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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빛 Apr 14. 2024

나는 이제 달린다!

새로운 경험, 달리기

    나는 정적이고 고요한 사람이다. 조용한 환경에서 자랐고, 차분한 성격이 형성되었다. 병원에서도 부교감신경 수치가 높으니 우울증을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런 천천-히 걸어가는 인생을 살게 될 줄 알았다.



    최근 몇 년간 나는 내 인생에서 손에 꼽을 만한 큰 변화들을 겪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신체 활동의 변화이다. 일을 시작하며 운동을 해야 일상이 유지가 될 것 같아 필라테스와 헬스를 했고 마음을 먹고 멀리 걸어보았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 한계 안, 즉 안전지대 안에서의 신체 활동이었다. 무언가 내 능력 밖의 것을 도전하는 것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계획이야말로 최고의 안전한 대비책이라 생각해 왔고, 그렇게 살아왔다. 물론 모든 것들이 내 계획대로, 내 기대대로 된 것은 전혀 아니지만. 이런 내 노력들은 실패와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불안을 덜고자 하는 안전장치이기도 했다.




     내게 안전지대 밖의 신체 활동은 '달리기'였다. 태어나서 학교 체육시간에 한 것이 전부인 이 '달리기'는 나에게 불모지 사막 같은 존재였다. 대학생 시절엔 이유 모를 무릎 통증 때문에 겁이 나기도 했고, 왜 굳이 중력을 거스르고 바닥에서 발을 가만히 두지 않고 뛰려 하는가, 하는 생각이 컸다. 모르는 영역이었다.

    내가 달리면 무엇이 좋을까. 아주 조금씩이지만 달려보니 느껴지는 것은 혈액순환과 정신적 에너지 충전이다. 뛰고 나면 몸에 열이 폴폴 난다. 예전에 한의사가 환자분은 너무나도 분명한 소음인이니 항상 따뜻하게 하고 지내라는 말을 했을 정도로 몸에 열이 없어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이 있는데, 달리기를 해보니 얼굴이 정말 어피치(아래 캐릭터)처럼 빨개질 정도로 열이 난다고 한다. 열이 나니 혈액순환이 잘 되고, 혈액 순환이 잘되니 생활에 활력이 생기는 느낌이 든다. 직장에서도 전보다 더 여유있고 밝아 보인다고 하니 목적달성인 셈이다. 내가 정말 싫어하는 소리가 힘이 없어 보이네, 잘 먹어야겠네, 이래 가지고 어떻게 사냐며... 본인 말만 뱉어 버리고 나를 비실이로 만들어 놓은 채 슝 가버리는 사람들. 지금은 뭐 그러려니 하지만 예전엔 정신적 스트레스가 있었다. 요즘 이런 상황이 없어지니 너무너무 좋다.



    달리기는 내게 정신적 에너지 충전을 해준다. 더욱 맑은 정신으로 일을 하고 집에 와서도 덜 피곤하게 잠이 들 수 있다. 달리기를 하면서 내 안에 숨어있던 독기도 꺼내보았다. 나는 언뜻 봐도 독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얼굴을 지녔다. 내가 이만큼 내 인생의 업적을 세워 온 것은 독기보다는 오래 버티고 포기하지 않는 '끈기'일 것이다. 비슷한 양상을 지녔지만 '독기'는 힘을 한 번에 몰아 강하게 나간다면 '끈기'는 얇고 길게 힘을 지속하는 지구력과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다리가 아프고 발이 터질 것 같아도 세모눈을 뜨고 길을 노려보며 목표한 만큼 달리려는 내면의 독기를 꺼내어 달린다. 정말 새롭고 생소한 경험이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다. 마치 열대과일을 처음 접하면 익숙한 맛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맛있게 느끼듯 말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조금씩 달려나가기로 했다. 일단 집 문 밖에만 나가면 성공!


  이 글을 쓰며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칭찬하고 몸이 아프지 않은 이상 꾸준히 달리고자 하는 다짐을 해본다. 아, 맞다. 달리는 시작 지점에서 항상 드는 생각이 있다. 왜 인간은 늙어가는 존재일까. 운동 안 해도 멀쩡한 존재일 수는 없을까. 왜 만물은 소멸로 향하는 것인가. 가만히 앉아 생각해 보면 이건 조물주의 영역인데, 내가 계속 뛰기 귀찮아서 딴지를 걸고 있는 것 같다. 사람이 늙는 건 내가 어찌할 수 없으니 그냥 받아들이는 걸로. 달리면 시간을 거슬러 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냥 걷는 사람보다 뭔가 다른 시간 흐름 속에 있는 느낌이랄까. 젊어지는 느낌이려나.


나는 오늘도 달리고 내일도 달린다!


집 앞 산책로에서 바라본 바다 전경. 달리기엔 최적의 환경이다. 항상 바다를 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달린다. 비록 달릴 땐 바다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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