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동남아 7일 크루즈 여행기, 전일 해상에서 시간 보내기
오늘은 기항지의 정박 없이 태국 푸껫에서 싱가포르로 이동하는 일정이라, 하루 종일 배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유일한 날입니다. 크루즈 여행 전에 아내가 배를 즐길 시간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우려를 했었는데, 진짜로 배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행사에 참여하기에는 턱없이 시간이 부족합니다.
모처럼 주어진 하루를 알차게 보낼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 봐야겠지요.
펭귄의 크루즈에 탑승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Welcome aboard!
전일 해상에서 지내기(2025. 10. 26)
해상에서 보낼 수 있는 유일한 날이라 생각을 해서인지 새벽 5시에 눈이 떠집니다.
가장 먼저 확인할 것이 밖의 날씨입니다. 설마 오늘도 비가 오지는 않겠지요.
다행히 비가 오고 있지 않아 서둘러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객실을 나섰습니다. 크루즈 여행에서 꼭 해보고 싶었던 ‘바닷바람을 맞으며 새벽 조깅하기’를 실천하기 위해서입니다. 컴컴하고 조용한 덱 15의 조깅트랙을 뛰기 시작하니 어느덧 어슴푸레 날이 밝아 오고 있습니다. 여전히 흐린 날씨로 인해 해 뜨는 것을 볼 수는 없었지만, 얼굴에 스치는 따뜻한 바닷바람은 기분을 무척 상쾌하게 만드네요. 잠시 숨 고르기를 위해 멈추어서 주변을 둘러보니 벌써 날이 다 밝았습니다.
아내와 함께 며칠 동안 좀 과식을 한 것 같아서, 오늘 아침은 대형 뷔페 레스토랑보다는 카페 투 세븐티(Café two70)로 향했습니다. 이곳은 아침에는 식사를 할 수 있는 카페이지만 저녁때는 다양한 쇼와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이지요. 간단하게 베이글과 커피 한 잔을 갖고 배의 꼬리 부분인 스턴(Stern)에 앉아 배가 만드는 파도의 흔적(웨이크, Wake)을 보며 멋진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선미에서 뒤를 보면 배가 지나온 곳이 보이는데 이때 보이는 파도의 흔적을 웨이크(Wake)라고 합니다. 그리고 배의 꼬리(뒷부분)를 스턴(Stern)이라고 하고요.
어저께 방에 놓아준 ‘여권 배분 안내’ 사항이 다시 방송으로 안내되고 있습니다.
크루즈에 승선하는 날 거두어 갔던 여권을 아침 8시부터 10시 사이에 지정된 장소에서 다시 돌려준다는 내용입니다. 만약 다른 가족의 여권을 대신 받으러 오려면, 확인을 위해 반드시 씨패스(SeaPass, 선상카드) 카드를 갖고 오라고 합니다. 저희는 가이드분이 한꺼번에 여권을 받아서 저녁 식사 때 나눠준다고 하니 신경 쓸 필요가 없어서 좋기는 합니다.
가이드 분이 전해준 내용에는 오전 중 탁구 및 배드민턴 대회, 라인댄스 강습과 같은 다양한 액티비티가 있다고 했는데, 참석을 못한 것이 못내 아쉽기는 합니다. 한꺼번에 많은 승객이 몰려 참가 신청을 한 후 기다리고 있어, 계속 기다리다 가는 다음 약속인 정찬 식사 시간에 맞추기가 어렵더라고요. 대신 자투리시간을 이용하여 크루즈 선을 한번 더 훑어보기로 했지요.
지난번 안 가봤던 곳을 위주로 돌아다니다가 드디어 도서관을 발견했습니다. 하도 꽁꽁 숨겨놓아서 찾는데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게 선미에 있는 카페 투 세븐티(Café two70) 2층에 있더군요. 비록 작은 규모이기는 하지만 바다를 바라보고 앉아 책을 볼 수 있다는 크루즈 여행 만의 낭만이 느껴지는 곳입니다. 물론 전부 영어책이지만 부지런한 한국사람이 한글 책 한 권을 놓고 가신 모양입니다.
저희가 찾은 정찬 식당은 저녁때는 코스 요리가 제공되지만, 점심때는 뷔페식으로 운영이 됩니다. 대형 뷔페식당인 ‘윈재머’의 음식 가짓수보다 적기는 한데 조용하고 분위기 있게 식사하기에는 좋은 곳입니다.
