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즐거운 고독 만들기 4

나서지 않기, 듣고 기다리며 그리고 깨달기

나서지 않기, 잘 난 척하지 않기, 듣고 기다리며 그리고 깨달기. 


현재의 팀은 2006년에 실무자로 전출을 와서 8년 간 일했고, 팀장으로 7년, 실장으로 3년을 일한 곳입니다.

실무자 시절 팀 보고업무를 시작으로 팀과 실의 사업계획 수립, 실적 보고 등을 수행하다 보니 다른 업무에 대해서도 많이 듣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팀장이 된 후에는 모든 업무에 대한 계획 수립, 진행사항 확인 및 지원, 보고업무 등을 하였고, 실장 때는 현재 팀 외에 다른 팀의 업무도 조율하고 관리하였습니다. 이러다 보니 현업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현재 이곳에 있는 누구보다 업무에 대한 이력이나 향후 업무 방향성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자꾸 업무에 대한 이야기가 들릴 때면 귀를 쫑긋 세워 무슨 일이 있나 듣게 되고, '저 것도 모르나, 저렇게 하면 안 되는데 왜 저러지, 나 같으면 저렇게 안 할 텐데, 좀 물어보지... 참 답답하네'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왜 귀는 눈과 같이 보기 싫은 것이 있으면 닫을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이 없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러다 보니 자꾸 대화에 끼고 싶은 생각이 들고, 나서서 알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현업에서 물러났고 이제 정년이 코 앞인데 나서서 이야기한 들 앞에서는 듣는 척하지만 돌아서면 겨우 참고만 되는 정도의 도움뿐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더 도움이 된다고 하여도 나서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

얼마 전 젊고 유능한 친구가 회의를 주관하는 자리에 후임 팀/실장과 함께 참석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나서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 들어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답답하고 못 미덥다는 생각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왜 설명을 저토록 어렵게 하는지,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을 안 하는지'

'설명 중간에 끼어드는 질문에 대해 단호하게 막고, 진행을 한 후 토의하면 되는데 왜 듣고만 있는지'

'질문의 수준은 왜 저 모양인지, 지금까지 설명할 때는 무엇을 듣고 있었는지, 왜 답변은 저렇게 하는지'

'왜 설명은 저렇게 답답하고 반복된 말을 여러 번 하는지, 명확하게 설명하고 진행을 안 시키는지'

'회의가 지연되고 꼬이고 있는데 팀/실장은 왜 정리를 하려고 시도하지 않는지'

'좀 더 강하고 확실한 어조로 회의를 주관하고, 결론을 빨리 내지 않는지'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갑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앞에 나가서 회의를 주관하고 정리하여, 끝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적절하지 않은 질문이나 상황 발생 시 단호하게 막고 진행을 한 후 이야기를 나눌 텐데...
자를 건 자르고, 추가적인 질문은 나중으로 유도하면 회의 지연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마지막으로 화이트보드에 순서대로 회의 내용을 정리한 후 마무리를 지었을 텐데...

그래도 꾹 참고 들으면서 이해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느덧 회의 막바지가 되었습니다. 총 1시간 30분이 걸렸습니다.

최상의 회의시간인 30분은 아니더라도 1시간 미만으로 끝내야 했습니다만, 1시간 30분이 걸렸네요.

하지만 회의 결과는 만족스럽습니다. 이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되는 회의였기 때문에 다행스러운 결과입니다.


이 회의를 통해 한 가지 깨달은 것은 바로 '다름'입니다.

저와는 다른 스타일로 회의가 진행이 되었고, 중간에 많은 이야기가 쉴세 없이 오고 가고, 상당 부분 반복되고 쓸데없는 우려와 걱정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결국 회의 결과는 만족스럽게 나왔습니다.


제가 회의를 주관하여, 강하고 빠르게 결론을 내는 방식과는 다르지만 결론은 동일하게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틀림'이 아니라 '다름'이라고...

'다름'은 맞고, 틀림에 대한 것이 아니라 나와의 차이라는 것을...

나와 다르다고 답답하고, 부족하고, 못 미더운 것이 아니라고.




퇴근하면서 조용히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한번 더 깨달았습니다.

조용히 물러서 새로운 인물이 새로운 기준과 방법으로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가는 것을 지켜보고, 응원해야 한다는 것을...

나름의 철학과 비전으로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나가는 것에 대해 더 이상 조바심을 내거나, 관여하거나, 섭섭해하지 않겠습니다.


오늘에야 비로소 한 발짝 더 뒤로 물러서는 법을 배웠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경청하고, 깊은 호흡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편견 없이 보려고 합니다.


이제는 타인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저 자신에게 집중하고 제 내면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할 때입니다.

'고독'과 친해지는 시간을 더 많이 가져야겠습니다.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

작가의 이전글 이상한 나라의 팀장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