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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빛 Mar 18. 2024

학생들 앞에서 거미노래 열창하기

부끄러움을 받아들이기

    누군가 나에게 노래를 잘하냐고 물으면 나는 겸손과 기대하지 말라는 무언의 발언을 한 숟갈씩 얹어 이렇게 말한다. "글쎄, 음정은 잘 맞출 수 있는 정도예요." 아직 내가 노래를 잘하는지 감이 오지 않기도 하지만, 음정만 잘 맞으면 기본은 한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 좋은 기회가 있어 학교에서 버스킹 무대를 사람들과 함께 꾸몄는데, 공연을 준비하고 내 노래, 내 음악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경험을 해보니 혼자 노래하거나 작곡만 할 때와는 다른 희열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음악이 더욱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음악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바로 인간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가장 간단하고 자연적인 악기는 ’인간의 몸‘으로, 내가 원한다면 언제 어디서나 꺼내 연주할 수 있다. 나아가 사람은 노래를 부르면서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표현한다. 낼 수 있는 소리의 높낮이나 음량은 악기에 비해 한정적이지만, 사람의 마음속에 울리는 감동은 우리의 목소리가 내는 음악이 가장 크고 강력하다. 나는 작년부터 혼자, 그리고 다른 사람 앞에서 내 마음을 담은 노래를 하기 시작했고, 요즘은 내 노래의 울림이 점점 마음에 든다.


 



    혼자서 노래하는 것과 다른 사람 앞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노래하거나 연주하는 것은 굉장히 다르다. 함께 음악을 나누는 것은 단순히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넘어 더 광대한 의미가 있다. 다른 사람들과 숨결을 나누고 눈을 마주치는 신체적인 상호작용으로부터 시작해서 각각 다른 음을 내지만 조화로운 화음을 만드는 즐거움, 같은 음악을 연주하고 들으며 느끼는 훈훈한 소속감, 하나의 음악을 완성하는 것에서 오는 만족감과 환희. 수많은 감정을 경험하고 '나'를 형성해 나간다. 나는 이러한 느낌을 다른 사람 앞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노래를 하면서 점점 알아가기 시작했다.




    하루는 학생들에게 거미의 '어른아이'를 불러주었다. 열창하지 않으면 끝까지 못 부르는 노래라 학생들에게 "나는 성악이나 보컬을 전공한 적이 없다"라고 미리 언질을 주었다. 약간은 겁이 나기도 했다. 내가 이 노래를 부르면 멀쩡하게 끝을 볼 수 있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거미의 '어른아이'는 내가 중학생 때 나온 노래인데, 힘이 넘치는 저음과 고음이 함께 공존하는 노래다. 당시에 정말 열심히 듣고 따라 불렀던 기억을 더듬어 학생들에게 힘껏 불러주었다. 하이라이트는 바로 "사랑 없이, 못 사나, 봐~~~~~~!!!!!!"와 그 뒤로 쉼 없이 달려가는 "예에에에!!!!" 하는 선율이다. 생각만 해도 숨이 차지만, 호흡 연습엔 딱인 곡이다.


거미, <어른아이> (음악 듣기)

거미의 3집 앨범 재킷이다. 거미의 노래에 도전하는 것은 큰 결심이 필요하다. 생각보다 음역이 넓어 힘 있는 저음에서 날카로운 고음까지 순식간에 올라가는 선율이 많다. 숨찬다.


    학생들 앞에서 부르고 나니 정말 온몸에 기를 다 토해낸 듯한 느낌이었다. 얼굴도 시뻘게지고, 목도 컬컬해지고, 눈앞이 핑 도는 상태로 끝내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예전엔 음악교사지만 학생들이 멋진 노래 불러달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불러주지 않았다. 가사를 틀리거나 잘못 발음하면 부끄러울까 봐, 고음 부분에서 음이 이탈하면 얼굴에 열이 오를까 봐 등등. 부르기 싫은 이유가 정말 많았다. 음악은 나 혼자 즐겨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다.

    학생들 앞에서 어려운 노래를 겨우겨우 불렀지만, 음악을 모두 한마음으로 즐기면서, 또 어려운 부분은 같이 아슬아슬해하면서. 음악을 함께 즐기는 기쁨을 새롭게 알아간다. 그 뒤로 자꾸 여러 노래를 부르다 보니 이젠 좀 부끄럽고 창피한 감정이 무뎌져 쉽게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아직도 떨리고 긴장이 되긴 하지만, 어쩌겠나. 난 잘 부르는 것보단 즐기면서 부르는 쪽을 선택한다.




    이제 매일매일 노래를 새롭게 연습해 나간다. 내 노래를 재밌게 들어주고 부족한 실력에도 칭찬해 주는 학생들과 가족이 있어 감사하다. 내 목소리로 어떤 음악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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