점심 식사 후, 모처럼 날씨가 좋아져 그동안 못했던 크루즈의 또 다른 낭만인 ‘작렬하는 태양 아래에서 수영하기’를 했습니다. 뭐 수영보다는 자쿠지(Jacuzzi)에 앉아 몸의 피로를 푸는 정도이기는 합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앉아 기포에 몸을 맡기고 있자니 좀 답답합니다. 맞은편 수영장 수심 표시를 보니 위치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1.51m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구명조끼를 걸치고 수영장에 들어가 봤습니다. 1.5m 정도면 발이 닿을 줄 알았는데 얼굴까지 쑥 들어가네요. 전 수영을 못해서 가슴 깊이 이상으로 들어가면 공포심이 드는데 다행스럽게도 구명조끼를 입어서 둥둥 뜨기는 하네요. 물은 무섭지만 물에서 잘 놀기는 합니다. 아내가 찍어 준 사진을 보니 수영장 벽만 잡고 있네요.
선베드를 하나 잡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누워있으니 크루즈 여행의 여유가 실감 납니다. 이런 시간을 좀 더 가졌으면 좋았는데 어느덧 다음 약속이 있어 움직여야 하네요.
여행 전 안내문에서 정장이나 멋지고 예쁜 옷을 한 벌씩 준비하라고 하더군요.
이유는 여행의 추억을 오랫동안 남기기 위해, 가이드 분이 크루즈 내 사진 촬영 명소를 다니면서 인생 사진을 찍어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장은 아니지만 인생 사진을 찍어준다고 하니 얇은 재킷 하나는 준비를 했지요.
약속 시간에 맞춰 덱 5의 미팅장소로 가보니 대부분 화려하고 멋지게 입고 오셨네요. 아내는 이럴 줄 알았으면 더 화려하게 준비하고 올 걸 하면서 후회를 하네요. 어떤 분은 일상복 스타일로, 어떤 분은 결혼식 스타일로, 어떤 분은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오셨습니다. 그런데 한복을 입은 어르신이 도착하시니 이전까지의 화려함이 모두 한복에 묻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수(壽) 복(福) 글자가 수놓아진 모시 한복은 세계인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고, 지나가는 사람마다 엄지 척하면서 원더풀을 연신 외치고 있네요.
한복 입은 어르신을 필두로 크루즈 선 내 멋진 장소를 돌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덱 5에서 시작하여 최상층인 덱 15와 16까지 인상적인 장소를 모두 거치며 촬영을 하니 어느덧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네요.
이번 정찬 식사가 크루즈 선에서의 마지막 저녁 식사이니 이것저것 많이 시킬 생각으로 정찬 식당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가이드 분이 이번에도 한글로 작성한 ‘오늘의 메뉴’를 주셨는데 ‘이탈리아 음식의 밤’이라고 되어 있네요.
이번에도 어르신 두 분의 식사를 돕기 위해 한 테이블에 함께 앉았습니다.
애피타이저로는 야채수프, 시저 샐러드, 미니 크로켓을 주문하였고, 메인음식은 흰 살 생선 요리, 제가 싫어하는 닭고기 요리, 라자냐, 양고기 요리를, 그리고 디저트로는 커피 케이크, 티라미수 케이크, 제철과일과 아이스크림을 주문하였습니다. 빨간색 체크한 것이 저희가 주문한 음식들입니다.
애피타이저를 먹고 있는데 갑자기 흥겨운 음악이 나오면서 홀 웨이터뿐 아니라 주방 직원들 까지 모두 나와 춤을 추며 인사를 하고 들어가네요. 일종의 이벤트인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두 번째 식사를 하지만 친절하고 밝게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이윽고 나온 메인음식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맛입니다. 아마 육지에서 이렇게 주문하여 먹으면 수 십만 원의 비용은 지불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렇게 식사를 하다 보면 매번 식당 총괄 매니저가 등장하는데 오늘도 여지없이 각 테이블마다 다니면서 인사를 합니다. 주로 음식은 어떠 한지, 더 필요한 것은 없는지 정도를 물어보는데, 오늘은 어르신의 한복에 대해 무척 관심을 보이면서 예쁘다는 이야기를 한참 하더군요. 한복 입으신 어르신 덕분에 주목도 많이 받으며 즐거운 식사를 마쳤습니다.
식사를 거의 마칠 무렵에 창밖을 보니 하늘이 햇빛에 물들어 벌겋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제 곧 석양이 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다음 스케줄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서둘러 덱 15로 올라갔습니다. 저 멀리 수평선에 붉은 해가 서서히 가라앉고 있네요. 이런 석양은 TV에서 본 적은 있지만 실물로 영접하기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서서히 수평선 밑으로 숨는 해가 크루즈 여행의 마지막 밤임을 일깨워 주는 것 같습니다.
