주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의료 및 생물학 관련 석사 이상의 학위를 가진 전문가인 경우가 많으며, 학술지에 통과된 논문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쫙 훑고 어색하거나 불분명한 영어 표현을 깔끔하게 정리해 줍니다. 실례로 저희 팀에는 생물학 석사 학위를 소지한 영국인 medical writer가 있고, 필요시 외부 medical writer에게 외주를 주기도 하는데 결과물을 받아보니 이 분들의 실력은 정말 추천할 만합니다. '언어의 마술사'라는 말은 바로 이런 분들을 지칭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만일 제출하려는 학술지의 editorial team내에 medical writer가 있다면 추가 금액 없이 이런 서비스를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가 몸을 담고 있는 학술지의 경우, 통과된 논문들에 한해 editing service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팀은 가난합.. 아닙니다, 의과학자 여러분의 의미 있는 연구를 널리 퍼뜨릴 수 있어 영광입니다.) 궁금하면 각 학술지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editorial office에 이메일로 문의하시면 됩니다.


4. AI는 내 친구 – Large language model (LLM)

영어로 기본적인 내용도 작성할 자신이 없으시다고요? 괜찮습니다. 그럴 수 있죠. 영어가 아니더라도 다른 어떤 한 가지 언어로만 표현이 가능하시면 당신에겐 아직도 기회가 남아있습니다. 온갖 언어에 능통한 우리의 친구 AI가 도와줄 테니까요.


각 학술지의 규정에 따라 ChatGPT 등 LLM의 도움을 허용하는 곳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저희 팀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막을 수 없으므로 개방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추세에 올라타는 중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 아시아 권에서 저희 측으로 제출된 논문 중에 저자들이 ChatGPT를 사용해서 작성했던 논문이 있었습니다. 같이 일하는 medical writer 동료가 한번 보더니 꽤 괜찮게 작성되었다며 감탄하더군요.


궁금해서 저도 직접 ChatGPT에게 물어봤더니,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감을 내비치네요.


물론 AI의 도움으로 논문을 작성한 경우, LLM의 개입에 대해 정확히 정보를 남겨놓아야 합니다. 다음의 예를 한번 살펴볼까요.

예시) Acknoweldgement

논문 작성 시 00의 도움을 받았음을 안내드립니다. 00은 위 논문에서 다루는 연구와는 전혀 상관없으며 위 논문을 영어로 작성하는 과정에서만 사용되었습니다.


다만 고려할 점이 있습니다. AI가 최근에 도입된 기술인 만큼, 아직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꽤 많습니다. 그중 가장 관심이 뜨거웠던 것들 중 하나를 꼽자면 authorship이 아닐까 싶습니다. AI (LLM)는 저자로 등재될 수 있을까요? 결론 먼저 말씀드리자면, 답은 'No'에 가깝습니다.


의과학 분야에서는 AI가 논문 작성에 기여하는 바에 있어 authorship을 부여할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정확한 국제적인 가이드라인이 따로 제시된 바는 없으나, Nature지의 경우 LLM은 “연구에 대한 책임이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므로 ChatGPT와 같은 LLM에 authorship을 부여하지 않겠다”라고 공표한 바 있습니다. Science 지의 편집장도 같은 의견을 밝혔습니다. 그는 AI의 경우 ‘저자’로 등재될 수 없으며, 만일 사용된 경우 위에서 설명드린 바와 같이 LLM의 역할에 대해 명확히 설명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학술지와 긴밀히 협력하는 출판사의 입장도 중요합니다. 여러 Peer-reviewed journal들을 출판하는 Taylor & Francis의 출판 윤리 최고 담당자는 “저자들은 연구의 타당성과 진실성에 대한 책임을 지며, LLM이 사용된 경우 ‘Acknowledgements’ 란에 그 내용이 언급되어야 합니다”라며 Nature와 Science 지와 일맥상통하는 답변을 제시하였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곳에서 제작하는 학술지 또한 같은 스탠스를 취하고 있으며, 아마 다른 학술지들도 비슷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세 줄 요약을 해드리자면,

- 연구 논문 작성에 있어 ChatGPT와 같은 LLM의 사용은 허가될 수 있다.

- 활용할 경우 ‘어떻게’, ‘얼마나’ 사용하였는지 그에 대한 정보를 숨김없이 밝혀야 한다.

(Acknowledgements란을 활용할 것을 추천드립니다)

- 그러나 AI는 저자로는 등재될 수 없다.

정도가 되겠습니다.


위와 언급한 바와 같이 특정 학술지가 가진 정책에 더해 그 학술지를 출판해 주는 출판사 (모두가 아는 Elsevier, Wiley 등)의 정책 또한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에, 궁금한 점이 있다면 논문을 제출하고자 하는 학술지의 editorial office에 문의하는 것을 권장드립니다. 학술지 운영 입장에서도 novelty가 높은 연구 논문을 찾아 헤매고 있기 때문에 저자들이 문의를 보내올 경우 대부분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는 편이니 겁내실 필요 없습니다. 문의 메일은 무료니까 궁금한 건 무조건 다 물어보셔도 됩니다!


AI 사용에 대해 더 자세한 사항이 궁금하신 분들은 제가 참고한 기사 원문을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참고로 Nature구독자만 열 수 있는 페이지라 대학원생이나 연구자라면 학교 도서관 이용 아이디를 사용하시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ChatGPT listed as author on research papers: many scientists disapprove (nature.com)




이제 어느 정도 용기가 생겼나요?

그렇다면 용사님, 다음 퀘스트에서 뵙겠습니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Rohan Makhech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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