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느 시각장애인의 작은 바람

파란 하늘을 보다 생각난 사소한 생각(D-112)

우연한 기회에 시각장애인 분들과 짧지만, 깊은 만남의 시간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시각장애인은 시력을 완전히 잃고, 전혀 안 보이는 상태로 생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 만남을 통해, 시각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이 바꾸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얻었던 시각장애인에 대한 정보는 과장되거나 왜곡된 것이었습니다.


시각장애인의 경우 상당수는 명암을 구분할 수 있거나, 어느 정도 남아있는 시각기능을 이용하여 일상생활을 하실 수 있더군요.



때마침 아침은 선선하고 오후에는 따뜻한 초여름 날씨라, 야외 활동하기 더없이 좋은 계절이었습니다.

시각장애인과 같이 일하시는 사회복지사분이 저희에게 제안한 것은, 과천서울대공원에서의 산책이었습니다.


출발에 앞서 사회복지사분으로부터 시각장애인 분들과 동행하면서 지켜야 할 사항을 듣고, 복지센터를 나와 지하철 역까지 함께 걸어갔습니다. 처음에는 다소 어색하고 낯선 동행이었지만, 배운 주의사항을 마음에 새기며 행동하니 생각보다 그리 불편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윽고 도착한 서울대공원은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한가하고 조용했습니다.

점심식사 시간이 되어 미리 준비해 간 김밥과 치킨 등 음식을 펼쳐놓으면서, 문득 '음식을 직접 입에 넣어드려야 하나?' 하는 고민이 생기더군요.


다행히 동행하신 사회 복지사분께서 이를 눈치채셨는지, 그냥 시각장애인 분들께 어떤 음식이 어느 방향에 놓여있는지만 설명드리면 된다고 알려주시더군요. 좌우를 살펴보니 어떤 분은 희미하게나마 음식을 볼 수 있어 아무런 문제 없이 식사가 가능하시더군요. 시력이 좀 더 낮은 분은 손으로 살짝 음식을 확인하며, 자연스럽게 드시는 것도 볼 수 있었고요.


그 모습을 지켜보며 '괜한 걱정을 사서 했었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식사를 마쳤습니다.


이제 자유롭고, 편안하게 산책할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오늘의 코스는 당연히 서울대공원 호수가 산책로입니다.

서울대공원 호수 산책로.png [서울대공원 호수가 산책로]


시각장애인분께서 제 오른쪽 팔꿈치를 살며시 잡으신 후,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던 한마디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일반인 분들은 우리를 배려한다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걷지만, 사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일반인처럼 빠르고 경쾌하게 걷고 싶습니다."


이런 넓은 곳에서 아무런 구애 없이 마음껏 걷고 싶다는 간절함을, 우리는 쉽게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그분의 말씀이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동시에 제 안에 있던 편견을 마주하며 부끄러움이 찾아오더군요.


우리 둘은 가능한 한 빠르게 걸었습니다.

오히려 일반인 보다 더 힘차고 경쾌하게, 속도감 있게 말이지요.

어느덧 걷다 보니 조금씩 땀이 나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분의 "정말 오랜만에 마음껏 걸어봤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다시 모임 장소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머릿속에 "일반인처럼 마음껏 빠르게 걸어보고 싶다."라는 그분의 목소리가 떠나지 않더군요.


글을 쓰면서 예전 일을 회상할 때면 희미하거나, 다른 사항과 뒤섞여 있는 것을 발견하곤 합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분과 함께 했던 짧지만 경쾌한 산책과 그분의 밝은 목소리는 아직도 생생합니다.

가을하늘.png [오늘 바라본 파란 하늘]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

글쓰기 랩탑 달리기.pn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