이런 헛헛한 심정을 달래면서 크루즈에서의 마지막 저녁 행사에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오늘의 저녁 일정으로는 덱 15와 16에 걸쳐 있는 씨플렉스에서 범퍼카 타기, 한 소년이 꿈꾸는 아름다운 미래에 대한 감동적인 뮤지컬 관람, 그리고 80년대 음악과 함께 신나는 댄스파티가 있다네요.
범퍼 카를 타기 위해 씨플렉스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승객들이 줄을 서고 있습니다. 저희도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지만, 7시 30분부터 시작하는 뮤지컬을 보기 위해서는 시간이 부족할 것 같더군요. 아내는 여기까지 와서 굳이 범퍼 카를 탈 필요가 있냐고 하는데, 반대로 저는 배 위에서 범퍼 카는 꼭 한 번 타보고 싶다고 했지요. 다른 분들은 먼저 대극장으로 이동하고, 끝까지 남은 신혼부부를 포함하여 저희 4명만 범퍼 카를 탔습니다. 타고 보니 역시 그냥 범퍼 카일 뿐입니다. 그래도 바다 위에서 범퍼 카를 타봤다는 추억거리는 생겼으니 만족스럽네요.
서둘러 대극장으로 이동하니 고맙게도 가이드 분이 저희 자리를 미리 준비하셨더군요.
덕분에 좋은 위치에서 편하게 관람할 수 있었는데, 너무 편한 나머지 저는 중간에 졸았네요. 아내의 말로는 무척 감동적인 스토리여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고 하던데 제대로 못 본 것이 못내 아쉽기는 합니다.
이제 크루즈에서의 마지막 일정인 ‘80년대 음악과 함께 신나는 댄스파티’에 참석하기까지는 2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습니다. 지난 3번의 댄스파티에서는 중앙 무대로 나가지 않고, 무대 주변에서만 살랑살랑 몸을 흔들었는데 아쉬움이 있더라고요. 원래 춤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여행의 마지막 밤은 억지로라도 즐기고 가야 후회가 되지 않을 것 같더군요.
그래서 술의 힘을 좀 빌리기로 했습니다.
늘 덱 5를 오고 가면서 눈여겨보던 바(Bar)가 한 곳 있었습니다. 지나가다 보면 멋지게 흰 수염을 기른 남자 가수가 피아노에 앉아 노래를 부르는 곳입니다. 한 편에 자리를 잡은 후 맥주 마시며, 노래도 들으며 남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잠시 뒤를 돌아보니 저희 일행 중 젊은 여성 두 분도 카운터에 앉아 바텐더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 잔 하더군요.
크루즈 여행을 시작할 때만 해도 같이 간 일행들과 가까워질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저 짧은 여행이니 각자 즐겁게 구경하고 즐기고 오면 된다는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만남의 기회가 자주 있다 보니 서로 인사도 하고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만들어집니다.
특히 일행 중 어르신 두 분이 계시는데 거동도 불편하시니 아무래도 누군가의 도움이 조금은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가이드 분이 계속 보살펴 드리기는 하지만 나머지 일행도 챙겨야 하니 부담이 큰 상황에서 젊은 여성 두 분이 어르신들을 무척 살갑게 모시더군요. 저희와 젊은 여성 두 분이 번갈아 어르신을 모시니, 가이드 분도 부담이 덜하고 별 탈 없이 여행이 잘 마무리가 된 것 같습니다. 어르신 두 분은 감사의 표시로 여행 후 다시 만나 점심식사도 사 주셨네요.
이제 댄스파티에 참석할 시간입니다. 아내와 함께 도착한 카페 투 세븐티(Café two70)는 벌써 승객들로 꽉 차 있습니다. 크루즈 메인 행사마다 보이는 제임스 이사가 무대로 나와 흥을 돋우고 있네요. 이윽고 댄서들이 등장하고 익히 귀에 익은 음악들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벌써 중앙 무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흥겹게 춤을 추고 있습니다. 저도 약간의 술기운을 이용해 용감하게 중앙 무대로 나갔습니다. 안 움직이는 몸일지 언정 댄서들을 보며 따라 하니 그래도 뻘쭘하게 서 있는 것보다는 한결 부담이 적네요. 다양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하고 모두 어깨동무를 하고 극장을 한 바퀴 돌기도 하면서 즐기다 보니 어느덧 아쉽게도 끝날 시간입니다.
이제 크루즈에서의 모든 일정은 마무리가 되었고, 내일 하선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너무 힘이 들어서 오늘은 일단 잠자리에 들고 내일 아침에 짐정리를 해야 될 것 같네요.
내일은 크루즈 선에서 하선하고, 싱가포르 관광 후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일정입니다.
이제 여행의 막바지에 다다랐네요. 아쉬운 마음이지만 바로 꿈나라로 직행했습니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위해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