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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빛 Jan 21. 2024

제목 없는 여행

목적 없이 기차여행 떠나기

    집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작은 기차역 하나가 있다. 기차역 근처 공원을 산책할 때면 언젠가 저 기차역에서 기차를 타고 훌훌 떠나보고 싶다고 생각만 했었다. 소박하고 작은 자유를 갈망했던 것이다. 설사 내가 자유를 바라고 있었을지라도, 실제로는 목적 없이 무언가를 하는 것이 쓸데없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목표를 위해 달리는 삶을 열심히 살았다.

    요즘 들어 나는 생각을 달리 하기로 했다. 색다른 지역으로 떠나 멋있는 것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어서 기억에 남을 여행을 해야 한다는 일종의 목적의식을 내려놓기. 어디를 목적지로 잡든 간에 내 마음과 내 주위를 둘러보는 시간과 여유를 갖는 것을 우선으로 하기로 했다. 쉽지 않은 것이다.




    처음이니 혼자는 마음이 쉽게 나지 않아 함께 가기로 했다. 겨울 오전에 기차역으로 향했다. 점심을 먹고 천천히 걸어 구경을 하다 오후에 돌아오기로 했다. 11시부터 3시까지, 총 4시간이라는 짧은 여행이었지만 여행은 여행이라 그런지 기대가 되어 기차역으로 가는 내내 들떠있었다. 무엇보다 어떤 곳일지 예상하지 않는다는 것에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조금 헤매어도 괜찮다는 것, 계획과 목표가 없어도 상관없다는 것. 마음 편히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기차를 30분 정도 타고 작은 지방의 한 도시로 향했다. 기차역에 내려 둘러보니 정겨웠다. 기차역은 지하철역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어디론가 떠나고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지는 느낌이 강하다. 또, 기차역은 항상 그 자리에 있어 사람들을 기다린다는 느낌도 있다. 이 기차역은 수많은 계절을 보내며 누군가가 오기만을 기다렸을까, 가볍게 생각을 해본다.  

    기차역을 나와 바깥을 걷는다. 역시 역주변이라 휑해 보인다. 지방의 작은 도시라 그런지 근처 상가는 많이 비어있다. 문에 붙은 시트지나 간판은 너덜너덜하다. 이 간판이 처음 붙었을 시절엔 색색이 선명함을 뽐내며 사람들을 반겼으리라. 세월이 지나버려 텅 빈 가게의 문들은 쓸쓸히 사람들을 지나쳐 보낸다.




    점심을 먹기 위해 급하게 검색을 해보니 중식당이 하나 있다. 점심을 얼른 먹어야 할 것 같아 택시를 잡아 타고 현지인인척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00동 000 인근으로 가주세요. 아 그리고 000 방면으로 가주세요.' 나는 여기 지리를 다 알고 있으니 바로 가 달라는 무언의 발언이다. 관광객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무려 웨이팅까지 해서 점심을 만족하게 먹고,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주변의 유명한 거리를 걷고 기차역으로 돌아오기 위해 작은 도심을 가로질러 다리를 건넜다. 다리를 건너며 아래의 강을 쳐다보았다. 오리들이 무리를 지어 잠수를 하고 있었다. 물이 굉장히 깨끗했는데, 강 안의 돌과 지형, 물고기들까지 훤히 보였다. 이렇게 깨끗한 강을 보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저기 저 멀리 두루미도 보였다. 오리들과 떨어져 사람이 없는 곳에 홀로 서있는 두루미를 보니 마음이 짠해졌다. 가족이 없을까? 저렇게 혼자 살아가는 걸까? 그러고 보니 두루미가 떼를 지어 다니는 것을 본 적이 별로 없다. 생각의 꼬리를 물며 다시 길을 걸어갔다.

    인도의 폭이 좁고 보도블록이 노후되어서 그런지 걸어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더구나 자동차의 매연이 콧속을 쓸어내려서 괴로웠다. 그래도 걸어야 하니깐 걸어갔다. 함께여서 다행이었다. 혼자였으면 서러웠을 뻔했다. 걷고 걸었다. 다리가 아파왔을 때쯤 00역이라는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해 무척이나 반가웠다. 한참을 더 걸어가다가 작은 아파트 혹은 연립 주택을 만났다. 예쁜 노란 문과 계단이 있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었다. 운치가 있어 잠시 바라보고는 이게 이쪽에 문이 있는 게 맞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진을 아무리 보정해도 바랜 노란 색이 온전히 담기지 않았다. 문 유리창의 체크무늬 커튼과 노란 계단, 옆의 식물들을 보며 의도적으로 꾸민걸까, 아니면 어쩌다 보니 예쁜걸까?


    그렇게 돌아오는 기차를 타자마자 잠을 거나하게 자버렸다. 많이 걸어서 그런지 잠이 달았다. 소박하고 작은 여행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마무리가 지어졌지만, 한편으로는 또 다른 여행을 위한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날 기차역의 정취와 쓸쓸하게 텅 빈 가게들, 노란 문과 계단이 있는 작은 아파트와 깨끗한 강이 내 기억 속에 오래 남아있을 것 같다.


햇빛 따스한 겨울 오후, 소도시의 기차역에서 집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린다. 의자에 앉아 선로에 들어가지 마시오‘ 라는 경고문을 어기고 한번 뛰어드는 청개구리같은 상상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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