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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소년 Feb 05. 2024

4. 아폴로와 다프네

                       변신이야기 (by 오비디우스)

 화살로 왕뱀 퓌톤을 잡은 아폴로는 쿠피도의 활을 조롱한다. 쿠피도는 활을 들어 아폴로에게 황금 화살을, 다프네에겐 납 화살을 쏜다. 아폴로는 다프네를 격렬히 사랑하게 된다. 다프네는 사랑을 증오하며 자신을 뒤쫓아오는 아폴로를 피해 맹렬히 도망친다. 아폴로에게 거의 따라 잡히자, 다프네는 아버지인 강의 신 페네오스에게 기도한다. 다른 것으로 변하게 해달라고.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나무로 변한다. 월계수로.     

 

 여기는 신화적인 공간일모른다. 얇은 금속 선들이 얼기설기 모여 면을 이루고 있다. 면은 곡선 형태를 취하고, 나비처럼 허공에 떠 있다. 조명에 의해 그림자가 하얀 바닥과 벽면에 또 다른 사물처럼 그려져 있다. 금속은 선이 되고, 선은 면이 되고, 면은 어떤 형태를 이루어 금속이 아닌 어떤 사물임을 드러내고 있다. 서울공예 박물관, 금속공예 기획전시인 <만년사물> 중 천우선 작가의 작품을 보는 순간, 공간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박물관이 아니라 신화적 공간으로. 거듭되는 변화, 여기서도 변신을 본다.      

 


 신화를 읽어본 사람은 안다. 신화는 거의 변신 이야기로 가득하다. 변신이란 한 존재가 전혀 다른 존재로 변하는 것이다. 제우스는 아내 헤라의 눈을 피해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에게 몰래 다가가기 위해 백조, 황소, 구름으로 변신했다. 고대인들은 이런 변신을 용인하고 받아들였다. 그들에게 신화는 세계를 인식하는 첨단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화산, 번개, 홍수 등 많은 자연 현상과 각종 동식물의 발생 그리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를 신에 빗대어,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신화는 고대인들에게 자연과학이었고, 인문학이었다. 이런 세계 인식의 핵심에는 변신이 있다. 변신으로 세상을 이해했다. 아폴로와 다프네로부터 월계수와 명예, 영광의 상징인 월계관을 이해했다. 변신은 하나의 중요한 원리였다. 그러므로 로마의 저술가 오비디우스가 자신이 쓴 그리스·로마 신화를 '변신이야기'라고 부른 것은 적절하다.      


  박물관 1층 휴게 의자에 앉아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를 꺼낸다. 하얀 표지로 된 두툼한 책이다. 앞표지에 조각상이 보인다. 아폴로와 다프네다. 이탈리아 보르게세 미술관에 있는 베르니니의 대리석 조각상이다. 조금 있으면 다프네를 안을 수 있다는 아폴론의 희망과 아폴론에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다프네의 절망과 두려움이 배어있는 표정, 다프네가 월계수로 변신하는 급박한 순간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이렇게 정밀하게 포착된 변신의 순간이 ‘변신이야기’ 서사압축하여 보여준다.



 사실, 아폴로-다프네를 그린 유명한 그림은 많다. 그런데 표지는 그림이 아니라 조각상이다. 생각해 보면, 조각은 하나의 물질에서 다른 형상을 드러낸다. 대리석으로 아폴로와 다프네의 형상을 보여주듯이. 물질에서 형상으로의 변화, 즉 변신으로 볼 수 있다. 조각은 변신을 상징한다. 반면, 그림은 조각과 비교하면 변신의 성격이 매우 약하다.  이런 의미에서 아폴로와 다프네 신화를 표현한 베르니니의 대리석 조각상은 ‘변신이야기’의 표지로 적확하다.


 여기서 생각의 줄기를 다른 방향으로 뻗어 본다. 그럼, 변신이라는 원리로 세계와 인간을 표현하는 것이 현대에도 있을까? 있다. 바로 시다. 시는 언어로 쓰여 있다. 언어는 대상과 1:1 관계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래야 언어는 명확성을 얻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는 과감해지기로 한다. 한계를 가진 그 언어로 대상과 1:1 관계라는 한계를 뛰어넘기로 한다. 그 방법은 은유다. 시는 은유라는 방법을 사용하여 변신을 용인하며, 언어의 한계를 넘어, 세계를 표현하면서 사물의 본질에 다가간다. 은유란 행동, 개념, 물체 등을 그와 유사한 성질을 지닌 다른 말로 대체하는 일이다. 즉, 한 사물을 다른 사물로 대체하고, 이를 통해 사물에 드러나지 않았던 다른 본질을 보여준다. 그래서 따뜻한 봄은 이장희에 의해 고양이가 되고, 윤동주에 의해 시내가 되고, 이상화에 의해 조국의 광복이 되고, 김억에 의해 밤이 된다. 봄은 시의 은유를 통해 이런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하면서, 다른 본질도 드러낸다. 시는 변신이라는 고전적 믿음을 은유로 되찾으면서 본질에 끊임없이 다가간다.      

 

 박물관 주변 스타벅스에 간다. 커피잔을 들고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켠다. 박물관에서 했던 생각을 정리하며 글을 쓴다. 마시려고 잔을 든다. 잔의 옆면에 초록의 스타벅스 로고가 새겨있다. 왕관을 쓴 긴 머리의 인어가 자기의 물고기 꼬리를 손으로 잡고 있다. 사이렌이다. 신화에 나오는, 바다에서 지나가는 어부들을 노래로 유혹하여 배를 난파시킨 괴물이다. 스타벅스는 사이렌처럼 우리를 유혹하여 매장으로 발길을 유도하려 한다. 나도 유혹당해 이곳에 있다. 커피를 마시고 잔을 내려놓는다. 커피에 눈이 간다. 이 까만 액체, 콩이라는 고체에서 커피라는 액체로의 화학적 변신이 아닌가? 어쩌면 세상은 여전히 신화적 일지도 모른다. 다만, 오늘날  신화는 메마른 자본에 사로잡혀, 화장한 얼굴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세계를 유혹하고 있다. 스타벅스에 갇힌 사이렌처럼.     


 

 

 오늘도 신화를 읽는다. 자본에 의해 덕지덕지 발라진 화장을 지워본다. 신화의 민얼굴을 보려고 노력한다. 여기엔 욕망으로 점철된 표정이 깃들어 있다. 고대인들에게 자연과학이자 인문학이었던 신화에서, 나는 인간을 본다. 욕망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인간을 알아간다. 많은 사건 뒤엔 욕망이 숨어있다. 욕망이 없다면 역사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책등에 있는 메두사(베르니니의 조각상)는 권력자인 포세이돈과 아테네의 희생자로, 앞표지에 있는 다프네도 아폴로와 쿠피도의 알량한 욕망이라는 싸움의 희생자로 볼 수 있다. 뒤표지에 있는 사티로스(윌리엄 부그로의 그림 ‘님프들과 사티로스’)는 저급한 주색의 화신이다. 신화에서 욕망은 사랑이나 야욕으로, 야망이나 야심으로, 자만심이나 교만으로 그리고 탐욕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 인간의 눈을 멀게 한다. 변신이 인간 속에 숨어들면 욕망의 다양한 얼굴로 나타난다. 그래서 ‘변신이야기’는 욕망 가득한 인간의 이야기가 된다. 이는 인간의, 특히 현대인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이 속에 나의 얼굴도 비춰본다.          


                    <월요일에 업로드합니다>

#변신이야기 #오비디우스 #아폴로 #다프네 #베르니니 #메두사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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