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국수와 키오스크(Kiosk), 그리고 할머니들(D-128)
오늘은 날도 덥고, 집에 먹을 것도 없고...
결국 아내와 산본 중심상가로 나가 저녁을 먹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외식의 가장 큰 걸림돌은 언제나 '무엇을 먹을 것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주변을 보면 식당은 넘쳐나는데 이상하게 먹고 싶은 음식은 찾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저희 부부는 음식 취향이 달라 매번 음식 종류 고르기만 하다가 시간을 훌쩍 넘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는 너무 지쳐서 "그냥 집에서 먹자"며 외식을 포기한 적도 있을 정도입니다.
키오스크와 할머니들
더운 날씨 탓인지 아내는 콩국수가 먹고 싶다고 하더군요. 저는 혈당 걱정만 아니면 면류는 언제나 대환영이라, 둘이서 중심상가 끄트머리에 있는 국숫집으로 향했습니다.
요즘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 인지, 주문과 결제를 모두 키오스크로 처리하고 있더군요. 저희도 키오스크로 주문하고 콩국수를 맛있게 먹고 있는데, 똑같은 머리 스타일을 하신 할머니 네 분이 들어오시더군요.
자연스럽게 카운터 앞자리에 앉으시더니 구두로 주문을 하십니다.
하지만 "죄송하지만, 키오스크로 주문하시고 결재하셔야 됩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옵니다. 놀랍게도 할머니들은 당황하시지 않고, 네 분 모두 일어나 키오스크 앞으로 향하시더군요.
서로 무엇을 드실지 의논하시면서, 차근차근 키오스크의 음식을 선택하십니다. 잠시 쳐다보면서 '그래도 이분들은 키오스크를 잘 사용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모두 선택을 마치셨고, 할머니 한 분께서 본인이 결제를 하신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스마트폰의 간편 결제 시스템인 '삼○페이'로 하신다고 합니다.
콩국수를 먹던 중, 결제가 잘 안 되는지 키오스크 앞에서 우왕좌왕하시는 할머니들을 잠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들은 결국 주방 쪽을 향해 도움의 눈길을 보내고 계시더군요. 제가 잠시 지켜보고 있었는데, 간단한 문제여서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더군요. ㅎㅎ 이유인즉슨?
'삼○페이'로 결제하려면, 스마트폰의 뒷부분을 카드 단말기에 데어야 하는데, 액정 부분을 데고 계시더군요. 조심스럽게 방법을 알려드리자 바로 결제가 완료되었고, 할머니들이 맛있게 식사하시는 것으로 보고 저희는 기분 좋게 식당을 나왔습니다.
햄버거 원정대와 키오스크 대첩
예전에 경로당 어르신들 사이에서 "늘 먹는 밥 말고, 우리도 햄버거 한번 먹어보자!"는 뜻이 모아졌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가장 젊으신(?) 두 분이 중대한 사명을 안고 패스트푸트점으로 출정하였습니다. 그런데 첫 관문인 키오스크 앞에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직면하셨습니다. 무려 20여 분간 사투 끝에, 결국 두 분은 경로당으로 전략적 후퇴를 하셨다고 하네요.
한 분이 경로당 문을 열며 이렇게 외치셨다고 합니다.
"형님! 키오스크란 놈하고 맛짱을 떴는데, 그만 완패하고 말았습니다. 부디 용서하여 주십시오."
최근 한 카페 출입문에 '노시니어존, 60세 이상 출입 제한'이라고 적힌 안내 문구가 붙어 논란이 일었다는 기사도 본 적이 있습니다. 왜 그런 문구를 내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곳이나 편안한 마음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이 느껴지니 한편으로 섭섭한 생각도 드네요.
도서관에 가보면 시니어프로그램이라고 해서 '50+ 스마트폰 활용 기초 편', '중장년을 위한 스마트폰 야무지게 사용하기'와 같이 첨단 기기에 대한 사용법을 가르치는 교육과정을 보곤 합니다. 예전 같았으면 '저런 과정이 왜 필요할까?' 싶었지만, 지금은 나이 든 어르신들이 살아가시는데 꼭 필요한 생존 프로그램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나이 먹었다고 주저앉아 대우나 받으려는 것은 늙어 보이는 것이다. 한다면 될 것이다.
♩노인이 되는 것은 비참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나이답게 살 수 없는 사람만이 비참한 사람이다.
♩늙은 사람은 자기가 두 번 다시 젊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젊은이는 자기가 나이 먹는다는 것을 잊고 있다.
♩인간이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결코 악마 따위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늙은이가 된다는 것이다.
요즘 방송을 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신기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이제는 따라 하기는커녕 이해하는 것조차도 벅찰 정도입니다.
아마 조만간 생성형 AI, 증강&가상현실, 블록체인, 스테이블코인 같은 첨단 기술에 대해서도, 시니어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꼭 필요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